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오늘도 엄마의 하루는 같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너희 아버지 때문에 내가 나이 들어서 이렇게 아프다.”
“농사일은 안 하고 허구 한날 술만 마셨다.”
“그래서 내가 골병이 든 거다”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또 시작되었다.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말투에서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일들이 소환된다.
나는 엄마의 말에 살짝 끼어들어 본다.
“엄마 그래도 아버지 인물이 마을에서 최고 좋았다면서요”
순간, 무엇인가 발견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표정이 밝아지는 엄마.
“그렇지 인물로 따지면 대통령감이었지”
“너희 아버지 보다 잘 생기 사람은 천지사방 못 봤다.”
언제 아버지 흉을 보았냐는 듯이, 입꼬리가 올라간걸 보니 기분이 좋아지신 걸 알 수 있다.
“엄마는 잘생긴 남편과 살아서 좋았겠네요?”
“그나마 엄마나 되니까 아버지랑 살았지 다른 사람 같으면 집 나갔을 거예요”
“나도 집 나가려고 했지만, 우리 자식들 때문에 버티고 살았지”라는 말씀에 가슴이 울컥.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망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감정의 색깔들.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리운 마음 들.
치매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아버지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은 아직 남아 있다.
내 어릴 적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눈 덮인 들판과 꽁꽁 언 땅이 숨을 고르고 봄을 기다리듯 그 당시 겨울철은 시골의 농한기였다. 그러나 농한기 때가 되어도 엄마와 아버지는 생활이 달랐다.
지금처럼 하우스나 시설재배가 있어서 1년 12달 바쁜 날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도시가 있지만,
건설업이 호황을 누리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막일도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에게 농한기는 일종의 보장된 휴식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딱히 취미가 없는 터라 마을 구멍가게에 둘러앉아 윷놀이와 함께 한잔 술로 그간 노동의 고단함을 푸는 시간을 보내셨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마치 개선장군처럼 큰 솥 하나를 들고 오셨다. 윷놀이에서 장원을 하셔서 타 오신 것이다. 비싼 솥이었지만 엄마에게는 자랑거리도 칭찬의 대상도 아니었다. 생활력이 강한 엄마는 농한기 때에도 한 푼이라고 더 버시려고 공장으로 나가셨기 때문이다.
살을 에는 칼바람과 새벽 4시.
자명종 시계도 없는 캄캄한 새벽녘.
엄마는 피로가 덜 풀린 몸을 이끌고 일어나신다. 나무 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밥을 지어놓으시고, 양은 도시락에 엄마의 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 온기를 가두기 위해 옷까지로 꽁꽁 싸 그렇게 30분을 걸어서 공장을 나가신다.
엄마의 공장일은 해 질 녘이 되어야 끝이 난다. 아버지께서는 윷놀이로 소일한 미안한 마음을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물을 데우시는 것으로 대신하였고, 엄마는 데워진 물로 밥을 지으신다.
엄마의 몸과 함께 뻣뻣하게 굳어 버린 작업복은 데워놓은 물에 몸을 녹여가며 세탁이 되고, 내일 이면 또 다시 엄마의 일부가 될 준비를 마친다.
장작을 패서 군불을 지피고, 물을 데우는 과정, 그것은 아버지 나름대로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가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나이 50 중반 아직도 미숙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엄마를 향한 사랑은 화려하진 않지만 장작불처럼 순수하고 오래 타는 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추위와 싸웠던 고단했던 하루를 온몸으로 살아 낸 엄마에게 그것만으로 부족했던가 보다.
“허구 한날 술을 마시는 너희 아버지 때문에...”
“내 몸이 성한대가 없다.”
엄마의 원망은 벌써 30여분을 넘기고 있다.
원망 속에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바람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엄마 혼자 모진 삶을 버둥거리며,
칡흙 같은 어둠을 뚫고 나가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에 아버지의 어깨가 필요하셨던 것이다.
사랑은 때로는 원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지만, 어쩔 땐 잔인한 겨울 칼바람보다 더 냉혹하게 꽂혔던 것이다.
