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을 잊어도 괜찮아
오랜만에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동네에 왔다. 석양을 구경하러 옥상에 올라갔더니 지는 해 위로 먹구름이 잔뜩 꼈다. 해가 지는 저녁, 맑은 하늘이 멀어져 가는 밤이 가까 오고 있었다. 맑고 밝은 색깔을 추구하는 나지만 그 고운 빛깔 뒤덮으려는 암흑이 무섭지 않았다. 내 하늘을 잠시 덮은 얇은 이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나는 긍정회로를 사용할 줄 안다. 짙은색의 얇은 이불을 덮은 하늘과 함께 나의 밤을 맞이하는 나는 참으로 낭만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낭만(浪漫)'을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매이기엔 너무 각박한 현실이다. 가끔은 귀를 닫는다. 현실의 소음이 아니라 이상의 화음을 듣고 싶을 때 나는 귀를 닫고 또 연다. 지금은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귀를 열었다. 마음속 잔소리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부드러운 곡에 나를 열었다. 나의 낭만이 고개를 들고 나를 반기는, 참 따뜻한 순간이다.
지치는 때가 더러 있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학업의 성과를 가지고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지쳐왔었다. 나는 스스로와 경쟁하는 길을 택했다. 승부가 나는 스포츠를 싫어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팀이 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이기는 것도 싫었다. 나는 한일전을 눈 뜨고 보지 못했다. 경기가 있는 날엔 콩닥거리는 심장 튀어나올까 방에 들어가 숨었다. 누군가는 경기에서 져야 하는데 패배한 이들의 뒷모습이 너무 처량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게 우리 팀이든 아니면 상대팀이든 패배한 이들이 감당해야 할 실망과 슬픔에 먼저 신경이 쓰였다.
고3 때 나는 매일 칠판에 수능까지 남은 날수와 함께 작은 응원 문구를 적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가고 싶은 길이었고 나는 누구도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높은 등수가 다른 친구를 짓밟은 결과가 아님을 바라고 또 바랐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수능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1교시 언어영역 후에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힘든 하루였다.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서 펑펑 울었다. 다음 날 부은 눈으로 학교에 갔다. 교실의 분위기는 사뭇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지쳐있었다.
갑자기 낭만을 이야기하다 왜 수능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는데, 나의 낭만은 슬픔과 우울의 열매였기 때문일 것이다. 슬프고 지칠 때 내 인생이 감미롭길 소망했다. 인생의 눈물은 쓰지 않다. 눈물의 맛은 달콤함이다. 우리의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달콤함이다. 나는 그 달콤함으로 친구들과 함께였다. 내려놓아야 할 슬픔과 우울이 있었다. 그 안에만 머물러서는 맑은 내 하늘을 껴안을 수 없었다. 내 눈물의 끝에 나는 삶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스무 살의 밤은 뜨거웠다. 우리는 늘 함께 거리를 달렸고 꿈을 꾸었다. 항상 우리는 취해있었다. 진지하게 싸우다가 신나게 노래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뜨거운 밤들을 보냈다. 나는 자주 울었다. 세상의 변두리에 있던 이들을 위해 울었고, 또 내 안의 변두리에 버려져 있던 나를 위해 울었다. 밤은 아주 깊었다.
사랑에 늘 목말랐던 나였어도 눈물의 끝이 달콤함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지금은 함께 하지 않는 나의 친구들이 내게 남긴 작은 한 방울의 온도 때문일 것이다. 딱 한 방울씩 만큼의 따뜻함이었다. 그 따뜻함들이 모여 나를 녹이고 데웠다. 영원히 식지 않을 사랑이었다.
우리는 참 힘들게들 살아왔다. 몇 번이고 이 삶이 끝나는 게 낫다고 되뇌었는지 모른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그런 일들이 생긴다. 나를 살릴 한 방울의 따뜻함이 간절한 순간들이 있다. 그 간절한 순간, 어느 날 도서관 고문서실의 낡은 창 밖으로 하늘을 보았다. 낡은 창만큼 하늘이 일그러져 보였다. 그러나 하늘의 맑음은 그렇게 쉽게 일그러질 성질의 것이 아님을 너무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의 하늘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웅크린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가을의 쓸쓸함처럼 마음 한 구석이 여전히 아파왔지만 나는 울음을 삼키고 다시 살아냈다. 웃었고 또 달렸다.
나를 잡아준 부드러운 손이 있었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그 따뜻한 손이 있었다. 눈물의 끝은 그렇게 달콤했다. 부스러질 내 연약한 마음은 언제나 하늘의 맑음으로 가득해 달콤함을 잊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내 슬픔이 그리고 그대들의 슬픔이 그토록 나를 아프게 해도 그게 끝이 아님을 믿어왔다. 나는 비록 이 슬픔에 휘청거리는 순간에도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왔다. 아프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으며 희망할 수 있음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잊힌 당신의 고달픈 하루가 나의 이 작은 마음으로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밤이어도 괜찮다. 우리에게 그 밤 미워하지 않을 만큼의, 딱 그만큼의 낭만이 살아있다면 지내기 충분한 자리일 것이다. 그러니 짙은 밤의 이불속에서 실컷 울어버리자. 다 쏟아낸 그 순간 걷어차 버린 이불 밖에 맑은 하늘이 우릴 반길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