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생산적인 악취미라도 좋아
나는 어차피 할 일이면 재밌게 하고 싶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최대한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뭐든 그 순간에 진심으로 재미있다면 쓸모가 없더라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쓸모가 없다기보다는 ‘재미’라는 쓸모가 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종강 이후 갑자기 늘어난 자유 시간에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나는 부지런하진 않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못 견디는 편이다.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가끔은 그림을 그리고 운동도 한다.
이런 평범하고 소소한 취미 이외에 다소 이상한 취미도 있다. 바로 수능 수학, 과학 문제집 풀기이다. 나는 이미 원하는 대학에서 잘 살고 있고, 재수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수능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서점에서 수능 특강을 사고, 기차에서 6월 모의고사 수학 킬러 문제를 푸는 이유는 그냥 ‘재밌어서’이다. 예전에는 이 취미가 너무 비생산적인 일 같아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깨닫지 못한 무의식적인 입시의 아쉬움이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질문도 자주 던졌다. 그러나 10년째 하고 있는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게임은 뭐 생산적이어서 하나? 내가 재밌으면 그냥 하면 된다. 모든 일에서 생산성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스도쿠나 십자말풀이가 취미가 되는 것처럼 수학과 물리 문제를 푸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다. 일종의 두뇌 게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두뇌 게임이 재밌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고등학교 때 자유롭게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지금 풀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이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이었고, 실전이었기에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거나 한 문제를 붙들고 오래 고민하는 등의 행동은 자제해야 했다. 비효율을 불러일으키는 ‘카공(카페에서 공부)’이나 멀티 태스킹은 일부러 멀리했다. 지금은 실전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껏 공부용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팝송, 재즈, 영화 음악, 외국 카페 입체음향, 자연의 소리 등 원하는 영상을 틀어 놓고 신나게 문제를 푼다. 쓸데없이 예쁘게 필기를 하기도 하고 귀여운 포스트잇도 마음껏 활용한다. 수험생일 때 선생님이 시간낭비라고 한 오래된 초고난도 기출문제도 지금은 마음껏 고민할 수 있다. 카페에서 녹차 라떼 한 잔을 앞에 두고 몰입의 즐거움을 느낀다. 열람실을 돌아다니며 감시하는 선생님도 없고, 오늘 꼭 해치워야 할 분량도 없다. 그때 하지 못했던 ‘내 맘대로 공부’의 한을 이제야 푼다.
또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취미 공부를 하면서 상상 놀이도 즐긴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지만, 고독한 수학 천재에 빙의해서 그래프를 그리고, 물리학자에 빙의해 방정식을 세우는 것도 재미있다. 호그와트 asmr 영상을 틀어 놓고 마법 주문을 연구한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꽤 즐거운 유희이다.
물론 내가 더욱 건강해지고, 훗날 취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다면 더 거창하고 멋진 취미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인 현 상황에서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모두들 남는 시간을 쓰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그 일들이 휴식이 되거나 재미를 준다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본업에서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취미에서까지 생산성을 따질 필요는 없다. 일상이나 건강에 방해만 안 된다면 게임이든 독서든 인터넷 서핑이든 예체능이든 가치 있는 취미가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