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님. 어머니께서 목욕 거부가 심하세요”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목욕에 대해 여쭤보면 ‘센터에서 목욕을 하셨다’고 말씀하시고,
‘센터에서는 집에서 매일 목욕을 한다’고 하셨다.
상황에 따라 말씀이 달라지시는 걸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누나가 어렵사리 목욕탕으로 모시고 갔을 때,
모처럼 딸하고의 목욕이라며 즐거워하시던 엄마셨다.
그런데 정작 입구에서는 안 들어가신다고 발길을 돌리셨다.
치매 전의 엄마는 늘 정갈하고 단정한 분이셨다.
마을 경로당에서 입으시는 옷과 집에서 입는 옷을 구분하여 입으실 정도였다.
가족의 건강 기원을 위한 치성을 드리는, 한 겨울에도 목욕을 하시는 엄마셨다.
목욕이 싫으신 걸까?
뇌경색으로 쓰러져 계실 때를 생각해 본다.
CCTV를 보고 집으로 달려갔을 때 엄마는 ‘알몸’ 상태로 의식이 흐릿하셨다.
당시 엄마는 주무시다가 ‘변 실수’를 하셨다.
입고 있던 속옷으로 변을 치우기 위해 발버둥을 치셨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소뇌에 찾아온 뇌경색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나를 알아보시고는
당신의 몸을 가리려는 간절한 몸부림을 하셨다.
아들에게 보이는 것이 민망하셨던 것이다.
의식의 마지막 끝자락을 붙잡고 수치심을 감추려 하셨다.
엄마는 왼쪽 가슴이 없으시다.
20년 전에 몹쓸 놈의 유방암이 앗아갔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거부하신 것은 목욕이 아니었다.
노출로 인한 수치심이었다. 그리고 존엄성의 상실이었다.
치매가 진행되어도 감정을 담당하는 뇌는 오래 남아 있다.
두려움과 수치심을 담당하는 편도체.
자기 인식을 담당하는 섬엽은 치매 후기까지도 비교적 오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창피하다.’,‘남에게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이런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엄마께서는 비록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늘 단정하고 정갈하셨던 모습 그대로
과거 당신의 모습을 또렷이 인식하고 계셨다.
엄마는‘과거의 나’와‘현재의 나’ 사이의 간극에서 극심한 수치심과 혼란을 겪고 계셨다.
옷을 벗어야 하고, 몸을 드러내야 하는 행위에 강한 저항을 하신 것이다.
내밀한 엄마의 사적영역이 침범되었다는 두려움과 함께
수치심이 얼마나 크셨을까?
타인의 손길을 받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는
생각이 엄마의 자존감 붕괴와 겹쳐,
큰딸에게 까지 목욕 거부가 일관되게 나타났던 것이다.
가슴 절제가 남긴 신체적 콤플렉스의 악몽
치매 환자들이 겪는 고통 중 하나는 평소보다 자기 통제력이 약화된다.
또, 외부자극에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자존감이 극도로 민감하게 흔들린다.
여성에게 가슴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여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건강한 사람이라도 신체적 결손은 자존감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따라서 엄마께서도 누구에게도 달라진 몸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수치심과 함께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고 계셨다.
과거 신체결손으로 인한 신체 이미지 손상.
치매로 인한 자기 보호 본능의 과도한 발현.
당신의 무기력에 대한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과의 괴리감.
강화된 정서기억이 불안과 수치심으로 연결.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며 불안하고 두려운 과정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공간적 사실적 오류를 범했다.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과거와 분리하여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치매가 엄마의 감정기억까지 둔감하게 만들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오히려, 치매로 인한 감정의 진폭이 민감하게 작동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 엄마를 괴롭힌 수치심은 반갑지 않게 다가왔다.
목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스스로 거리를 두려는 회피본능.
삶의 선택과 결정 대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심리적 불안과 위축감.
약해지는 자아와 가치 상실을 포함한 부정적 자기 인식.
자식과 가족에 대한 부담에 관한 관계의 문제.
그리고 불확실한 내일과 통제력 상실이다.
- 사회적 고립과 위축
기억력과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당혹감은
치매환자들이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치매 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은 안타깝게도,
자기 내면의 낙인으로 내면화되어 분노 등을 유발한다.
그리고 수치심, 자존감 저하, 자신감 상실...
일상 활동으로부터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 자존감 붕괴
돌봄을 주던 사람에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면서,
‘책임자’, ‘보호자’였던 지위를 잃고 자존감이 상실된다.
평생 가족을 위해 보살피고 돌봤던 엄마께서 느끼셨을
상실의 아픔은 존재의 균형을 깨뜨렸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역할기반 관계에서 힘의 역학이 변화하면,
치매환자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우울과 불안·공격성 증가, 대화 거부 등 오히려 치매 진행에 가속이 붙게 된다.
치매환자가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목욕이나 돌봄이 아니다.
표현력은 떨어져도 감정은 오히려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볼 때 그들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