치매가 발병되면 최근의 기억부터 지워간다. 어제 무엇을 먹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은 못한다.
하지만, 몇십 년 전 감정은 선명하게 남는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기억은 두 개의 다른 통로로 저장된다.
해마(Hippocampus) 모양이 바다에 사는 해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뇌의 측두엽 깊은 곳에 위치해 있고. 기억과 학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즉 기억의 관문이자, 내비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 엄마처럼 알츠하이머 치매 가장 먼저 퇴행이 시작되는 부위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적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편도체(Amygdala) 모양이 아몬드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정서와 관련된 뇌의 핵심센타라고 볼 수 있고 감정의 경보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해마 앞집에 살면서,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할 때 감정을 함께 떠오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발병되면 해마와 함께 퇴행이 일어나 정서나 기억에 문제가 발생한다.
치매환자가 특정 원망을 반복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감정 기억의 선택성 새벽 4시의 추위, 30분 겨울길의 고단함, 노동에 대한 피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어서 뇌에 더 강하게 각인된다. 진화론적으로 위험을 기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맥락상실 아버지가 물을 데워 주신 일, 함께 웃었던 순간들, 이런 긍정적인 기억은 ‘맥락’과 함께 저장된다.
하지만, 치매로 해마가 손상되면 맥락이 사라지고, 감정만 남는다. 마치 채로 감정만 걸러낸 것처럼. 그래서 ‘술 마시는 남편’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도드라지게 된다.
현재감정과의 혼재 치매환자는 과거와 현재를 구문 하기 어렵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와 과거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처럼 지금 느끼는 신체적 고통(관절염, 통증)을 과거의 원인(아버지)과 연결 짓는다. “너희 아버지 때문에 내가 아프다”는 말은 현재의 고통을 과거로 투사한 것이다.
전두엽 기능저하 전두엽은 뇌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다. 주요 역할은 충동조절과 사회적 억제를 담당한다. 치매로 전두엽이 약해지면 평소 억눌러있던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된다. 젊었을 때 서운한 원망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엄마의 반복되는 원망 앞에서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배워 나갔다.
나는 그동안 엄마께서 아버지를 원망하실 때, 엄마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운한 말들을 쏟아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에서 비롯된 내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까를 생각하면 부끄럽고, 큰 죄를 지었다.
엄마 말을 자르고, 소리를 지르며 외면했던 일들... 죄를 받아 마땅하다.
나이 오십 넘었지만, 부끄럽다.
“엄마 용서해 주세요.”
“엄마 오늘도 왜 자꾸 똑같은 말만 반복해요.” → 환자는 반복되는 것을 모른다. 지적은 수치심만 준다.
“엄마 아버지도 열심히 사셨어요.” →논리로 감정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엄마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는 돌아가신 분이 시잖아요.” →감정을 억압하면 더 강하게 분출한다.
“그때는 다들 어렵게 살았잖아요.” →엄마의 아픔을 일반화하면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1. 감정인정하기 “우리 엄마 진짜 힘드셨겠네요.”
2. 구체적으로 공감하기 “추운 겨울 4시에 일어나서... 얼마나 추우셨을까요?”
3. 긍정기억으로 전환하기 “그래고 아버지 인물이 좋았다면서요?”
4. 현재로 주의전환하기 “엄마, 우리 맛있는 거 해 먹을 까요?”
5. 짧고 반복적으로 안심시키기 “엄마 덕분에 우리 잘 컸어요. 엄마 고생 덕분이에요”
사랑은 참 복잡하다.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고, 미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고...
토스토옙스키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깊이 미워할 수 있다.”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원망도 없다.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망도 없다.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서운함도 없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원망조차 사랑의 한 형태였다.
25년 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이제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할 수도 자랑할 수도 없는 시간을 살고 계신다.
그래도 치매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자주 꺼낸다.
그리움, 원망, 사랑도 모두 담겨 있는 말.
“너희, 아버지는 웬수다”
나는 오늘도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가 평생 삼키고 살아온 말들을 조금씩 꺼내 드린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 알았어요. 울 아버지는 엄마 원수가 맞네. 우리 맛있는 거 뭐 해 먹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