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어릴 적, 1년 중 최고의 날은 단연 ‘명절’이다.
온 마을이 시끌벅적. 3년 만에 객지에서 돌아온 아들, 혼기를 넘긴 딸, 첫 번째 명절을 맞은 새댁...집안 마다 다양한 사연으로 가족들이 모인다.
웃음소리는 담을 넘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풍요로운 명절풍경을 이룬다.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육전 소리와 냄새는 명절의 설렘을 알리는 첫 선율이었다.
이렇듯 매일매일이 명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가 치매를 앓으시면서 명절은 달라졌다.
엄마는 오늘따라 유난히 “옆집에서 뭘 훔쳐갔다.”라는 똑같은 말씀만 하고 계신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알지 못하신다. 평소에 조용했던 집안에 가족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 묻질 않으신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라는 물음에 “오늘 누구 생일이냐”,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엄마 오늘은 추석이에요.”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기색을 하시던 엄마는 “그렇구나”라며, 오랜만에 보는 손자들 이름을 헷갈려하신다. 자식들이 반갑기는 하지만, 명절은 그냥 남의 일인 양 소파에서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계신다. 그리곤 가족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피곤하신지 방으로 들어가 누우신다.
그 옛날 명절이면 그 많은 음식은 엄마의 몪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행복해하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깝지 않은 게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지”라며,
처마 밑 제비집을 가리키시며,
“저기 봐라.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새끼들이 얼마나 난리를 치냐”,“하지만, 저 녀석들 보다 우리 자식들을 위한 내 마음은 천배는 더 크다.”
엄마에게 자식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었다. 아니, 보석 보다 더 소중한 그 이상이었다.
엄마는 부모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삶의 최고 가치로 여기셨다.
명절날 쓸 생선은 제철에 맞는 싱싱한 녀석으로 준비해 보관하셨다. 이른 봄 대지의 기운을 뚫고 나오는
고사리부터 여름 볕에 몸을 말린 나물들은 명절을 위해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치게 된다. 엄마는 이렇게 재료를 준비하셨고, 명절날에는 목욕재계로,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조상님께 바치는 음식을 정성껏 차리셨다.
그러다 보니 며느리들에게 명절 준비는 1년 중 최고로 긴장되는 시간이었고,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다. 일종의 엄격한 의식인 셈이다.
엄마에게 명절은 고되고 힘든 시간이지만, 자식들을 위해 조상님께 공을 들이는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것이 엄마의 행복의 조건의 전부였다.
그래서 엄마의 명절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어떤 음식을 먹어도 치유가 되었다.
*가족 서로 간 세대를 이어주는 관계의 치유.
*나는 가족구성원으로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치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의 치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위한 신체적·정신적 치유.
엄마는 삶의 지혜와 진리 그리고 우주를 아우르는 방법을 정성이라는 음식으로 승화시키셨다.
지금은 음식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으시고,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쳐다만 보고 계신다. “엄마 이거 드셔봐요.”라며 여러 가지 음식을 권해 보지만, 배가 부르다며, 거절을 하신다.
엄마에게서 명절을 빼앗은 것은 치매가 아니라, 어쩌면 ‘엄마의 자리’, ‘엄마의 역할’을 빼앗은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자식들이 성장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손이 덜 간, 그만 큼 엄마의 자리는 밀려났다는 생각을 하실는지 모르겠다.
목이 메어 온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송편을 빚기로 했다.
그 옛날 엄마방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엄마 우리 송편 만들어 볼까요?”라는 권유에
“오냐! 내가 우리 자식들 송편쩌줄께” 전날 미리
사온 쌀가루를 반죽했다. 놀라울 정도로 정성을 들이신다. “엄마 왜 이렇게 귀엽게 만들어요. 아까워서 못 먹겠어요” 라는 내 말에 더 집중을 하시는지 송편을 만드는 엄마의 손은 느리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침착하고 정교하게 만드신다. “엄마 송편이 몇개인지 세어봐요”라는 말에 하나, 둘,,,20개를 넘기시고는 숫자가 엉키기 시작한다.
