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체계적인 양서읽기로 코칭받은 책 중에 하나인,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책을 읽는지 세달이 지나고 있다.
머무르게하고, 사유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그래서 더욱 오래 붙들려 있나보다.
처음엔 이해하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려우면 지나간다.
나를 멈추지 않게 하는 니체의 힘을 믿을 뿐이다.
오늘도 30분은 한구절에서 펜을 끄적였고, (어제의 사유의 지점을 글로 이어서 표현합니다.)
개인독서 후에 토론시간은 나를 통과해 질서로 흘렀다.
'삶의 수확에서의 삶- 인간은 자신의 인식으로 아주 멀리 자신을 펼쳐나갈수도
자기 자신에게 아주 객관적으로 보여질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의 전기(傳記)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1).'
'수확'
농부인 나에게 수확은 거둬들이는 일이다.
'삶의 수확'
무엇을 거두는 것일까. 자기 자신을 수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의 씨앗을 심고 가꾸지만
자연의 리듬으로 거둬들일수 밖에 없는 나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렇게 자연의 질서 안에서 살지만, 종종 그 질서에 저항한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보배로 맏들고 있는 지성을 가지고
우리는 대자연의 의도, 즉 각자는 자기 편익을 위해서
연장이나 방법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사물들의 이 보편적 질서와 싸우며,
우리를 파멸시키는 일에 이 지성을 사용해서야 될 말인가?'2)
나의 '가장 소중한 보배2)' 인 지성을 가지고,
나의 '괴상하게도 어리석은 수작2)'으로
자연의 뜻을 계산하고 예측하며 통제하려 한다.
무한의 말에 귀를 대지 못하고,
눈앞의 감정의 진폭에만 매달린 시선으로 나를 보아왔다.
생각은 있었지만 방향이 없었고,
결단은 있었지만 의도가 흐렸다.
나의 판단은 냉철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았다.
내가 뿌리지 않은, 내 안의 무한한 씨앗이 만들어내는
모든 감각의 반응을 나는 축적하지못하고 있었다.
가을의 끝자락.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시간이다.
나의 손끝에서 수확이 이뤄지지만
언제나 자연이 기준을 정한다.
나는 종종 자연을 이겨보려 하지만,
자연은 단 한 번도 인간의 뜻 아래에 있지 않았다.
자연 자체의 질서로 나의 의도를 결과로 드러내줄 뿐이다.
한 해의 농사는 노동의 양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기후의 탓도, 우연의 몫도 아니다.
우주의 질서, 선택의 방향 위에 쌓은 땀과 욕망인 것 같다.
결국 자연을 통해 농사 지은 농부 자신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오늘의 이 기록이 나의 수확이다.
이성이 나를 해석해 온 방식을 찾아내는 추수의 계절이 오늘이다.
세상을 아는데 멈추지 말고, 나를 아는 의식으로 나아가라 한다.
그 수확 하나하나가, 내 의도의 진정성 위에 쌓여
나의 삶의 전기를 이루어갈 것이다.
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2)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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