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이 부끄럽다. 치매를 나이 들면 자연스럽게 오는 질병 정도로 생각했다.
치매가 어떤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신체 기능의 상실이 아니라 ‘기억의 상실’이다.
지난날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도, 그리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도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 가끔씩 초점 없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
- 통제력을 잃고 터져 나오는 남을 의심하는 말들.
- 기계적으로 반복적인 행동들.
벌써 3년 전 일이다.
혼자 계시는 엄마를 위해 주말마다 반찬을 챙겨 드렸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가면 냉장고 속 반찬은 그대로였다.
상해 버린 음식들도 있었다. ‘입맛이 없으신가?’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 당시, 엄마께서는 ‘옆집 여자가 장독을 훔쳐갈 것이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옆집 아주머니께서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터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근거 없이 왜 의심하시냐”라고 퉁명스럽게 대응했다.
그 이외에도 수많은 치매의 증상이 있었지만, 나는 알아 채지 못했다.
무지가 엄마의 병을 키웠다는 죄책감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뇌 관련 전문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엄마가 치매 일 것이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장롱 속에 방치된 자격증처럼, 내 지식도 실 생활과는 동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방문한 건강관리공단 직원의 한마디가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어르신 치매가 의심됩니다.”
“설마? 치매 일리가 없어,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 걸 거야”
나는 근거도 없이 여전히 부정했다.
며칠 후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인지도 검사를 하실 때는 “머리도 아프다.”라며,
5분 만에 검사실을 뛰쳐나가셨다. 달래고 어르며 겨우 검사를 마쳤고,
MRI 등 종합검사결과를 기다렸다.
가슴 졸이는 며칠이 지나, 드디어 판정결과가 나왔다.
“알츠하이머치매”
순간 멍했다. “엄마가 치매라니”믿기 어려웠지만, 검사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
뇌 공부를 한 나로서는 부끄럽고 죄책감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다시 시작된 공부.
치매와 싸우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치매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엄마에게 온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다.
전체 치매의 약 60~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형태다.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대표적으로 뇌에 쌓이는 단백질이 주범으로 꼽힌다.
베타 아밀로이드 플라크, 뇌 속의 독성 단백질
뇌 속에는 약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통해 화학 물질을 주고받으면 작동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여러 원인으로 독성 물질이 조금씩 축적된다.
마치 녹슨 파이프에 찌꺼기가 쌓이듯, 뇌 속에도 이상 단백질이 쌓이는 것이다.
‘베타 아밀로이드’라 불리는 이 독성 물질은 뇌세포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플라크’라는 덩어리를 형성한다.
‘플라크’가 신경세포 사이에 끼어들어 마치, 전화선의 연결이 끊긴 거처럼
뇌의 각 부위가 서로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 이 모든 부위가 단절되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는 60대를 넘는 노인들이 발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로 인해 10년이나 20년 전부터 아주 천천히 느리게 진행이 된다.
단지 우리는 자각을 하지 못할 뿐, 이미 뇌 속에는 조용한 파괴가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
침묵 속에서 치매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온다.
흔히, 치매를 ‘긴 이별’이라 부르는 이유다.
65세 미만에 발생하는 치매를 초로기 치매(조발성 치매)라고 한다.
중앙치매센터의‘2025년 대한민국 치매현황’에 따르면,
- 전체 치매환자 97만 명 중 초로기 치매 환자는 약 9%
- 지난 10년 동안 3.6배나 증가
- 2044년이 되면 치매환자는 약 400만 명으로 증가할 통계를 보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30세때 발병되는 사람들이 나타 나고 있는 실정이다.
‘설마 나도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
뇌세포 파괴 속도 초로기 치매는 노인성치매보다 뇌세포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무섭다.
노년기 알츠하이머 치매의 평균 생존기간이 10년이 반면, 초로기 치매는 평균 6년으로 훨씬 짧다.
치료하지 않고 방칠 할 경우에는 노년기 치매는 2~3년에 한 단계씩 악화되지만,
초로기 치매는 1년 만에 중증으로 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가벼운 스트레스로 오인 노년기 치매의 대표적이 증상을 엄마의 경우로 살펴보면,
‘기억력 저하’와‘의심’이었다.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다면 치매라는 인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초로기 치매는 그 증상부터가 다르게 나타 난다.‘성격변화’,‘판단력이나 실행능력 저하’또는
‘이상 행동’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스트레스나 갱년기 증상정도로 가볍게 생각을 한다. 평소 온화했던 사람이 갑자가 화를 잘 내거나, 충동구매를 하는 등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면 전두엽 손상으로 인한 치매 증상을 의심해 볼수 있다.
