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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기도 전에 갑질을 당하다

09화. 존중받지 못하는 구직자의 현실

by 무빵파파

나는 2010년에 이어 15년 만에 다시 이력서를 쓰고 있다.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심스러워진다.


서류 통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 면접을 준비하는 날들, 그리고 연락을 기다리는 새벽들.
그 모든 과정은 내 작은 세계를 흔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흔들림보다 더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날 나는 병원에 있었다.


진료 대기를 하며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은 사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있었다.
받자마자 들려온 목소리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면접일이신데, 안 오시는 건가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면접? 오늘?
내가 놓친 건가 싶어 메일함을 열어봤다.

정말로, 이틀 전에 온 메일 한 통이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면접 일시는 O월 O일 오후 OO시입니다.”

아무 협의도 없이, 아무 설명도 없이.
그저 ‘이때 오세요’라는 통보.

보통의 경우라면, 통보여도 문자로 다시 한번 연락을 준다. 이메일을 즉시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전화 또는 문자를 받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면접을 보러 오라는 날짜는 메일을 보낸 날로부터 불과 이틀 뒤였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회사와 면접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 역시 팀장으로서 면접관 자리에 앉아본 적도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상식이 있다면,
그건 ‘면접 일정은 협의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원칙이다.


특히 경력직에게 있어서 ‘시간’은 무겁다.
누군가는 퇴근 후를 쪼개고, 누군가는 연차를 써야 한다.

그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메일 한 통으로 모든 것을 일방 통보해 버리는 회사.

게다가 그 회사는 스타트업도 아니고, 알려지지 않은 신생 기업도 아니었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 계열사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현재 구직자의 위치는 이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나 또한 회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지원자만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회사도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다.

지원자가 면접을 통해 회사를 본다.


그 태도와 분위기를 느끼고,
이 조직에서 내가 숨 쉬며 일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 기본을 놓쳤다.

서로를 존중하는 채용 과정은커녕,
메일 한 통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날의 전화 이후, 나는 그 회사를 ‘거른다’.
아마 다시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의 이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는 아주 작은 곳에서 드러난다.
면접 일정 하나를 대하는 태도에서조차, 그 회사의 철학이 묻어난다.


비록 인연은 닿지 않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회사’라는 것을, 초반에 알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그 자체로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이력서를 쓰고 있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면접을 준비하고, 결과를 기다리겠지.


그러니 부디,

회사는 ‘평가하는 자’이기 이전에,

‘존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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