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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인이지만 할머니는 되고 싶어

평범, 건강, 행복

by 도요

자폐성 장애인 중 노인이 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없다. 지적 장애를 가진 노인들은 종종 눈에 띄지만, 자폐성 장애를 가진 노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2020년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재활원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사망 연령은 23.8세라고 한다. 전체 장애인의 평균 사망 연령은 76.7세인 것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자폐성 장애인들은 위험한 돌발 행동을 하기 쉽다. 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으며 감각이 예민해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치료가 극히 어렵다. 이처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도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고, 중증 자폐인의 경우 시설 생활이나 장기 입원 생활을 하는 경우도 꽤 존재하다 보니 질병에 취약해지기도 한다. 가족이나 복지사들이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어려움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언어와 인지에 문제가 없는 고기능 자폐인들은 어떨까? 많은 연구에서 고기능 자폐인들은 일반인보다 정신 질환, 자살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감각 처리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 자체가 큰 스트레스가 되고, 부족한 사회성을 가지고 일반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담이 주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우울증으로 한동안 힘든 시간을 겪었다. 자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생 난이도를 무지하게 올린다. 치료할 수 없는 장애이기 때문에 그냥 태어난 대로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


‘그냥 사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고 과제이기 때문에, 나는 지극히 평범한, 그러면서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자폐인 할머니가 되자! “


남들처럼 때가 되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노후를 대비하고, 또 때가 되면 은퇴해서 제2의 삶을 살자. 그게 내가 바라는 미래의 거의 전부이다. 누군가는 더 큰 포부를 가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학교 생활도 쉽지 않은 나에게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꿈이다. 다른 대학생이 다 하는 아르바이트도 나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다.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데다 행동이 느리고 어색하니 폐를 끼치기 십상이다. 작년에 단기 아르바이트에 도전해 본 결과 나는 그리 도움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으면 된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외부 재단의 장학생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대학생일 수는 없고, 언젠가 나는 사회로 나가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은 각오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딪혀 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일 인분은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소망이 하나 있다. 나중에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데리고 여름휴가 때 알프스 산맥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 다큐멘터리를 보며 결심했다. 이 말을 듣고 엄마가 네가 이런 생각도 할 줄 아냐며 놀라고 대견해해서 조금 멋쩍었다. 사실 취직을 하는 것도, 여윳돈을 마련할 만큼 꾸준히 일하는 것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내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해내고 싶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이며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모든 스펙트럼의 자폐성 장애인들이 한 인간으로서 주어진 삶을 최대한 존엄하게 살고 떠날 수 있는 사회를 바란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중증 자폐인의 경우, 내가 보고 들은 자폐인들과 그 가족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무분별한 탈시설 정책보다는 적절한 돌봄과 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시설과 복지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모든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탈시설만 강조할 경우 가족이 너무나 많은 짐을 짊어질 수 있고 장애 당사자 또한 열약한 환경에 놓일 수 있다. 경증 자폐인들은 대부분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 그러나 적절한 도움과 훈련을 받으면 사회생활이 가능한 경우도 많은 만큼,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는 내 곁에 자폐인 친구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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