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4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능력에 비해 복지와 처우가 좋았던 회사를 다녔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사장님의 멋있는 비전과 좋은 직원들의 합작으로 빛을 발하던 회사였다. 대기업 못지않은 중소기업이라는 생각으로 나름의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 당시 입사부터 퇴사하기 전까지 회사는 내 인생에 자랑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기획하고 미래를 꿈꾸고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회사는 구원자였다. 아마 인생이 변한 기점이라면 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서론은 회사에 대한 칭찬일색이지만 퇴사하기 전엔 원망 투성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발행하게 되기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돌아보는 많은 시간을 가졌다. 퇴사 후 여러 회사를 전전했지만 정신적 피로감에 지쳐 오랜 시간 어떤 회사를 가도 오랜 시간 발붙일 수 없었다.
퇴사 후 알게 된 나의 문제점
퇴사를 오래 다니지 못했던 원인은 많은 부차적인 요소가 있지만 크게 꼽자면 5가지였다.
1. 높은 자의식
2. 조급함
3. 감사하는 마음의 부재
4.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
5. 낮은 자존감(자기혐오)
첫 째, 높은 자의식은 회사생활에서 큰 독이다.
'사람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해', '이 집단에서 최고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 타인의 시선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장기전에 실패한다. 나로서 존재하지 않고 타인이 보았으면 하는 더 나은 '나'의 모습에 기대하며 긴장 모드로 돌입한다. 그러다 보면 실수 한 번에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실력을 낮게 평가할 것이라 지레짐작해 버린다. 특히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은 마치 게임 종료 후 다시 재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홧김에 그만둬버리기도 한다.
둘째, 조급함은 높은 자의식의 연장선이다.
자의식이 높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의 평가에 의식하고 그에 대한 빠른 피드백을 원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건지 확인받고 싶어 한다. 또는 주변 동기들보다 더 나은 평가로 빠른 도약을 원한다. 그래야 회사생활을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더 빨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한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빨리 올라갈 수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런 조급함은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수단이 된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의 부재이다.
낮은 스펙으로 운 좋게 이런 회사를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았다. 회사의 바라는 인재에 한참 떨어지는 사람으로 들어왔기에 평균이 되어야 한다에서부터 대단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가득 차있었다. 만족보다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회사를 문제없이 다닐 수 있음에 만족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 회사에서 일을 배울 수 있고 지원해 주는 복지 같은 것을 활용하여 나의 실력을 늘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미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감사하는 마음의 부재는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를 지연시킨다.
넷째,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했다.
좋은 대학만 나오면 괜찮을 거라 여겼다. 사회를 나와보니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야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치 않은 사회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엔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겐 끝없는 채찍질을 한다. 과정 속에서 재미를 찾지 않으면 결과에 집착하고 결과로부터 자신이 우등한 지 열등한지를 결정짓는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정신적인 지지대는 점점 무너지게 된다. 남들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채찍질과 당근을 주며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고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끝없는 채찍질에 지쳐 스스로 무너지고 '나'라는 사람도 잃어버린다.
다섯째, 앞에서 설명한 것들은 모두 낮은 자존감의 결과이다.
자존감의 형성은 영유아기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그때 부모의 일관되고 안정적인 사랑과 훈육을 통해서 자아존중감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우리 부모는 사랑을 주셨어도 일관되고 안정적인 사랑을 주진 않으셨다. 매사 바뀌는 가정의 분위기는 맑을 땐 맑았다가 갑자기 스콜성 폭우가 내리기도 하고 갑자기 태풍이 불거나 화창한 봄날에 우박이 내리는 것 같은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자리 잡으니 자아 존중 보단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에 집중했다. 생존이 우선순위이다 보니 자아존중감과 원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무심했다. 생존이 불안정했기에 항상 안정을 추구했다. 그것이 회사라는 집단에서 인정받기 위한 인정욕구로 낮은 자존감이 발현되었다.
회사를 장기적으로 다니지 못하는 것은 위의 이유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관계, 오래된 조직 문화, 부당한 처우 등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 또한 많이 차지한다. 그러나 분명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위와 같은 행동만 잘 조절해도 회사 생활에서 겪는 정식적 괴로움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매너티 연
사진: Unsplash의Nick Fe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