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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눈물의 미역국 한 그릇

기억은 잊어도 가슴은 울어

by 푸른 소금

알밤이 익어가는 계절

가을 이맘때가 되면 알밤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엄마께서 평생 삼키신 눈물처럼 가슴에 밤송이처럼 박힌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내 생일이 가을바람을 타고 스쳐 간다. 그 뒤를 이어 엄마께서 세상에 첫울음을 터트리신 날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다가온다.


객지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생신 축하 드려요”,“ 아빠의 생신 축하 케잌을 고민 중인데 어떤

걸로 보내드릴까요?”

취준생이라 무슨 돈이 있을까 싶어 한마디 건넸다.

“아빠는 괜찮아.”, “그대신 적립 시켜놔” , “그리고 시집가기 전에 할부로 갚는 건 알지”

전화기 속 딸의 목소리에, 문득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고 미안함에 가슴이 저려 온다.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생일.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무거워진 반면, 생일이라는

그 의미는 오히려 가볍게 다가온다. 예전 같으면 빠득 빠득 챙겨 가면서 혹여 생일을 알아 채지 못하는 가족이 있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옹졸했던 나이가 있었다. 지금은 무덤덤하다. 시대의 흐름인지, 아니면 나이

먹은 티를 내기 싫은 내면의 고독한 저항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엄마의 생신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형제들 모두가 머나먼 타향에 흩어져 살고 있기에, 한 걸음에 달려와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년 가을 가족들이 엄마의 생신상을 차려 드린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올해는 내가 생신상을 차려 드려야겠다.

‘투닥투닥’. 매주 엄마께 음식을 만들어 드리고 있다.

요리랄 것도 없는 나이 든 아들의 솜씨지만, 나의 투박한 손맛을 엄마는 이제 아신다.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불고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싱그러운 식탁을 채울 채소는 텃밭에서 키운 녀석들이 담당할 것이다.


엄마의 머릿속 달력

그 옛날 엄마의 머릿속 달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셨다. 자식들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이 니 생일이다. 미역국은 먹었냐?”바쁜 일상으로 정작 본인들은 기억 못 하는 생일을 엄마는 80년 동안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으셨다. 미역국을 끓이시고, 생선을 굽고, 나물을 무치시면서 정성을

들이셨다. “우리 자식들 잘 되게 해 주세요”, “돌부리도 발길에 걸리지 않게 해 주세요”부처님, 하느님, 조상님... 그리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도 치성을 드리셨다. 자식들 생일날에는 이 세상의 모든 존귀하고

영험한 존재께 엄마께서 공식적으로 자식들의 안녕을 부탁 하는 날이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생신도, 자식들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이제는 생일 전화를 영원히 받을 수 없다.

파도가 백사장의 이야기를 지우 듯 치매가 엄마의 기억을 무심하게 지워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불러 보고 싶은 아버지라는 이름

평소 엄마에게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원망과 그리움이 뒤 섞인 아픔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엄마 외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뜬금없는 내 물음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더니.

“느 그 외할아버지는 일본 가서 돈 벌어 온다고 갔는데 죽었단다.”

“영감탱이가 살아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것인데” 엄마의 목소리는 목 끝에 걸려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엄마 외할아버지 안 보고 싶어요”라고, 다시 물었을 때 치매라는 사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말씀을 하신다. “얼굴을 모르는데... 뭐가 보고 싶겠냐”그러다가 잠시 머뭇 거리시더니

근데 궁금하긴 하다.”, “난 중에 저승 가면 꼭 물어 볼란다.”,“아부지! 나를 알아 보것소”,

“왜, 나를 혼자 남겨 두고 갔소”라며 울 먹 이신다.

만삭의 배를 안고 흘리셨던 외할머니의 눈물이 지금 엄마의 눈가에 다시 고인다.

결국 아버지라는 단어에 눈물을 보이셨다. 원망과 그리움이 뼛속 깊이 박혀 있으셨다.

87년을 살아오신 동안. 단, 하루도 빼낼 수 없었던 그 가시.
엄마는 그 아픔을 평생 안고 사셨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출생의 비밀

사실 엄마께서 알고 계시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이 감 줘져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사실을

아직까지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계신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만삭이 된 외할머니와 배속의 엄마를 남겨 두고,

일제가 1938년 시행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강제징용으로 끌려가셨다.

그리고 날아온 사망 소식. 외할아버지께서는 끝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외할머니께서는 유복자인 엄마의 상처까지 보듬고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한 이야기는 평생 가슴속에 묻고 돌아가셨다.

엄마는 그렇게 외할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시고, 외할아버지의 사랑 한번 받아 보지 못하신 채,

평생을 유복자로 살아오셨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엄마는 곧게 살아오셨다. 가늘고 왜소한 체구지만, 그 작은 어깨로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뎌 내셨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형제들을 남부끄럽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행복하게 키워 내셨다. 엄마가 받지 못한 사랑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쏟아부으셨다.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끌어안고 눈이 퉁퉁 붓도록 하염없이 울었다.

도대체 그 크나큰 아픔과 가슴속 응어리를 어떻게 평생토록 짊어지고 살아오셨을까?

아버지의 존재, 목소리, 체온, 손길...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사진 한 장 없는 외할아버지 모습이지만, 엄마는 상상 속 외할아버지를 그려 넣고, 색 바랜 흑백 사진 마냥

가슴속 깊은 엄마만의 장소에 소중히 보관하고 계셨다.


87년 전 그리움의 비밀을 알게 되다.

엄마의 가슴속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비밀을 알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엄마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사건을 저장하는 해마를 가장 먼저 망가뜨린다. 하지만, 감정의 강도를 저장하는 편도체는 마지막까지 버틴다. 그래서 슬픔, 분노, 외로움 등 강력한 감정은 마치 불에 새긴 상처

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엄마는‘일본에서 돌아가셨다’라는 비극적인 사실은 물론,“보고 싶다.”,“ 원망스럽다.”라는 그 감정의 진실

만큼은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치매가 사실은 지울지언정, 가슴속 깊은 감정만큼은 결코 지워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생신은 특별해야 한다.

엄마는 평생 자식들의 생일을 챙기셨다.

하지만, 정작 당신의 생일은 챙겨 본 적이 없으셨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느라 당신의 생일은 지나쳐갔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받아 보지 못한 당신의 삶.

그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내주셨다. 우리는 엄마의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고, 외롭지 않고, 행복할 수 있었다.

세월과 함께 쉼 없이 살아온 엄마셨지만,

무심하게도 치매라는 병까지 얻으셨다.

평생을 강하게 사셨던, 그 몸은 온통 만신창이가

되어 굽고, 휘어지고, 부러지고, 생사를 넘나드는

두 번의 큰 일들을 겼으시며, 성한 곳이 하나도

없으시다.

몸과 마음이 상처 투성이다.

이제는 옷 입는 것이며, 약 한 알 드시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것도 버거우시다.

시간은 잔인하다.

엄마의 기억에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얼굴도, 이름도 잊으실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을 하고 싶다.

그래서 엄마의 생신은 특별해야 한다.

오늘 이 작은 생신상이 엄마께서 평생 흘린 땀과 눈물에 대한 작은 보답과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바라면서,

조촐하고 소박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생신상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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