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저를,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봅니다

by 시절청춘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의 일정도 있고, 남은 휴가의 일주일은 아내와 함께 조용히 보내려 합니다.
지방에 머물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임 차 잠깐 외출했던 것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냈습니다.

귀한 휴가를 헛되이 흘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들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제저녁,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 자연스레 요즘 조직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제가 휴가를 나온 지 10일 정도 지난 빈자리에서도 모두가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었는데, 그 안에는 새로운 구성원들과의 작은 오해와 마찰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불만 섞인 토로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문득 묘한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30대 중후반, 피가 끓던 제 모습이 그들의 얼굴 위로 겹쳐 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 저는 한 곳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며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능력을 인정받던 시기였습니다.

기존에 계시던 선배들이 하나둘 떠나고 몇몇 인원만 남은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선배들이 전입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분들 역시 이전 근무지에서는 훌륭히 인정받던 분들이었지만, 이곳의 시스템은 처음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 크고 작은 실수를 하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런 낯섦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저런 기본적인 것도 못 하나' 하는 오만한 생각으로 새로운 선배들을 가볍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를 중심으로 후배들이 뭉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기존 인원과 새로 온 인원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밀어내는 단단한 벽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조직 안에는 분명한 거리감이 존재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가 주는 오만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제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저는 똑같은 상황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겪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제가 바로 서툴고 어색한 '새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자리가 주는 기득권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견고한 성벽 안에서 낯선 이방인이 얼마나 큰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끼는지를 말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과거 제 행동들이 얼마나 섣불렀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대할 때 '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가 아니라, '이 환경에서는 이것도 모를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으로 먼저 묻고 설명하려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손을 내밀어도 굳이 받아들이지 않는 분들까지 끝까지 붙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부분은 오롯이 각자의 몫이니까요.


​어제 후배들에게도 제 부끄러운 과거를 빗대어 조심스럽게 이런 이야기들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세워진 벽은 제 말 몇 마디로 쉽게 허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깊이 훈수 두는 것을 멈추고, 적당한 선에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부대끼며 지내온 시간에 따라 느끼는 친밀함이 다를 수밖에 없고, 나중에 합류해 겉도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곳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후배들도 스스로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저 또한 오랜 세월을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떠나는 입장에서 굳이 억지로 양쪽을 모두 이해시키려 애쓰기보다,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려 합니다.

겪어내고 깨달아야 할 몫은, 오롯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남겨두는 것이 선배 된 자의 도리일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과거의 나를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산울림 - 회상》

https://youtu.be/0bG8lTKuRGU?si=e7AM1aDMXGZFFVqr


[ChatGPT 활용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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