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의 기쁨, 행복, 달콤함. 그리고 기다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장석주, '대추 한 알' 중)
요양원 옆 치유정원 장독대 옆에는 대추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오늘은 가을빛에 여물어가는 붉은 대추를 수확하는 날이었지요. 언뜻 성글게 보이던 열매였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나둘 따다 보니 어느새 바구니 두 개가 그득해졌습니다.
'저 조그만 나무에 올해도 붉은 대추가 잘 달릴 수 있을까?' 봄부터 품었던 기대가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푸짐하게 맺힌 열매를 한아름 안고 돌아오며, 그냥 웃음이 납니다.
시인의 말처럼, 나무를 심고 몇 해를 지나 보니 대추 한 알 달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바람을 견디고, 땡볕과 서리를 이겨내며, 긴 외로움의 날들을 지난 후에야, 동그랗고 어여쁜 대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눈과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골고루 열매를 내어주던 두 나무에 이상 신호를 감지한 것은 올봄이었습니다. 나란히 서 있던 한 그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지대를 다시 세우고, 병든 나뭇가지를 자르고, 거름과 농약으로 관리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웠지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차별 없이 정직했으나 두 나무의 운명은 다르게 흘렀습니다. 한 그루가 폭염을 견디고,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으며, 힘차게 뻗어올라 주렁주렁 열매를 달 동안, 병든 한 그루는 나뭇잎조차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저 겨우 숨만 쉬는 듯, 가느다란 생명을 유지한 채로 가을을 맞는 그 나무가 오늘은 유난히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 대추나무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긴 세월의 풍파 끝에도 여전히 밝은 미소와 감사의 열매를 내어 놓지만, 또 어떤 이는 온갖 정성과 사랑 속에서도 눈물과 한숨 속에 시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삶이 소중하듯 열매를 내지 못한 저 나무를 댕강 잘라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렇게라도 살아남은 나무에게 다시 피어나길 기원하는 내년 봄의 희망을 걸어둡니다. 풍성히 열매 맺은 나무와, 열매 없이도 꿋꿋이 버티는 나무가 함께 있어 정원이 더욱 깊어지듯, 우리 삶도 그렇게 서로를 채워가며 이어지길 빕니다. '치유정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연과 삶의 치유가 함께하길 비는 오늘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어르신들의 마음도 저 대추처럼 붉게 농익어 갑니다. 둥근 보름달을 기다리듯 자녀들을 만날 설렘이 한 알 한 알 곱게 물들고 있습니다. 원근각처에서 찾아오는 가족과 친지들의 손을 맞잡고 즐거워하실 어르신들의 얼굴이 벌써부터 그려집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자녀들의 손길과 손주들의 인사는 태풍과 서리를 견딘 나무에 내리는 단비와 같습니다. 대추가 영글어가는 자연의 비밀처럼 어르신들께 행복을 더할 단비 같은 추석 면회를 기다립니다.
시력도, 청력도, 기억력도 또렷하지 않은 어르신들과의 면회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요양원의 면회 생활을 위한 몇 가지 비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가벼운 산책을 해 보세요>
이렇게 좋은 날씨라면 잠시라도 옥상 정원이나 주변을 함께 거닐며 바람을 맞는 산책이 좋습니다. 걸음이 불편한 어르신께는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계절을 느끼게 해 드릴 수 있지요. 푸른 하늘과 햇볕 한 줌이면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추억의 사진첩을 준비해요>
옛날 사진첩을 함께 펼쳐 추억을 더듬는 대화도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면회 때마다 똑같은 사진첩을 들고 오시는 아드님이 계십니다. 매번 같은 사진을 놓고도 어르신의 이야기는 늘 새롭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인사라도 드리는 날엔 사진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과 자랑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함께 노래를 불러요>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잊으셨어도 익숙한 노랫 가락을 따라 부르시는 신기한 모습을 이곳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4층에 계시는 유어르신의 면회 모습이 그렇습니다. '에델바이스, 즐거운 우리 집..." 면회를 오실 때면 세 따님들과 함께 부르는 작고 고운 노래들이 어르신을 감싸 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천사들의 노래 같습니다.
< 손주들의 영상을 준비해 보세요>
손자·손녀의 영상을 휴대폰에 담아와 보여드리는 것도 큰 선물이 됩니다. 영상 속 손주들처럼 다시 아기가 되신 어르신들께서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을 뵈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작은 간식을 챙기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르신이 좋아하는 작은 간식 하나를 챙겨 오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간혹 빈손으로 왔다 가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자식 앞에서는 아무 말씀 못하시다가 뒤돌아서서 서운해하는 어르신들을 뵐 때면 참 안타깝습니다. 설사 잘 드시지 못하더라도, 사랑을 담아 건네는 작은 정성이 어르신의 마음을 달콤하고 든든하게 채워줄 수 있습니다.
이런 조그만 마음을 모아 들고 어머니를 뵈러 올 때, 어머니의 하루는 어여쁜 대추처럼 더 특별하게 익어갈 겁니다. 대추나무의 결실처럼 정성을 쏟고 마음을 기울인 만남은 언제나 달고 깊은 열매를 맺습니다. 다가오는 추석, 우리의 면회가 그런 달콤한 결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정원에서 수확한 대추를 맛보았습니다. 작지만 꽉 찬 그 대추가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고생 끝에 맺은 열매가 이런 맛이구나” 싶었습니다.
내일 있을 추석맞이 송편 만들기 시간에 이 달콤한 대추를 어르신들과 함께 나눌 예정입니다. 송편의 고소함과 함께 어우러질 달큰한 맛은 아마도 긴 여름을 견뎌낸 보람이자, 기쁨이 될 것입니다. 벌써부터 동글동글 맛있게 빚게 될 내일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다시 두 그루의 대추나무를 바라봅니다.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는 삶의 기쁨을, 열매 없이 가을을 맞은 나무는 견딤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둘 다 다르지 않게 귀하고, 다르지 않게 소중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처럼요.
살아낸다는 것은 반드시 무언가를 맺어야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를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께서 그렇게 오늘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추석의 햇살 아래, 어르신들의 얼굴이 저 대추처럼 붉게 빛나길 기도합니다. 비록 서로의 삶은 달라도, 바라보는 보름달이 하나이듯, 예쁜 소원들을 담아 반가운 이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어르신들과 함께.
그 기다림과 만남 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의 큰 정원이 되어갑니다. 그 정원에 맺히는 열매는 사랑과 감사, 그리고 삶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붉은 대추처럼 고마운 당신이 있어, 참 행복한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