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1장 면역학의 탄생

몸속 수호자들의 서막

by Biome Mar 02. 2025

1. 역사 속 면역학의 시작

브런치 글 이미지 1

 1796년 5월(18세기 후반), 영국의 한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의 젖 짜는 처녀에게서 얻은 우두(cowpox) 고름을 8세 소년 제임스 핍스의 팔에 접종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다행히 소년은 가벼운 열만 앓고 곧 회복되었고, 두 달 뒤 제너가 같은 소년에게 천연두 고름을 접종했을 때도 질병이 발병하지 않았다. 이로써 역사상 최초의 예방 접종이 성공을 거두었으며, 제너는 소(라틴어: vacca)에서 이름을 딴 ‘백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발표했다. 제너의 종두법(우두 접종법)은 유럽 전역과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가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결국 1980년 인류는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박멸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세기 후반 미생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면역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졌다.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와 탄저병 백신을 개발한 데 이어, 1885년에는 광견병에 걸린 소년에게 자신이 준비한 백신을 13차례 접종하여 목숨을 살리는 데 성공하였다. 당시에는 사람에게 질병의 병원체를 직접 주입한다는 발상 자체가 혁신이었기에 논란도 있었지만, 파스퇴르의 용단으로 광견병 백신 치료가 현실화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파스퇴르는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고, 그의 연구를 통해 병원체에 대한 면역 개념이 과학계에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 1890년대에 독일의 의사 에밀 폰 베링과 일본의 세균학자 키타사토 시바사부로는 디프테리아에 감염된 동물의 혈청이 그 독소를 중화시키는 항독소를 발견하여 혈청 요법을 개발했고, 화학자 폴 에를리히는 이를 발전시켜 혈액 속에 특정 독소를 무력화하는 인자가 존재함을 입증하였다. 그는 세포에 특정 수용체가 있으며 이들이 떨어져 나와 항체가 된다는 가설(측쇄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러시아의 생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는 1882년 불가사리 유생 실험을 통해 이동하는 혈구 세포가 세균을 둘러싸 잡아먹는 현상(식균작용)을 발견함으로써 세포에 의한 면역 개념을 확립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면역학자들은 우리 몸의 방어 체계가 이러한 세포성 면역과 체액성 면역의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1908년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가 함께 노벨상을 받으면서 면역학은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 면역계의 역할과 중요성

 면역계란 인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우리 몸의 방어망을 말한다.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다양한 병원체의 침입을 인식하여 제거함으로써 생명을 지키는 것이 면역계의 기본 역할이다. 면역계에는 여러 종류의 면역 세포(예: 백혈구, 림프구 등)와 이들이 만들어내는 단백질(예: 항체, 사이토카인 등), 그리고 그 활동이 이루어지는 조직과 장기가 포함된다. 이 방어 시스템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비자기(非自己)"를 "자기(self)"와 구별하여 공격하며, 평소 자신의 구성 요소에는 반응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면역 관용이 조절된다. 또한 면역계는 손상된 세포나 노폐물을 제거하고 상처 치유를 촉진하며, 암세포와 같은 비정상 세포를 감시하여 제거함으로써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면역학은 이러한 면역계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백신의 개발과 전염병의 예방을 통해 인류 건강 증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3. 선천 면역과 적응 면역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은 크게 선천 면역과 적응 면역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선천 면역(자연 면역)은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1차 방어체계로, 비특이적 방식으로 침입자에 대응하며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피부와 점막 같은 신체의 물리적 장벽부터, 체내의 대식세포와 호중구 등의 식세포, 자연 살해세포(NK 세포), 그리고 보체 단백질이나 다양한 염증 매개물질들이 모두 선천 면역에 속한다. 이들은 세균의 세포벽 성분 등 미생물에 공통적인 분자 패턴을 즉각 감지하는 패턴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어, 병원체의 종류와 무관하게 신속히 방어 작용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피부에 상처가 생겨 세균이 침입하면 선천 면역 세포들이 해당 부위로 몰려들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침입한 세균을 잡아먹거나 공격 물질을 분비하여 초기에 억제한다.

