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함께한 입시
7월이 되었고, 나의 일상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고요하다. 내가 고요한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책을, 수학을, 숲을 사랑하니까 일상이 희미하고 맑은 향기로 채워진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기숙사 카페에서만 파는 얼그레이 크림라떼를 마신다. 이건 이번 여름에 추가된 루틴이다. 내 방은 깊은 숲 속 나무 위에 지어진 집 같다. 까치둥지가 나와 같은 눈높이에 있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솟은 관악산 바위 봉우리에는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나는 이 별일 없는 일상에 만족한다. 아침에 눈을 뜨며 감사를 느낀다.
그러나 지금의 생활은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 십 대의 나는 많은 투쟁을 해야 했다.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는 중증의 ADHD를 가지고 있었다. ADHD, 즉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주로 전두엽의 기능 발달에 문제가 있어 주의 집중과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 하기 싫은 일을 참고 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중학생 때부터는 과잉 행동이 본격화되었다. 쉬운 수학 문제집 두 페이지를 푸는 데 몇 시간이 필요했고, 정말 하기 싫을 때는 문제집을 찢어버렸다.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아~심심해!“라고 외치거나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계속 장난을 쳐서 혼난 적도 많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뇌의 문제, 자폐스펙트럼 장애도 있다.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는 자폐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선생님들께 혼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나는 거의 항상 담임 선생님의 특별 관찰 대상이었고, 친구들에게 ’금쪽이‘라고 불렸다. 규칙이 엄격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문제는 더욱 심해졌다. 지각, 자습 중 휴대폰 사용, 갑자기 쏟아지는 잠(ADHD의 증상 중 수면 발작도 있다.) 등등으로 매일 지적을 받았고 나는 적응하느라 괴로운 시간을 겪었다. 장시간 집중을 잘하고, 생활이 모범적이고 차분한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나라고 멋진 학생이 되기 싫었을 리가 없다.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했을 뿐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항상 나를 탓하며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공부를 해보고자 애썼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조금씩 올랐고, 기적처럼 특정 과목에서 1등을 하는 등의 이벤트도 종종 있었다. 작은 성취, 칭찬 하나에 힘을 얻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3의 끝자락에서 서울대학교 합격증이 날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스터리하다. 발달 장애로 인해 감정적으로도, 인지적으로도 또래보다 미숙했던 나는 그 치열한 한국 대입에서 성공할 조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입의 길을 완주해 낸 건 부족한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주신 선생님들, 험난한 길을 함께 걸으며 울고 웃은 친구들, 늘 나를 믿고 사랑해 준 부모님 덕분이다. 자폐인이라고 해도 고마움은 안다.
특히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 사회를 살 때 필요한 기본적인 규칙과 예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바람직한 태도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도 고생하지만 선생님들도 무척 바쁘고 힘든 학교였는데, 그럼에도 나 같은 학생도 포기하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잘못된 점은 지적해 주시고 잘한 점은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다른 학교로 가신 선생님들이 더 많지만 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재미 삼아 옛날에 풀고 남은 문제집들을 풀다 보면 그 당시의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네모난 바퀴를 굴려 결승선에 도달했다. 그때는 내 바퀴가 네모난 줄도 모르고 동그란 바퀴를 따라잡으려 했다. 지금은 네모난 바퀴를 더 잘 굴러가게 하는 보조 바퀴(약물 치료 등)의 도움을 받아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살고 있지만, 네모난 바퀴를 굴리며 애쓴 나 자신과 느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도와준 주변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