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늦은 질문
5년 전 엄마의 전화 한 통
“이번 주에 너 좋아하는 고등어조림 해 줄 테니 넘어와라” 전화가 너머로 들려오던 엄마의
목소리는 참 정겨웠다.
부모라는 존재는 신기하다. 자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속까지 꿰뚫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 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큰 아이가 장가갈 나이가 되었지만, 어릴 적 아이들이 오물거리며 음식 먹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듯해진다.
우리는 자식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잘 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께 매주 음식을 해드리고 있지만,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뭘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잘 알고 있을까?
또, 내가 해드리는 음식은 엄마께서 그토록 드시고 싶은 음식이었을까?
나에게 묻는 대답은 참담했다. 죄송스럽게도 기억이 안 났다.
아니, 몰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이런 거 안 드실 거야’하며
내 멋대로 짐작했을 뿐이다.
나는 생선회를 꽤 좋아한다. 양식보다는 한식을 더 선호 한다. 우리 아이들은 ‘마라탕’ 마니아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모르고 있다.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스럽다.
그 동안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식사를 준비했었다.
평소, 엄마는 입이 짧으셔서, 어떤 음식이든지 몇 점만 드시고는 배부르시다며, 숟가락을 놓으셨다. ‘그래서 엄마가 무얼 좋아하시는지 알기 어려웠다’고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핑계를 만들었다.
“엄마! 수육, 불고기, 회... 드실만해요?”, “맛이 어때요”라는 물음에 엄마는 한결같은 말씀만 하셨다.
“그래 먹을 만하다”“나는 배 부르니까.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당신이 좋아하시는 게 뭔지, 당신이 먹고 싶은 게 뭔지를 한 번도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저 자식들
입안에 잘 들어가기만을 바라셨다.
건강하실 때 엄마는 자식들 때문에 음식맛을 모르고 사셨다.
그리고 지금은 치매를 앓고 계셔서 음식의 맛을 잃으셨다.
짠맛인지. 단맛인지. 싱거운지... 이제는 서서히 그 맛을 구분하지 못하신다.
내가 주말마다 해드리는 음식에 대해서는 “맛있다. 손맛이 있어”라는 칭찬을 하신다.
하지만, 정말로 맛이 있으신지, 아니면 나이 든 아들의 밥상을 받으셔서 미안한 마음에 하신 말씀이신지
속 마음을 알기가 어렵다.
저번주에 텃밭에서 막 따온 배추로 겉절이를 만들었을 때는 잘 드셨다. 하지만, 이번 주말 집에 와보니
냉장고에 숨이 죽어 그대로 남아 있다. 입맛에 맞지 않으신 건지? 드시는 걸 잊으신 건지?
“엄마 왜 겉절이 안 먹었어요”라는 물음에... “많이 먹었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엄마께서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질을 하시는 행위가
어쩌면 생존을 위한 본능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치매라는 잔인한 병이 음식의 맛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 하시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꼬리를 물었고, 오늘은 꼭 여쭤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컨디션이 가장 좋은 타임에 맞춰.
엄마 “옛날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 어떤 거였어요.”라며 애교를 부려본다. 나이든 아들의 닭살 애교가
통했는지.
“옛날에... 시집을 막 와서,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살 때 그 음식이 가장 맛났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음식이 어떤 거예요.”라는 물음에
잠시 오래된 보물을 꺼내 듯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음. 잡채”
아! 잡채.
“엄마 잡채가 가장 맛나요?” “엉 나는 고게 최고 만나더라”
순간 목이 메고 가슴을 짓누른다. 그까짓 잡채가 뭐라고.
식당에서 사이드 메뉴로 나오는 잡채.
뷔페 가면 어쩌다 나오는 잡채.
구내식당에서 구색 맞추려고 나오는 잡채.
내가 생각하는 잡채라는 존재는 주인공이 아닌 조연 정도, 장미꽃에 안개꽃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보양식으로 장어를, 겨울에는 구룡포 과메기, 전라도 가면 홍어를 먹어야 한다.’ 계절과 지역, 시기에 따라 음식을 촘촘하게 챙겨 먹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안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알면서도, 엄마께서는 무엇을 좋아하시는지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팠다.
엄마께서는 왜 여태껏 그 흔한 잡채를 가슴속에 묻고 사셨을까?
시부모를 모시면서, 명절 때마다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 정작 자신은 가슴속에 묻고 사신 것이다.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무심했고, 소홀했었다.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이,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말을 안다.
치매라는 잔인한 병이 엄마의 기억을 서서히 지워 가고 나서야, 엄마가 좋아하시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는 건강하실 때는 당신의 소망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아프실 때는 내가 묻지 않았다.
엄마, 미안해요.
당신이 나를 키우느라 당신 것을 포기할 때, 나는 그게 당연한지 알았어요.
당신이 “나는 배부르다”며 숟가락을 놓으실 때, 나는 정말 배부르신지 알았어요.
당신이 “너희들 많이 먹어라” 하실 때, 나는 배고픈 돼지 마냥 먹었어요.
무지하게도 ‘내리사랑’은 배웠으면서,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은 깨닫지 못했다.
“엄마 우리 잡채 해 먹을까요”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지신다.
일주일 동안 친절한 안내자 유튜브를 보고,
레시피를 메모 하고, 재료를 구입했다.
그 옛날에는 늘 우리들만 먹었지만, 이제는
엄마랑 같이 배부르게 먹어야겠다.
“엄마 우리 같이 배부르게 먹어요”라는
말에 “그래 맛나게 먹자”라며 해맑게 웃으신다.
그동안 잡채는.
엄마가 평생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 둔 작은 소망의 상징이었다. 어쩌면 잡채는 엄마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모습을 닮아 있었다.
잡채는 늘 부엌 구석에서 마른 땀을 흘리며, 인내의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수행자처럼 묵묵히 기다린다. 그러다가 뜨거운 물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부드러워진다. 여러 색깔의 채소들은 각자 욕심내지 않고 자신들만큼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이는 마치 엄마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녹이며 하나로 묶어낸 희생의 과정과 같았다. 엄마는 평생 자신만의 삶을 감추고 가족이라는 하나의 맛을
만들어 내셨다.
그동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이유를 잊고 살았다.
(나만의 잡채 레시피)
1. 잡채 3인분을 뜨거운 물에 20분 정도 불린다.
2. 돼지고기 앞다리 덩어리 살을 잘게 썬 후 미리
식용유에 볶는다.
3. 목이버섯과 새송이 버섯, 시금치, 피망, 고추,
당근, 부추, 양파를 미리 손질해서 준비한다.
4. 진간장 50ml, 생수 100ml, 설탕 3큰술, 멸치
액젓 1큰술, 미림 2큰술을 웍에 넣고 끓인다.
5. 불린 당면을 웍에 넣고 식용유와 섞는다.
6. 당면이 중간쯤 익었을 때, 각종 채소와 후추,
굴소수를 넣고 섞는다.
7.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는다. 간은 알아서 취향껏.
처음해 보는 잡채 레시피 조금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