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실이다.
선의(善意)는 때로 방해가 된다. 선의가 곧 방해가 되는 역설.
스스로 마주해야 할 충돌의 기회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힘을 증명하려는 충동.
자유로운 영혼은 그 충돌 속에서만 살아난다.
그러므로 내가 돌부리를 치워주는 쪽에 서 있을 때,
내 안의 자유정신은 누군가의 자유를 빼앗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의 어려움을 대신 치워주었다.
가볍게는 돈으로, 무겁게는 인생으로.
그것은 사랑이었으나, 동시에 그들의 자유를 빼앗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무게를 짊어진 순간, 내 자유정신은 시험받았다.
타인의 짐을 지는 무게와 과제를 내 삶 안으로 들였다.
나는 시험에 걸렸다.
시험은 늘 바깥에서 오는 듯하다.
우연한 사건, 타인의 요구, 피할 수 없는 책임이 내 삶을 흔든다.
그러나 실은, 시럼은 내 안에서 자란다.
내가 외면했던 욕망, 내가 덮어두었던 불안, 내가 스스로에게 감춘 나의 진심이
돌부리처럼 길 위에 솟아오른 것뿐이었다.
괴롭다. 혼란하다. 괴롭다.
내 인생 속 얼마나 많은 선의에는 대신 해주기가 섞여 있었나.
선의는 언제나 빛나 보인다.
그때 나는 타인의 자기결정의 기회를 줄였을지 모른다.
스스로 부딪히고 증명해야 할 자유를 빼앗아 버렸다.
가족의 짐을 대신 져야 한다는 선의는, 나를 가치있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자유를 옭아매며,
나는 그 무게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걸려 넘어졌고, 그 넘어짐 속에서 비로소 나의 진실에 닿았다.
나는 타인의 돌부리를 치워주며 안정을 주고자 했지만,
타인의 길에서 무너져 있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한 것은 돌부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를 불안과 허덕임 속에 세워둔 내 선택.
결국 문제는 내가 어떤 삶을 받아들이느냐 였다.
그 앞에서 나는 더 오래 머뭇거렸고, 더 깊이 흔들렸다.
책 속 니체의 문장은, 나를 관념과 죄책속에서 분리를 경험하게 했고
그 말은 괴로움 속에서 내 몸의 언어가 되었다.
나는 먼저 해방되었다.
자유정신은 위험을 피할 때가 아니라, 부딪히고 넘어지는 순간에만 살아난다.
내 삶 속에서 그의 말이 살아났다.
나는 무작정 충동을 찾지 않늗나.
자유로 나가아기 위한 필요한 충동을 품되
스스로 감당할 충동을 ,검증이 필요한 지점에서 찾는다.
그러기 위해 읽는다.
습관화된 내 인식이 아닌, 자유로운 나의 영혼이 이끌도록.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프리드리히니체. 책세상안정되고 한결같으며 잘 조화하는 삶과 교제를 지향하는 여성들의 자연적인 경향, 삶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름 같은 그리고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여성들의 작용은, 무의식중에 자유정신의 영웅적인 내적 충동에 역행한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여성들은 길을 걷고 있는 광물학자의 발이 부딪히지 않도록 길의 돌돌을 치워주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광물학자는 바로 그 돌에 부딪히기 위해서 집을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