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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000만 원 후려쳐진 이야기

10화. 이것이 바로 야생, 리얼 처우협상이다.

by 무빵파파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언제나 희망적인 문장들이 따라온다.


"이직은 재직 중에 준비해야 한다."
"연봉은 무조건 올려야 한다."
"경력자는 전문성을 강조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아니, 맞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직접 채용을 해보고, 또 구직자로서 면접 자리에 앉아보니 채용은 90%가 운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사람의 진짜 업무역량이나 성격 같은 것들은 나머지 10%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면접은 보통 30분 안팎으로 진행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직자는 회사의 속사정을 알 길이 없다.

겉으론 사람이 필요해서 채용한다고 하지만, 그 배경에는 알 수 없는 수많은 전제가 깔려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연봉 상한선이 이미 정해져 있다든지,

나이 제한이 존재한다든지,
혹은 인맥으로 이미 내정자가 정해져 있는데 공정성을 위해 보여주기식 공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연봉 상한선에 걸려있는 한 회사에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당연히 면접을 보기 전에는 연봉 상한선이 있는지 없는지 구직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서류합격을 전달하면서 바로 연봉 이야기부터 꺼냈다.


'저희 내부기준에 따르면 귀하의 연봉은 2천만 원 이상 삭감을 해야 합니다. 면접을 보시겠습니까?'


이전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내 연봉은 업계에서 꽤나 높은 축에 속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일 연차, 동일 나이대에 비해서 높은 축이다.


내 나이는 이제 40이지만 연차는 15년 차다.

25살부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요즘 신입사원이 30살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동 나이대 대비해서 최소 5년 이상 경력을 먹고 들어간다. 당연히 그에 따라 몸값도 높다. 단순히 연차만 쌓인 것이 아니라 실적도 좋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나는 '희망퇴직자'였다.

그 사실 하나로 내 능력은 평가 절하되었고,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 있었다.


면접을 보게 된 회사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능력이 없으니 밀려났겠지. 우리가 후려쳐도, 어차피 아쉬운 건 저쪽이야.'


굉장히 불쾌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아쉬운 사람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태어났고, 미래는 불안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대표이사가 직접 면접관으로 참석한다기에, 나의 역량을 어필하고 연봉협상을 시도해 보겠다고 전달했다. 그리고 면접에 참석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러나 인사팀장의 말이 상당히 무례했다.

'면접에 참석하신 것은 지난번 저희가 드린 제안에 동의한다는 의미신가요?'


나는 동의하지 않고, 내 역량은 2천만 원을 삭감하면서까지 입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지만, -2000만 원에서 500만 원 오른 -1500만 원의 제안을 받았다.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지친 나는 받아들일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절했다.


지금 돌아보면, 잘 거절했다.
나는 지금, 그보다 훨씬 나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특히 원하지 않게 회사를 떠나야 했던 분이 있다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을 낮추지 마세요.

이직은 때때로, 운이 좋아서 되는 일이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 운은 반드시 다시 온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채용에서 본인의 역량이 문제가 되는 것은 10% 이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0% 는 운이다. 그저 운이 없었기 때문이고, 운은 언젠가 다시 찾아온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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