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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희망

잠식당한 감정

by Grace Mar 25. 2025



조용한 희망은 3년 전 가정폭력 피해자인 싱글맘의 성장 스토리로  19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스테파니 랜드의 생존경험담을 담은 에세이 'MAID'를 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이다.

나는 절대 멍청하게 당하지 않을 거야.

몰아치는 감정선에 그녀는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비록 나는 그녀처럼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지난날의 생각에 나 역시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조용한 희망의 뛰어난 점은 인물을 평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어떤 사람은 나의 원수였다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악연인 숀은 일반적으로 무지막지한 폭력 남편이 아니다. 그 역시 약물중독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어릴 적부터 동생을 부양했고, 알렉스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낙태를 원하긴 했어도 막상 출산 이후에는 딸의 이름을 가슴에 문신으로 새길만큼 매디를 아꼈다.


알렉스(여자)가 탈출을 결심한 계기는 숀(남자)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물건을 던지고, 함부로 말하는 '정서적 학대'였으며, 이후 숀은 알코올중독자 치료 모임에 나가는 등 딸의 공동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숀이 비록 나쁜 남편이었을지언정 최선을 다 하는 아빠인 것은 맞다.

그러나 부인에게 나쁜 남편은 맞다.


지켜준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브런치 글 이미지 2

[ 숨 막히는 현실 ]


하지만 어디 한 군데 맘 편한 게 발 붙일 곳이 없는 그녀는 가정폭력으로 멀어졌다는 희망을 얻음과 동시에 갈 곳이 없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절망도 한다. 당장 잘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갈 곳이라고는 마약에 절어 있는 친구네 집. 그마저도 남편이 쫓아오고 있어서 결국 차 안에서 잠을 자야만 하고.

남은 돈마저도 점점 줄어들어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지 너무나 잘 느껴졌다.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내가 당장 아이를 잘 케어할 환경이 되어주지 못하는 걸  알고, 돈 한 푼 받지 않고  이혼한 사람이기에. 내가 받을 돈을 아이를 위해 써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만 생각해서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아이가 소유물은 아니기에 싸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받을 상처가 너무 클까 봐. 어른들로 인해서 아이까지상처받는 게 싫어서. 나라고 아이를 왜 키우고 싶지 않았을까. 한쪽의 귀책이 심하거나, 성격 차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데려오려면 데려왔겠지.


그런데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전남편과 나는 인연이 아닌 사유로 6년간의 별거생활을 이어오다가 아이가 6학년이 되어 등본을 제출하고 나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지 않더라도, 내가 아이의 엄마인 건 변함없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우리 엄마는 나더러 바보라고 한다. 우리 엄마에겐 내가 딸이니까..


브런치 글 이미지 3




[ 심연으로 돌아가 ]


그녀는 다시 남편 집으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간다.  가스라이팅으로 사람이 무력해지면 도처에 도움의 손길이 있음에도  방법이 없다고 느껴진다. 인생 기회까지 놓치게 된 그녀는 전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빠진다.


나는 이미지 속 저 말이 너무나 싫다. 무슨 의무를 다한 것인 양 그리고 내가 무슨 빚진 게 있는 것처럼. 자신이 원해서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가족이라는 사람이 남만도 못하게 말하는 저 말들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몰라서 하는 것인가. 받으려고 했던 행동들일까.  본인은 서운해서 했다는 말이니 알아달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브런치 글 이미지 4


브런치 글 이미지 5



[ 서서히 잠식되는 감정 ]


똑같은 집 앞마당.

그저 밝고 예쁘고 안전하게 느껴지던 곳이 현실을 깨닫자마자 이제는 어두운 감옥으로 보인다. 그제야 그것이 이곳의 실제 모습인 것을 알았지만 이미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 또한 격하게 움직이는 감정선을 인지 못하고 상황에 압도되어 서서히 잠식당할 때가 있었다.  '이만하면 다시 합쳐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넷플의 연출에 압도된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브런치 글 이미지 7



[ 스스로 선택한 인생]


스스로 선택한 길 같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아니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극심한 상황에 내몰려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

그런데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 내몰려 그 길을 따라  떨어지는 곳으로 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길로 또 나를 이끌더라.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은 사람의 얼굴은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좋은 사람이 함께 한다는 사실.


조용히 희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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