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연주하는 엄마의 피아노
(하이네 시, 멘델스존 곡)
노래의 날개 위에
그대와 함께 날아가리
가련한 연꽃이 피는
갠지스 강의 들로.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엔
장미가 향기 뿜고
별처럼 빛나는 백합과
부드럽게 웃는 제비꽃도 피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거룩한 향기 실어 나르고
야자수는 조용히 속삭이며
꿈꾸는 듯이 하늘을 우러르네.
그곳에서 우리는 조용히
사랑에 잠겨 앉으리
그리고 평화롭고 고요하게
행복에 잠기리라.
요즘 우리 요양원에서는 매일 아침 작은 콘서트가 열린다.
오전 10시가 되면 한 어르신께서 1층 ‘행복한 카페’로 내려오신다.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서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께선 전직 음악 선생님이셨다. 얼마 전 뇌출혈까지 겪으신 뒤로는 혼자 지내시기 어려워져 요양원에 들어오시게 되었다.
입소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르신께서 피아노를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관심이 있으신 듯해, 연주를 한번 해보시겠냐고 권해드렸다. 잠시 머뭇거리셨지만, 곧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기 시작하셨다.
“띵… 딩. 딩딩딩…” 오래된 기억 속 멜로디가 서툴고도 느리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피아노 연주는 어르신의 아침을 여는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피아노를 다시 치는 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며 아드님께선 피아노책을 한 권 보내오셨다. 50대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오신 어머니, 그 외로운 삶에 찾아온 치매라는 불청객, 어머니의 빈집을 정리하다 찾았다는 낡은 피아노책엔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오늘 아침, 어르신의 연주는 겨울 동요 '창밖을 보라'로 시작됐다. 아직 가을도 제대로 오지 않았는데 벌써 겨울을 불러내신다. 이어지는 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 나도 모르게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르신의 손끝이 다시 천천히 건반 위를 맴돌았다. 이번엔 멜로디가 조금 더 길고, 서정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노래의 날개 위에’, 멘델스존이 작곡한 섬세하고 우아한 곡이다. 나도 예전에 피아노를 배우며 연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맑고 고운 선율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손놀림은 느렸지만, 한 음 한 음에 지나온 삶의 결이 스며들었다. 마치 어디론가 날아가고픈 소원처럼, 사랑하는 이를 날개에 태워 향기로운 들판으로 데려가려는 오래된 약속처럼 고요하고 애틋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신 어르신의 옆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워 보였다. 알츠하이머도, 뇌출혈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르신의 바람을 막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어르신을 감싸 안을 뿐이었다.
물론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연주는 아니다. 어르신과의 대화처럼 자주 멈추고 반복된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느 순간 "꽝"하고 연주회가 문을 닫는다.
어르신께선 매번 건반 몇 개가 잘 눌리지 않는다며 조율을 좀 하라는 충고를 잊지 않으신다. 엊그제는 연습 시간이 짧아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셔서 지켜보던 직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웃었다. 삐걱이는 오래된 건반처럼 느릿한 어르신의 기억이, 저 피아노 가락처럼 이곳에서 다시 피어나길 기도했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지만, 박자도 음정도 흔들리지만, 어르신의 연주는 아침마다 우리에게 감동 이상의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기억과 마음을 이어주는 기적의 순간이다.
그 피아노는 사실,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존재다.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 엄마가 사주신 것이다.
초등학교도 아니고 대학교에 들어가는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시며 엄마는 나보다 더 들떠 계셨다.
어릴 적 엄마는, 시골 마을로 새로 부임한 여선생님을 동경하셨다. 단정하게 양장을 차려입고 교문을 들어서던 그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엄마는 매일 아침 담장 너머로 그 선생님의 출근길을 지켜보셨다고 한다.
그렇게 선생님이 되는 꿈을 키우셨지만, 무서운 외할아버지는 “여자가 웬 공부냐”며 끝내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엄마는 결국 학교 문턱에도 서보지 못한 채, 그 꿈을 가슴속 깊이 묻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교육대학에 합격했을 때, '우리 딸이 선생님이 된다니, 장관도 부럽지 않다'며 기뻐하셨다.
피아노가 들어오던 날, 반들반들 윤이 나는 피아노를 쓰다듬던 엄마의 가난한 손등. 그 위에 번지던 벅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어려서 못 배운 피아노, 이제라도 꼭 배워봐라"
마치 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을 건네듯, 엄마는 그날 통 큰 선물을 내어주셨다. 그 엄마의 피아노가 지금 이곳에 있다. 나의 손을 거치고, 여러 손주들의 손을 거치며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를 열어줬던 피아노, 영원히 낡지 않는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깃든 가슴 찡한 피아노다.
이 오래된 친구는 이곳으로 온 후, 더 많은 이들의 따뜻하고 소중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몇 년 전, 면회 온 중년의 아들이 어설프게 들려주던 동요 한 곡, 지신이 칠 수 있는 유일한 곡이라고 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연주하던 경쾌한 멜로디는 오히려 더 뭉클했다. 그렇게라도 엄마의 기억을 되살리고픈 아들의 소원이 실려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띄엄띄엄 노래를 따라 부르던 모자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느 날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손자가 유학을 앞두고 할머니를 뵈러 왔다. 그날 카페에는 여러 가족들이 면회를 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좀 쳐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잠시 후 카페에는 작은 연주회가 열렸다. 아름답고 화려한 선율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라며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땐, 어르신의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혀있었다. 손자의 연주는 얼마 후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신 할머니께 마지막 작별의 편지가 됐다.
직원들이 준비한 합창 무대에서도 이 피아노는 빠질 수 없는 주인공이다. 연습 시간마다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도, 어르신들을 향해 전하던 진심 어린 노래도, 이 오래된 피아노가 있어 더 따뜻하게 빛났다.
얼마 전이었다. 또 다른 어르신께서 피아노를 보시고는 한 번 쳐보고 싶다고 하셨다. 피아노 뚜껑을 열어드렸더니, '솔~미파솔 라라솔~' 한 음씩 천천히 눌러보셨다.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이 건반 위를 헤맸다. 그러다가 건반 몇 개가 내려앉은 모습을 바라보시며 나지막이 중얼거리셨다.
"너도 나도 고장이 났구나....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그리고는 잠시 후, 이 피아노의 사연을 알고라도 계신 듯 말씀을 이으셨다.
"이런 거 돈 몇 푼 준다고 팔지 마. 잘 갖고 있다가 애들 가르쳐야지. 이런 건 파는 게 아니야"
어르신의 말씀 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함께 들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중고마켓에서 돈을 얹어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이 낡은 피아노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오래된 피아노에는 엄마의 사랑이, 내 젊은 날의 흔적이, 손끝을 맴도는 어르신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낡고 군데군데 상처입은 둔탁한 소리가 나지만, 그 소리마저도 따뜻한 이야기를 싣고 온다.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이곳의 온도와 마음을 바꾸어 놓는 기적의 피아노.
때로는 어르신의 잊힌 기억을 불러내고, 때로는 직원들의 지친 마음을 다독이며, 때로는 자녀들의 눈물을 위로한다.
다가올 어느 날, 이 또한 누군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리라.
"음악은 슬픔을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위로를 준다."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