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추석 황금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았다. 식당도, 카페도, 관광지도 가족들과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 틈에 나는 혼자 추석을 맞았다. 홀로 저수지 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먹다가 모기에게 쫓겨나 자리를 옮겼다. 여물 뜯어 먹는 말들이 마주 보이는 곳에 다시 자리를 잡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 속 활자보다는 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행복한 미소를 품으며 지나가는 젊은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엄마, 아빠, 아이까지 옹기종기 모여 느긋하게 걸어가는 대가족, 그들이 이루는 복작하고 풍요로운 풍경이 그날이 대명절 추석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너도나도 풍요로운 한가위를 보내는 가운데 홀로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보름달을 만났다. 육지는 비가 와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는데, 제주는 눈부시게 밝은 보름달이 떴다.
보름달, 만월, 꽉 찬 달.
회청색 하늘에 뜬 꽉 찬 달이 그날만큼은 텅 빈 달처럼 느껴졌다. 하늘에 노란 구멍이 뚫린 듯, 딱 보름달 크기만큼 마음이 허전했다.
다음날, 나는 양손 가득 피자와 술을 들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카페를 찾았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카페였다. 직원들 중에는 나처럼 육지에서 홀로 내려와 홀로 추석을 맞은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 영업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홀에 모여 추석 파티를 열었다. 가족과 함께 추석을 지내고 온 직원들은 명절 음식을 싸 왔다. 명절 음식을 맛보지 못한 동료들을 위한 배려였다. 그 마음을 듬뿍 넣고 비빈 비빔밥과 각종 전, 제주산 무늬오징어 숙회, 치킨, 피자와 함께 거하게 명절 술상이 차려졌다.
커다란 테이블에 9명의 직원들과 직원의 아이 한 명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술잔을 부딪쳤다. 사장님은 아이에게 용돈을 건네고, 아이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웃음꽃이 피고,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렸다. 오징어 먹물에 검게 물든 서로의 입술을 쳐다보며 빵 터지고, 서로에게 먹물 듬뿍 묻은 오징어를 양보하며 고운 정을 주고받았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이야기와 웃음을 나누고 술잔에 담긴 정을 주고받은 그날 밤, 테이블에 둘러앉은 10명의 사람들은 가족이었다. 고적했을 서로의 명절을 복작하게 만들어주고, 허전했을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그날도 보름달이 떴다.
보름달, 만월, 꽉 찬 달.
텅 비어있던 달이 꽉 찬 만큼 더없이 풍요로워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