 선천 면역의 대표적인 예로, 식세포인 호중구가 세균을 포획·섭취하여 제거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위 그림에서 붉게 착색된 세포가 사람의 호중구이고, 그 주변을 둘러싼 작은 겨자색 구슬들이 포도알균(MRSA)들이다. 호중구는 이렇게 돌기(위족)를 뻗어 세균을 붙잡은 뒤 세포 내부로 끌어들여 분해함으로써 병원체를 제거한다. 그러나 선천 면역만으로 모든 병원체를 막지는 못하기 때문에, 일부 병원체가 초기에 살아남아 증식하면 며칠의 잠복기를 거쳐 보다 정밀한 적응 면역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적응 면역(획득 면역)은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2차 방어체계로, 특정 병원체에 맞게 특이적인 면역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적응 면역의 중심 세포인 림프구(B 세포와 T 세포)는 각각 한 가지 항원에 결합하는 항원 수용체를 지니고 있어 개별 병원체를 인지하고 표적한다. B 세포는 분화하여 병원체를 공격하는 단백질 무기인 항체를 대량으로 분비하고, T 세포는 감염 세포나 종양 세포를 직접 파괴하거나 다른 면역 세포들의 작동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적응 면역 반응이 처음 유도될 때는 활성화까지 수 일이 걸리지만, 일단 특정 항원에 대한 면역 기억이 형성되고 나면 같은 병원체가 재침입할 경우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여 질병의 발생을 막는다. 이러한 원리 덕분에 대부분의 전염병은 한 번 앓고 나면 면역이 생겨 다시 걸리지 않으며, 예방 접종을 통해 병에 걸리지 않고도 적응 면역을 확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면역계 이상과 대표적 질병

면역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우리 몸은 다양한 면역 이상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1) 면역결핍증

 면역결핍증은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원인으로 면역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로, 이 상태에서는 평소 무해한 미생물에도 쉽게 감염되고 그 감염을 이겨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중증복합면역결핍증(SCID)을 지닌 아기는 기능하는 면역 세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극도의 감염 위험 속에서 태어나며, 일상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 후천적으로 면역 기능이 손상되는 대표 사례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AIDS)이 있는데, 면역계를 지휘하는 보조 T 림프구가 HIV 바이러스에 파괴되어 방어 체계가 붕괴됨으로써 각종 기회 감염과 종양이 발생하게 된다.


2)자가면역질환

 반대로 면역계가 지나치게 활발하여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경우를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한다. 원래 면역계에는 자기 자신의 구성 요소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자가 관용(self-tolerance) 기전이 있으나, 유전적 소인이나 환경 요인으로 이러한 관용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몸을 외부의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결과 해당 조직과 장기에 만성적인 염증과 손상이 일어나며 다양한 임상 증상이 나타난다. 발병 범위에 따라 전신성 vs. 장기 특이적 자가면역질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류마티스 관절염, 전신 홍반 루푸스처럼 전신에 걸쳐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들이 전자에 속하고, 제1형 당뇨병(췌장 베타세포 파괴)이나 그레이브스병(갑상선 기능 항진증) 등이 후자에 속한다. 한때 폴 에를리히는 면역계가 절대 자기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여겨 “공포의 자기중독(horror autotoxicus)”이라 명명했지만, 오늘날에는 수십 종류가 넘는 자가면역 질환이 알려져 있으며 면역억제제 등으로 과잉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다.


3) 과민반응

 또한 면역계가 실제로는 무해한 외부 물질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면 과민반응(알레르기)이 발생한다. 이는 꽃가루나 음식물처럼 대부분 사람에게 해롭지 않은 항원에 대해 면역계가 잘못된 경보를 울려 불필요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로, 재채기, 두드러기, 천식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즉각적으로 발생하는 제1형 과민반응(즉시형 알레르기)은 IgE 항체를 매개로 비만세포에서 히스타민 등의 매개물이 분비되어 알레르기 비염, 기관지 천식, 음식물 알레르기 등을 일으킨다. 대부분 경미한 증상에 그치지만 경우에 따라 온몸에 심한 반응이 나타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진행되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렇듯 면역계는 우리 몸을 지키는 필수 요소이지만, 그 균형이 흐트러지면 면역결핍, 자가면역, 과민반응과 같이 건강에 해를 끼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5. 정리 및 학습 목표  

1) 면역학은 몸의 방어체계인 면역계의 작용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백신 개발 등 전염병 극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왜 면역학이 중요한지를 역사적 사례 (천연두 백신 등)에서 알 수 있다.

2) 면역계의 선천 면역과 적응 면역개념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선천 면역은 빠르고 범용적인 1차 방어이며, 피부·점막, 식세포, 보체 등의 요소로 작동한다. 적응 면역은 느리지만 항원-특이적 기억을 형성하는 2차 방어로, B세포/항체와 T세포에 의해 매개된다.

3) 면역계의 이상 반응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병에는 면역결핍증(면역 기능 저하로 잦은 감염 발생), 자가면역질환(정상 조직에 대한 오작동 면역으로 조직 손상), 알레르기(무해한 물질에 대한 과도한 면역 반응) 등이 있다. 각 사례를 통해 면역계 균형의 중요성과 질병 발생 기전을 이해해야 한다.

4) 면역학에 대한 이해는 예방접종의 활용, 면역억제제와 면역치료제 개발 등을 통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응용된다. 따라서 면역계의 작동 원리와 조절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로운 연구 결과나 의견은 반영하여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일요일 연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