“엄마 다음은 무얼 해야 할까요?”라는 물음에 “솥에 쪄야지”, “그럼 엄마가 송편 쪄서 나 좀 주세요”라는 말에 “허허 울 아들 내가 쪄줘야지”웃으시며, 냄비에 물을 넣지 않으시고 가스불을 몇 번 켜보시다가, 고장이 났다고 하시며, 포기를 하신다.
“내가 멍청이가 되어서 아무짝에도 못써”라며 자괴감을 느끼신다.
치매 환자에게 명절은 특히 힘든 시간이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치매환자는 절차기억은 비교적 오래 보존된다. 송편 빚기, 음식 만들기...몸으로 익힌
기술은 해마가 손상되어도 운동을 담당하는 소뇌와 기저핵에 저장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된다.
하지만, 문제는 ‘계획하기’와 ‘순서 정하기’다. 전두엽이 파괴되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조리순서에 대해서도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엄마는 송편을 빚으시면서 고물 넣는 걸 잊으셨고, 명절 음식을 혼자 준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 힘든 건 역할 상실감이다.
엄마의 기억 속 명절과 음식은 가족을 위해 살아온. 당신의 존재가치였다. 이제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제 바보가 되었어”,“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
엄마가 가끔 하시는 이 말속에는, 역할을 잃어가는 고통이 담겨 있다.
주말 텃밭일을 할 때면 “더운데 뭐 하려 하냐. 얼른 내려와라”라며 내 걱정에 화를 내신다. 하지만, 텃밭에서 갖가지 채소를 엄마에게 안겨다 드리면 “아니고 잘 컸네”,“우리 맛난 거 해 먹자”며 엄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빛이 살아난다.
방금까지 나에 대한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구니에 아담하게 담긴 채소를 향해 엄마의 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아이고 이삐다. 너희가 고맙게도 컸구나”라며 부드럽고 대화를 나누신다.
엄마의 손이 현란하지는 않지만, 살아 움직인다. 치매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를 하신다.
사실 텃밭에서 채소를 딸 때 거칠게 따서, 뒤죽박죽 가져다 드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가 어떤 행복감으로 이 녀석들과 교감하실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때도 엄마의 역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송편 빚기, 나물 다듬기 등 그리고 일부러 서툰 척 “엄마 이거
어떻게 하는 것이 예요”라고 도움을 청한다.
“엄마 이 나물 간 한 번만 봐줘요.”
그런데 싱거워도 맛있다 하시고, 짜도 맛있다 하신다.
하지만, “역시 간은 엄마가 최고로 잘 맞춰요.”
“정 여사님 엄마표 간 인정~ 굿”내가 보낸 엄지 척에 엄마는 소녀처럼 해맑게 웃고 계신다.
그리고 전혀 예상 못한 말씀한마디.
“아따 뭘 이렇게 많이 장만했냐”,“전은 너무 태우면 안 된다.”... 연이어지는 기억소환.
이제 명절은 옛날처럼 북적임도, 거창하게 준비하지도 않는다.
송편을 빚고, 생선을 굽고, 나물 간을 보는 과정 속에서 엄마만의 기억 속에 혼자 고독하게 머무르시지 않으
시길 바랄뿐이다.
더불어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을 느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엄마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신다면,
엄마가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느끼신다면,
엄마가 여전히 우리의 엄마라고 느끼신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명절이다.
오늘도 나는 배운다.
서툴지만, 함께라는 것을.
♣ 나만의 송편 빚기 레시피 ♣
- 쌀가루에 미지근한 물을 천천히 부으면서 반죽한다.
- 반죽한 걸 비늘을 덮고 30분간 숙성시킨다.
- 참깨와 황설탕, 소금을 적당히 넣고 절반만 빻는다.
- 반죽한 쌀가루에 속을 넣고 모양을 만든다.
- 찜기 위에 면포를 깔고 그 위에 송편을 깐다.
- 20분 찐 다음, 송편에 참기름을 골고루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