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세상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다. 가사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는 non-크리스쳔이라도 그 애잔한 곡조만으로 감동은 충분하리라 믿는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나 같은 죄인 살리신)
That saved a wretch like me (주 은혜 놀라워)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잃었던 생명 찾았고)
Was blind but now I see (광명을 얻었네)
위와 같은 영어 가사 1절은 좀 더 직역을 해 보면 감동이 새롭다.
들어도 들어도 감미롭기만 한 그 말
놀라우신 주의 은혜가 몹쓸 날 구했네
나 한때 방황했으나 이제 집에 왔네
나 한때 눈멀었으나 이제 밝히 보네
오랜 폭력남편의 삶을 청산한 나도 이 찬송에 자주 참회의 눈시울을 적셨다. 그런데 이 곡을 더더욱 좋아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하나 있다.
2022년 7월초는 우리 손녀 하솜이가 --- “하”나님의 “솜”씨 --- 생후 1년9개월에 접어든 때였다. 애 보랴 일 하랴 너무 힘드니 좀 도와 달라는 딸의 부탁에 우리는 그 때 샌프란시스코 저희들 집에 가 있었다. 아침 8시까지 하솜이를 데이케어(day care)에 데려다주고 오후 5시에 데려오는 것이 내 주요 임무인지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이를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총 15분 거리 중에 채 1분이나 달렸을까, 뒷좌석에서 마치 꿈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Amazing grace how……” 순간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과 함께 나는 백미러를 올려다봤다. 정말 그랬다. 그 조그만 것이 창밖을 보며 그 귀한 찬송을 막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마설마했는데 “……but now I see” 아이는 완벽하게 그 노래를 그렇게 끝맺음했다. 지 엄마는 교회를 안 다니니 그렇고, 성당에 다니는 지 아빠가 밤마다 자장가 삼아 불러 주는 그 노래가 그날 무심결에 터져 나왔으리라. 이 세상 어느 유명 성악가, 어느 찬란한 성가대가 이보다 더한 감동을 주랴. 마침 나도 가사를 알고 있던 터라 우리는 입을 모아 그 찬송을 한 번 더 불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유모차에 하솜이를 태우고 다닐 때면 꼭 이 노래를 같이 불렀다. 한번은 앞에 가던 행인이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감격의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때 그 길에 그 모든 것이 참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하솜이는 나보다 꼭 61년 더 늦게 태어났다. 생일도 서로 하루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이 할아버지가 하솜이에게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뜻도 모르고 불렀을 그 노래 가사처럼, 그러나 언젠가는 밝히 알게 될 이 감격의 찬송처럼, 모든 것이 하늘의 은혜임을 알고 평생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할아버지처럼 뒤늦게 막차 타지 말고, 하루라도 더 빨리 무릎을 꿇는 것이다. 이번 528기 부부학교에서도 나 같은 몹쓸 남편이 돌아서는 기적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그 자녀들에게 또 손자손녀에게로 흘러가, 기저귀도 채 떼기 전에 “Amazing grace……”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기적의 꽃이 만방에서 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