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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생존기9.

-나는 낯선 공기를 좋아합니다.

by noodle

스읍-하고 큰 숨을 한번 들이쉽니다.

여기, 바르셀로나 거리에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군요. 동료들과 약속을 정하고 헤어진 순간, 나는 자유가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이래서 비행을 사랑하나봅니다.

이 넓디 넓은 나라에, 지금 이 공간에 나를 아는 이가 없다는 무한한 자유. 해방감.

그 낯선 공기가 나를 설레게 합니다.


나는 늘 길을 나서는 쪽을 택해왔습니다.

지구 정 반대편의 시차로, 열네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몸이 무겁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새로운 공간, 낯설은 풍경들이 나를 불렀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복직을 하면서, 호텔에 머무르며 즐기는 시간 또한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무렵. 책방지기로의 삶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역할과 책임감이 다시 나를 바깥으로 부추기기 시작했습니다.

추피는 정말 많은 곳을 여행했군요!

추피는 우리 책방의 마스코트입니다. 프랑스 책방이기에, 프랑스의 뽀통령이라 불리우는 추피 캐릭터의 작은 인형을 들고, 책방의 홍보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추피의 세계여행!


영상이나 사진찍기는 영 젬병이고, SNS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남들 다 하는 인스타그램을 배우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멀어요.)

영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내 파트너는 때로 독려하며, 때로 채찍질하며 오늘도 나의 영상 촬영과 편집 실력이 영 아쉬운 모양입니다.






피어39의 추피

올해엔 책방의 예쁜 전면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보이는 책방리브레리의 세계여행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꾸준히 찍어오던, 책 홍보 영상도 여전히 해야지요.

25년 상뻬 달력 라파예트 백화점을 배경으로 찍어봅니다.


문제는 이곳의 치안이 그닥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 마음껏 삼각대를 치켜올려 마음에 드는 영상을 담아보고 싶은데, "바르셀로나, 삼각대"로 검색하면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나를 오그라들게 합니다. 실컷 영상을 담아, 여기서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해버린다면 그것 만큼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또 있을까요.결국 나는 두 다리 사이에 어설프게 삼각대를 부여잡고, 세상 불편한 자세로 책의 소개 영상을 찍어봅니다.







성당, 이렇게 싹똑 자르는게 최선이었니...

포스터는 내가 서서 펼치는 장면을 담아내야 했기에, 도저히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 관광객들의 도움을 받아보았습니다. 여행 카페의 후기를 보면, 한국인에게 부탁하는 편이 사진의 퀄리티도 안전도 가장 좋다기에 그렇게 해보려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한국인은 눈에띄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지나가는 외국인 커플을 택해 부탁해봅니다만, 사그리나 파밀리아의 성당 앞에서 5등신이 되어버린 나를 보니 답답하기 그지 없네요.

여러번의 시도 끝에 그나마 나은 영상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 어설픈 손놀림으로 편집을 시작해보지만, 나에게 이 영역은 자꾸만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만 같아요.


예쁜 책방을 만들어내는 것 까지는 너무나 신이 났는데, 사랑스러운 팝업을 고르는 것도 자신 있는데, 그 아름다운 것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재주가 내게는 없네요. 하지만 반복 반복하면 언젠가는 조금이나마 나아지겠지요.









성당이 덜 잘렸으니 이쯤에서 만족해야하나 봅니다.

책방의 홍보를 위해, 책을 소개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지구 저 반대편에서 생체 시계에 충실한 무겁디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나가야 하는 운명인걸까요?

낯선 공기가 코끝 아래를 스칠 때, 문득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꽤나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온 몸의 세포가 조금 고되어도, 눈꺼풀이 묵직히 내려앉아도, 이런 운명이라면 기꺼이, 새로운 공기를 맞딱뜨리며 열심히 움직여보려고요. 혹시 아나요. 오늘 나의 이 느리고 둔탁한 움직임이, 언젠가 정말 책방리브레리를 전세계에 알리는 가벼운 날개짓이 될지요. 세상일은 정말이지 아무도 모르는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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