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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신입

by 매너티연


프로그램 개발 회사에 입사하고 대략 3개월간은 상사가 시킨 일에서 어려움을 발견했을 때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물어보고 도와달라 요청하면 윗 선배들이 ‘얘는 이 회사 어떻게 들어왔지? 내가 하나하나 다 가르쳐 줘야 돼?‘라고 할 것만 같았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르는 것들이 있어도 끝까지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러나 끝까지 물어보지 않는 신입이 거슬렸는지 상사가 내게 화를 내었다. ‘언제까지 할 거냐? 모르면 물어보면서 해’라며 화를 내셨다. 그 말을 듣고 '능력 없는 나'를 받아들이고 몰라도 혼날 위험을 무릅쓰고 물어보며 꾸준히 배워갔다. 상상한 것과 달리 상사에게 여쭤보며 일을 해결하니 더 빨리 배우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던 무서운 상사는 사라지고 끊임없이 물어보는 나에게 자신이 아는 한에서 모든 것을 알려주려 하는 친절한 상사가 있었다.


모든 것을 해내려는 신입을 바라보는 윗사람들은 융통성 없고 일을 지연시키는 능력 없는 신입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신입이었던 나는 외부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았고 못하면 무시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해결해야 할 더 많은 일들을 지연시키는 셈이었다.


과거의 나의 모습들을 바라보는 계기가 된 건 최근이었다. 타인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 흔히 우리가 외골수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통해 과거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신념을 고수하여 결국엔 이뤄낸 성공한 사업가들의 고집과는 달리 '나는 너와는 달라, 네가 못한 것? 네가 오래 걸린 것? 나는 해낼 수 있어 더 빨리 이뤄낼 수 있어'라는 타인의 의견에 귀를 막고 자신의 비대해진 자의식을 가속화시키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이다. 예를 들면 똑같은 길에서 누군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는 조언을 무시하는 자들을 말한다. 본인들은 특별하고 대단하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착각말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조언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이것저것 미련하게 해내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겪어 보지 않은 인생을 다른 사람의 조언을 통해서 배우고 길을 다시 조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좁은 시야에 의존하는 그 자신감이 오만해 보이기도 했다.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면 스쳐 지나간 인생의 선배들이 한 조언은 대부분 내 인생에도 속한 말이었다. 어리고 오만했던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나의 인생엔 당신이 한 말과 일치하지 않을 거야! 더 좋은 결과가 있을 뿐이야’라며 귀담아듣지 않았다. 정말 어리고 오만하며 자신만만했다. 믿을 구석 하나 없던 나에게 자신감과 과잉된 자의식으로 꾸역꾸역 살아냈지만 양날의 검처럼 그 성향이 나를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이제 30년을 살았다. 누군가는 '고작 30년 살고 이런 글을 쓰는 거야?'라며 비웃을 수 있지만 살아보니 젊을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 자신만만함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게 하는가 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지연시키는가를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겸손해라, 서로 돕고 살아라,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나에게 사람들과 서로 상호작용하며 살아라는 말은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상호협력적인 사람이 아닐뿐더러 사람들 또한 나를 싫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일어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 상호협력적인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매사 깨닫고 있다. 지금 하는 일들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을 일들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혼자가 되면 가는 길이 더뎌질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나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부모의 도움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에 감사하고 매일매일 깨닫는 중이다.



—매너티 연



사진: UnsplashGiacomo Berar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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