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
여름철 매미 소리
갑자기 밀려왔다
바람처럼 서서히 불어오다 전봇대를 흔든 것이 아니다.
철새가 제 계절을 찾아 하늘 위를 새까맣게 뒤덮고는 멀리 사라지고, 다시 다른 무리의 철새가 열을 맞춰 무리 지어 지나갈 때처럼 그 움직임 사이 온전한 맑은 하늘은 내비쳤다.
그런 철새들은 움직임이다.
갑자기 밀려온 시끄러운 소리는 서서히 시작되지 않고 한꺼번에 내달려왔다. 그러다 철새가 방향을 틀 때 대열을 맞추려는 움직임에서 일렁이는 리듬을 보는 것처럼, 그 소리는 약간의 그 만의 리듬이 있다. 시끄러운 소리이지만 나름의 대열이 있다. 갑자기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가 거의 따라오는 소리 없이 뚝 끊어진다. 그리고 다시 우렁찬 소리로 시작해서 뚝. 끝없이 반복한다. 반복된다.
아이들이 아직 어린 시절, 안산에 있는 갈대습지공원에 간 적이 있다. 가을에 가면 파도 물결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는 갈대들의 솜털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장관이란 말이 부족하다. 더 놀라운 일은 그 사이사이에는 철새들과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철새들을 좋아해서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해서 오래 머무르곤 했다. 그곳에는 새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나무 박스처럼 옆으로 누여놓은 것처럼 만들어진 공간에, 눈으로만 볼 수 있도록 작은 직사각형을 뚫어놓았다. 아이들은 새들이 우리 소리 때문에 놀라서 달아날까 봐 그 작은 직사각형으로 보길 좋아했지만 겨울이 가까운 가을에 가게 되면 아이들은 밖에서 보려고 했다. 그땐 아이들의 움직임은 새들의 생활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알았다. 매미들이 한꺼번에 내어 지르는 소리들과 철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오르는 일은 그들만의 리듬을 찾기에도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서 주변의 움직임을 그리 중하게 살필 여력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새들은 철을 따라 움직이는 유랑생활을 했기에 가을과 겨울의 벽 사이를 뚫고 떠나야 했다.
봄과 여름의 그 어디쯤을 찾아서.
그 여정을 시작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자유로움을 주었다. 그 박스에 들어가 작은 사각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을 연결 지으며 날아오르는 새들의 여정의 시작을 함께 응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응원은 언제나 새로운 봄에 다시 만날 것을 전제를 품고 끝났다. 그 반복의 희망에 아이들은 보내어 줄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반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어떤 것들은 그만, 제발 그만 그쳐 주기를 바란다.
공존하려 한다면
우리가 여름 한 철 매미의 소리를, 소리의 리듬을 들어야 하고 철새가 다시 돌아올 것을 희망하며 떠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 공존의 법칙을 깨트려서는 다시 볼 수 없다. 소음에 시달린다는 아파트 주민의 컴플레인에 나무를 잘라 버리거나, 철새들이 가을철마다 시끄럽고 똥을 너무 싸서 농작물에 피해가 간다는 컴플레인에 서식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들을 쫓아버린다면 우리는 공존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내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100% 나로 인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모습은 온전히 나의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가 같아 보여도 안에 있는 나는 무수히 선택하는 가는 실 가닥들을 한 올 한 올 겹쳐 단단해지고 제 모양을 만들어간다. 철새지 옆 아파트에 살더라도 내가 철새들과 공존하기를 선택하거나 그저 불편함을 신고하거나 하는 일들은 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선택 다음에 매듭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선택으로 우리는 공존을 이어 나가거나, 파괴하는 시리즈의 다음 편을 결정짓는다. 그다음 편, 또 그다음 편. 드라마는 시리즈가 1,2,3.. 이어나가더라도 언젠가 끝난다. 옛날 수사반장이 1971년에 첫 편을 시작으로 1989년, 880부작을 끝으로 거의 20년이 가깝게 방송한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시청자들이 울면서 반대를 했지만, 어찌 되었든 끝이 났다.
한데, 끝나지 않는 끝낼 수 없는 드라마도 있다. 내가 시청자이자 감독, 작가, 촬영감독, 다른 스태프들로 만들어지는 주제도 그때그때 달라지고 시놉도 때때로 달라진다. scene을 찍는 장소, 카메라의 위치, 배우들의 대사까지 초단위로 바뀔 수 있는 곳.
모든 촬영지가 한 곳인 내 마음속. 드라마가 내 마음속에도 여러 편 방영되고 있다. 청취자이자 작가, 감독, 스태프들은 나 하나이다. 그 수많은 역할을 한다는 건 이 드라마는 중심을 잃으면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끊임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해야 한 편의 드라마, 영화가 오랜 기간과 제작비를 들여 만들어지는데, 그 모든 역할을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대작 드라마, 영화가 만들어지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도 단편들이 있다. 감독, 작가이자 촬영감독 그고 스태프의 역할을 한 명이 하면서 만들어낸 작품이 있다. 가끔 그런 단편들이 영화제에 출품되어 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것을 경험할 때면 앞서 불가능하는 말은 취소해야 한다. 하지만, 산으로 갈 위험성은 충분하다. 내 안에서 다루어지는 드라마는 중심을 잃어버리면 그 끝을 낼 수 없는 블랙홀로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도 몰라서 없었던 것처럼 처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 블랙홀로 빠져지는 순간에도 내 마음속에는 휘몰아치는 회오리에 상처 난 생채기의 아픔을 느낀다. 때론 그 생채기는 완전히 나아지지 않고 자자든 고름이 간간히 다시 고이게 한다. 또 가끔은 생채기만 남고 무엇이 상처를 남겼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영화의 주제가 무엇이었든 블랙홀 저 편으로 사라진 그것은 꼭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난 그렇다.
이 번 영화는 어떤가. 주제가 무엇이었나.
갑자기 거슬리는 매미의 떼창,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거대한 철새들의 대열에 대한 부러움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인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는 실패에 대한 확성기의 고성,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의 희망을 품고자하는, 확신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불안함이 주제인가. 결국 무엇으로 완결 편을 보여줄 것인가. 나는 10편의 쏟아냄으로 내가 그 어디쯤 닿기를 바란다. 1편 만을 남긴 지금도 그렇게 나만, 나만의 드라마틱한 영화의 앤딩 크레딧를 내 이름으로 가득 채우길 바란다. 여전히 빈 손에 빈 속인 내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바라고 바란다. 진정한 주제를 찾기를. 내 안에서 무엇과 공존해야 할까, 나무를 뽑을 만큼 시끄러운 매미 소리는 어느 편에, 멋지게 날아올라 떠나고 다시 돌아올 철새는 어느 속편에서 앤딩 작이 될까. 그 모든 것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인가. 그 답을 찾는 길의 시작을 내 걸음으로 내 발끝에 닿기를 바란다. 무수히 많은 소재들 중에 나는 어떤 것을 주제로 고를 것인지 너무 궁금하고, 애쓸 그 마음이 또 딱하다.
마지막 연재의 글에서,
이미 여러 편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워지고 쓰고 사라졌던 경험은 만렙인 나.
이 번 영화의 주제를 찾고 공존을 선택하는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애써 찾아야 하는 지금에 꼭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