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의 추운 겨울밤
아이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다. 소박한 식탁이지만, 그 위에는 하루의 조각들이 놓인다. 오늘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내는 반찬을 하나 더 올려놓으며 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식구가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은 바깥세상의 걱정을 밀어두고 싶다.
식사가 끝날 즈음, 아이에게 늘 묻는 질문을 던진다.
“넌 프랑스인 같아? 한국인 같아?”
몇 년째 이어온 질문이다.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한다.
“프랑스인. 내 친구들은 다 프랑스인이니까.”
변함없는 대답이다. 아이가 주관을 갖고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같은 질문을 나눠왔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던졌지만, 이제는 아이를 빙자해 내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어버렸다.
“아빠, 솔직히 말하면 프랑스어로 생각하는 게 더 편해.”
이어서 아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꿈도 아마 프랑스어로 꾸는 것 같아.”
나는 미소를 건네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한국어는 익숙한 소리지만, 생각의 흐름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진다. 꿈조차도 프랑스어로 꾸어진다면, 나는 아이의 무의식 속에서조차 낯선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대답을 들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꿈속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졌지만, 여전히 내 꿈속 언어는 한국어였다.
내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의심 없이 자기 자신을 프랑스인이라 말한다. 그것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나 명확한 그 말에, 어쩐지 가슴 한 쪽이 지그시 눌렸다.
식탁을 정리한 후, 나는 천천히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서진 조명이 벌써 반쯤 어두워진 거울을 비추고 있었다. 흐릿한 내 모습이 거울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내리자, 낯선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끝에 감겼다. 왼손으로 자동차 키를 달그락 거리며 오늘 두번째 출근길을 나선다.
그렇게 익숙해지지 않는 이국의 향기 속 가로등 불 빛에 서서히 몸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