가족력이 있다면 더욱 주의 초로기치매의 약 10~15%가 가족형 알츠하이머 치매인데,
3가지의 유전자 변이가 원인으로 밝혀졌으며, 가족력이 있는 경우 20대에 발병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치매를 앓으셨다면, 자신의 뇌 건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다.
전 세계 치매 전문가 27명이 모여 작성한 연구 결과가 세계적 의학 저널 란셋(Lancet)에 게재되었다.
치매 위험요인의 약 절반은 유전적인 돌연변이로 인한 것이지만, 약 45%는 다양한 환경적 위험요인이라고
한다. 즉, 거의 절반은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치매에 대한 14개의 위험요인 별로 구분한 내용을 높은 유형별로 살펴보면,
청력손실·높은 LDL콜레스테롤 7%, 교육부족·사회적 고립 5%, 흡연 3.5%, 우울증 3%, 신체활동 부족·당뇨병·고혈압·시력저하 2%, 과도한 음주·외상성 뇌 손상·대기오염·비만 1%를 차지한다.
이중 상당수는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1. 운동과 기억 강화
운동은 약이 아니라 백신이다.
규칙적인 걷기와 운동만으로도 치매 발병률을 40%나 낮출 수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틈새 운동)
필자는 점심 후 사무실 주변에서 산책을 하거나, 가벼운 웨이트를 덤벨로 20분 정도 한다.
무엇 보다도 맨발 걷기는 7년째 하고 있다.
(두뇌활동 하기)
‘나이 들어서 무슨 공부’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뇌는 노화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뇌는 신체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용불용설’.
뇌 과학적으로 ‘뇌 가소성’이라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활발하게 두뇌 활동을 하면
치매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책 읽기, 일기 쓰기, 외국어 공부, 악기연주 등이 많은 도움이 된다.
(필자가 실제로 실천하는 방법들)
- 아침마다, 독서노트를 종이에 쓰며 생각 정리
- 어려운 영어 단어나 한자를 종이에 쓰며 암기
- 길을 걸을 때 가게 간판 외우기와 골목길 구조 기억하기
예) 빵집의 색깔과 구조, 그 옆 김밥집 특징·가격, 앞 쪽 치과 이름, 로고...
흥미롭게도 우리는 늘 다니는 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한다.
기억 속에는 대략적인 스케치만 있을 뿐이다.
이런 의식적 기억 훈련이 뇌를 자극한다.
여유시간이 나면 복습을 통해 기억을 강화시킨다.
이 재미를 알게 되면, 중독된다.
- 전화번호나 노래 가사 외우기
- 좋은 글귀 암기하기
- 브런치에 글쓰기
글쓰기는 가급적 종이에 초안을 잡고 컴퓨터에 입력한다.
손은 뇌의 가장 넓은 영역을 자극한다. 그래서 손으로 쓰는 행위는 전두엽(판단, 조정),
측두엽(해마, 기억 저장), 편도체(감정), 두정엽(감각) 모든 뇌 영역을 깨우는 종합운동이 된다.
생각이 정리 되고, 감각과 감정이 살아난다.
2. 사회적 관계 유지하기
엄마께서는 사실 마을 경로당에 가시지 않았다.
집에 계시는 게 편하다고 말씀하셨지만, 매일매일 하루라는 긴 고독의 시간을 보내셨던 것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을 줄이고, 외부와 어울 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사람을 만나는 노인의 치매 발병률이 50% 낮다고 했다.
3. 만성질환 관리하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이 세 가지는 치매의 3대 적이다. 뇌혈관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뇌세포로 가는 산소와 영양을 차단한다. 엄마의 경우는 약 드시는 것을 자주 잊으셨다. 질병자체보다는 관리가 더 큰 문제였다.
하지만, 누구나 예방할 수도 있다.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엄마를 보며 배운다.
예방이 치료보다 백배 쉽다는 것을, 시작을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걷고, 사람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