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th Feb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으면 존경이고,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으면 사랑이다.
누군가가 멋진 말을 남겼다. 나는 사랑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쌓아봤고, 장렬하게 무너뜨리기도 무너지기도 해 봤다. 그러한 진심을 다했던 과정들의 반복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훈련했다.
그럼에도 우주와도 같은 사랑이라는 감정은 도통 알 수 없다. 사랑은 기다림이 아닌 전하는 것이란 말을 곱씹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들었다. 때로는 충분히 기다려야 하는 사랑도 있기에 저 또한 정답이라 할 수도 없다. 이렇듯 정답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렵고 뜻대로 되지 않는 위대한 감정이다.
가까운 분들과 ‘사랑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데 완성이란 ‘완전히 다 이룸‘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각기 다른 사랑의 정의부터 별에 별소리가 다 나와 재밌었던 기억이다.
일단 노영심의 안녕이라는 곡에서 김창완은 만남을 간직하는 것은 불가능해 언제나 ‘헤어짐’으로 완성되기 마련이라는 내레이션을 한다.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답변을 몇 발췌해 보면 평화오빠는 사랑은 광범위하고 주관적이라 숫자와 같은 수단으로 표현이 불가능하기에 ‘없다 ‘는 그의 연인이 불쌍해지는 낭만 없는 답을 했었다. 엄마는 믿음이라 했었고 정확히는 사랑이 ‘진정한 믿음’으로 간다면 완성인 것 같다고 했었다. 주희는 ‘추억’이라고 했었다.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는 완성될 수 없고, 그 감정이 지나고 추억해야 그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란 구체적인 답을 했었다. 유선은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나는 사랑을 잘 몰라서... 따위의 재밌는 답을 했었다.
당시 나의 답도 ‘모르겠다‘ 였다. 꽤 오래전부터 내가 내렸던 사랑의 정의는 기꺼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의 사랑보다도 더 크고 아름다운 사랑도 느껴보길, 그들이 흠뻑 더 사랑받기를 조금의 질투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아무도 몰래 대신 죽으러 갈 수 있는 마음이라고.
이러한 조금은 맹목적인 나의 사랑의 정의는 아직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는 사랑의 완성은 ‘시작’이다. 두 사람의 정열적인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레 식어갈 때 우리는 이해와 의리를 갖춘 조금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사랑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정답들을 세월 속에서 나만의 무언가로 찾고 다시 찾아가며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오늘도 나는 열심히 사랑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