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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부른 잔인함

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by 푸른 소금

1. 치매! 설마

엄마께서 치매에 걸린다는 생각은 0.1%도 해본 적이 없다.

치매는 남의 일이었다.

그냥 나이 들면 걸리는 질병 정도로 생각했다. 특히, 외할머니나 이모께서도 치매를 앓은 적이 없으셔서 가족력에 대한 의심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가 집에 없을 때 누가 집에 침입해서 장독을 훔쳐간다.”는 엄마의 말씀.

주말마다 시골에 가는 나로서는 단순히 남을 의심하시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혹시나 없어지면(돌아가시면) 옆집에서 장독대를 가져갈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장독이 귀해서 구하기도 힘들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50년 넘은 장독이어서 엄마의 애환이 있는 장독. 엄마의 삶의 흔적 그 정도로만 이해했다.

“아니 엄마, 왜 남을 의심해요. 그거 안 좋은 습관이에요”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엄마는 두 주먹을 쥐고 손을 부르르 떨며, 적개심을 드러 내셨다.

어쩔 때는 고개를 한없이 떨구시고, 한숨을 쉬면서 자책을 하시기도 했다. “엄마 뭐해요”라고 물으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드시며, 마치 착한 아이처럼 “아무것도 안 한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내가 또 화낼까 싶어, 억지 웃음 이라는 것을 안다.

“아, 주말마다 또 같은 말만 반복하고, 한숨만 쉬고... 지겨워 죽겠네”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를 넘는 말을 해버렸다. 그 순간 엄마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엄마에게 나라는 자식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엄마의 그 깊은 실망감. 좌절감...


2. 무지로 치매 초기 놓쳤던 신호 들

지금 돌이켜 보면 신호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어쩌면 보려고 노력도 안했다는게 정확히 맞는 말이다.

지금은 늦었지만, 엄마가 보낸 작은 신호들. 엄마가 애써 감추려 했던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기억력 장애 - “엄마 방금도 그 말씀하셨어요”

‣ 같은 질문이나 이야기를 반복한다. “내가 밥 해줄게”오늘 오전에만 벌써 10번째가 넘는다. 처음에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지친다. 결국 인내심을 넘어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당황하신 표정으로 “그랬냐? 미안하다...”하시며 내 눈길을 피하셨다. 그 미안함이 나에게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최근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 어제 센터에서 무슨 놀이했어요” 엄마는 40년 전 일은 생생히 기억하신다. 내가 초등학교 운동회 때 엄마가 입고 오셨던 한복이며, 누나의 교복 관련 일들이며, 지금의 우리 밭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사셨는지 배경 등.. 하지만, 어제는 뭘 드셨고, 무슨 활동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을 또렷하게 못하신다. 소중한 현재를 지워가면서, 아픈 과거는 또렷하게 남겨 둔다. 그래서 치매는 잔인하다.

‣ 중요한 날짜나 약속을 잊는다. 치매 전까지만 해도 객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 생일상을 손수 차려서 미역국을 끓여 드셨다. 그러나 지금은, 오늘이 추석인지. 병원 가시는 날인지... 기억을 못 하시고 헷갈려하신다.


판단력과 문제해결 능력 저하 – “엄마는 뭐든 잘하셨는데”

익숙한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요리순서, 기계사용법 등)

이번 추석날 송편을 만들었다. 엄마는 솥에 물을 넣지 않으시고, 송편을 찌려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가스불 켜는데도 실패를 하셨다. 평생 하신 일이고 수천번도 하신일인데 이제는 순서를 헷갈려하신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신다.

‣ 돈관리가 어려워진다.

만 원권과 오만 원권은 구분은 하신다. 하지만, 물건값을 계산하고 셈을 하시는데 힘들어하신다.

‣ 계획을 세우거나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텃밭을 보시거나, 냉장고 문을 여시면 어떤 음식을 해 먹을지 레시피가 자동으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로 맛난 거 해 먹자”라고 하시지만, 정작 어떤 음식을 만들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시지 못하신다.


시공간 감각 혼란 – “여기가 어느 병원이냐?”

‣ 2년 전 엄마가 사라지셨다. 분명 대문을 열고 나가셨는데 반나절이 되어도 안 들어오신 것이다.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막 하려는 순간에 집으로 오셨다. “엄마 어디 다녀오셨어요”, 격앙된 내 목소리에 웃으시며 “버스 타고 시내 다녀왔다.”몇 시간을 헤매셨는데, 다행히 우리 마을 이름을 기억하셔서 착한 학생의 도움으로 집으로 오셨던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계절, 시간과 날짜를 혼돈한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모르실 뿐 아니라, 지금이 여름인데도 봄으로 알고 계신다. 한여름에도 엄마는 춥다며 빨간 내복을 입으신다. 계절과 시간마저 치매가 가지고 가고 있다.

언어 능력 저하 - “그게... 저기... 머더라”

‣적절한 단어를 떠오르지 못한다. “엄마 뭐 찾아요?”라는 말에 저기 저기라고만 하신다. 눈치껏 알아채고, 이야길 하면 그제야 맞다면 좋아하신다.

‣대화중 말을 멈추고 망설인다. “엄마 어제 우리 집에 오신 사람이 누구예요?”,“어제... 저기.. 그 웃골에 사는...”말이 끊기신다. 간혹 머리를 쥐박이며 단어를 찾으려고 애를 쓰신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센터 가면 사람들이 나보고 귀가 잘 생겼다고 해”, “아가씨들이 귀가 예쁘다고 자꾸 해”... 2분 간격으로 하는 같은 말씀. 엄마는 방금 자신이 하신 말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성격과 행동 변화 - “우리 엄마가 왜 이러시지”

‣의심이 많아진다. “센터 아가씨들이 아침에 냉장고에서 음식을 훔쳐갔다.”, “앞집에서 장독을 훔쳐갔다.”,“호미도 훔쳐갔다.”아침에 문을 닫지 않고 등원하셔 놓고, 하원길에 방문이 열려 있으면, “도둑이 들었다.”며 내일을 센터에 안 가신다고 으름장을 놓으신다.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한다. “나는 이제 쓸모가 없다.”, “차라리 죽어야지”,“완전 멍청이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 스스로 죽음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신다.

‣사회적 활동을 피한다. 마을 경로당에 가시는 걸 싫어하신다.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엄마는 점점 더 외로워지신다. 그래서 결국에는 주간보호센터를 가시게 된 이유이다.

‣화를 잘 내거나 공격적으로 변한다. “왜 자꾸 나한테 그러냐”,“유치원 가라고 하지 마라.”여태껏 크게 화내는 걸 모르셨던 엄마였다. 이것은 전두엽 손상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 저하 - “혼자서는 어려워요”

‣옷 입기, 위생관리가 어려워진다. ‘깔끔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마을에서도 소문난 엄마였다. 지금은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등원을 하신다. 새 옷을 사드리고 요일별로 입고 가시라고 준비를 해도 편하시다는 말씀만 하실 뿐이다.

‣약을 제때 먹지 못한다. 치매에 무지했던 시절 약 드시는 것을 자꾸 잊으셨다. 그래서 색깔별로 통을 준비하여 아침(파란), 점심(노랑), 저녁(빨간) 약을 드시게 했지만, 약 드시는 걸 힘들어 하시고, 헷갈려하신다.



그때 알았더라면
이 모든 신호를 나는 놓쳤다.

“나이 들면 그런 거지”, “피곤하셔서 그러시나 봐”변명으로 눈을 가렸다. 만약그때 알았더라면, 이것이 모두 치매 중상이라고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병원에 갔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서 내용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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