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와 중년 아들의 사랑과 요리 이야기
봄이 되면 모종 가게는 북새통을 이룬다.
겨우내 하우스에서 자란 온갖 모종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해맑은 얼굴로 반긴다.
올해는 고추와 오이, 상추 모종을 샀다.
녀석들을 텃밭에 심을 것을 생각하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
스무 개의 고추 모종을 옮겨 심었다. 그런데 물 주는 시기를 놓쳐서 몇 녀석이 말라 버리고 말았다.
자책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은 모종가게. 사장님께서 모종 키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며,
“가지도 한번 심어 봐요. 가을가지 따 먹을 수 있어요”라는 말씀에 가지 삼 형제를 텃밭에 맞아 들였다.
어느덧 2달쯤 지나니, 보랏빛으로 앙증맞은 가지 꽃이 피기 시작한다.
자줏빛 열매가 미끈한 몸매를 가지고 쭈욱 커 나오는 모습의 매력에 빠진다.
유혹에 못 이겨 한입 베어 물어보았다.
뽀드득 뽀드득... 가지의 자줏빛 피부가 치아와 만나 풍금이 되어, 정겨운 선율을 만든다.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히 아린 맛이 미끄럼 타듯 목 젓을 넘어간다.
시간을 되 돌려 본다.
특별한 간식이 없었던 어린 시절 먹었던 그 소박한 맛.
학교를 마치고 오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그 맛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포만감 보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쁨에 한달음에 뛰어갔던 밭.
매일매일 커 가는 녀석들을 볼 때마다 내 설렘도 함께 커갔다. 그렇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엄마는 가지요리를 맛있게 하셨다.
가지를 통으로 삶고, 두어 동강 낸 녀석들을 키대로 찢고,
마늘, 참기름, 소금, 참깨를 듬뿍 넣고 조물 조물 환상의 손맛을 내신다.
특별한 반찬이 없었지만, 이 가지나물 하나면 모든 행복을 채울 수 있었다.
엄마의 가지 레퍼토리는 오로지 나물 하나였지만, 그 맛은 가을을 기다리게 만드는 설렘이 있었다.
햇살이 넉넉한 어느 날, 텃밭에 자줏빛을 자랑하며 주렁주렁 열린 가지를 보고 있자니, 행복 해진다.
하지만, 무얼 해먹을 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엄마에게 특별한 요리를 해 드리고 싶은데 내가 아는 요리법은 턱없이 빈약하다.
이럴 때, 나는 최고의 스승을 모신다. 바로 ’ 유튜브’.
‘가지로 할 수 있는 요리’를 검색해 본다.
그런데‘가지튀김’이 입맛을 사로잡는 별미라고 소개한다.
‘가지로 튀김을 한다?’ 생전 처음 듣는 조리법이다.
내가 아는 가지는 그냥 ‘나물’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 가을이 저물어 가기 전에 엄마에게 특별한 미각의 선물을 드리 고 싶다는 마음이기에
일단 도전해봐야겠다.
텃밭에서 수확한 가지를 엄마에게 한 아름 안긴다.
미끈하고 반짝거리는 피부를 본 녀석들에게 “아따 이쁘구나”, “잘 커서 고맙다.”라며 칭찬을 하신다.
나는 “우리 맛있는 가지 튀김 해 먹을 거니까”, “엄마가 가지를 잘라 주세요”라며, 칼과 도마를 건넨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칼질을 하신다. 꼭지를 따고, 두 동강난 가지를 가로로 4등분 하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시다.
‘우리 엄마 치매가 맞나’ 싶을 정도다.
치매로 많은 것은 잃으셔도,
칼질만큼은 완벽하신 이유.
이 것은 뇌 과학적으로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 때문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기억’과 몸으로 익힌 기술은 소뇌와 기저핵이라는 곳에 저장된다.
덕분에 치매가 진행되어도 오래 보존된다. 그래서 엄마는 칼질을 정확하게 하셨고,
송편을 예쁘게 빚으셨고, 채소를 능숙하게 다듬으셨다.
치매를 앓기 전 까지 엄마는 가족을 위해 수천 번, 수만 번 매일 같이 반복한 행동들이다.
그 동작들은 단순한 뇌에서 저장된 것이 아니라, 근육에, 손 끝에, 몸 전체에 새겨져 있다.
‘근육기억’(Muscle Memory)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자전거 타기, 젓가락질 처럼 엄마의 손은 가지를 기억하고 있다.
황금빛과 자주색의 하모니로 바삭하게 튀겨진 가지.
한마디로 ‘겉바속촉’. 정말 환상적이다.
‘엄마 한번 맛보세요’ 엄마께서는 잘 튀겨진
한 조각을 들고 조심스럽게 조금은 어색 한 표정
으로 한입 베어 드신다.
“아따 뭔 맛이 이리 좋다냐”, “이게 뭐냐”,
“엄마 가지로 만든 튀김이어요”
“오메 이것이 가지였냐” ,
“아들 덕분에 귀한 걸 먹어 보네”
엄마와 나는 어린아이 마냥 쉼 없이 먹었다.
그날 나는 입 천장이 헐어 버렸다.
뜨거울 때 먹는 ‘가지튀김’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치매 환자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능할까?
뇌 과학적으로 보면 어렵지만, 완전히 불 가능 한 것은 아니다.
감정이 강한 경험은 감정과 기억을 연결하는 편도체를 활성화한다.
완벽하게 기억하진 못하시더라도,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이나 따듯한 감정의 잔상이 남을 수 있다.
며칠 지나고 나면, 엄마께서 가지튀김을 기억하실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엄마께서 맛있다며, 웃으시는 지금.
함께 대화하고 가지 튀김을 먹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뜨거운 걸 호호 불면 엄마와 함께 먹었던 가지튀김을 엄마는 기억 못 하실수 있지만,
나는 엄마와의 추억은 영원히 기억 할 것이다.
(나만의 레시피)
1. 가지를 가로로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2. 전분가루를 가지에 입힌다.
3. 맥주로 튀김가루를 반죽한다. (맥주가 포인트)
4. 전분가루 입힌 가지를 튀김옷을 입힌다.
5. 기름에 튀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