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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바라밀: 상처받지 않는 힘을 기르는 법

by 정영기

1. 상처받지 않는 힘: 왜 인욕이 세 번째 바라밀인가


아침의 다짐은 언제나 평온하다. 그러나 정오가 되면 오해를 부르는 말 한마디가 마음을 찌르고, 의도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이메일이 가슴을 긴장시키고, 교통과 일정은 우리의 갈비뼈를 조여 온다. 사람들은 “참자”고 말하지만 이 ‘참음’은 종종 이가 갈리는 억압일 뿐이다. 버티고 버티다가 안전한 공간에 도착해 한꺼번에 폭발해 버리는 것이 더 흔하다. 그래서 람림은 보시와 지계 다음에 인욕을 둔다. 이미 충전해 둔 마음의 선한 힘과 지켜 둔 의도가 세상의 마찰 속에서 한순간에 흘러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인욕은 체념도 아니고, 부당함을 견디라는 말도 아니다. 인욕은 둘째 화살을 멈추는 능력이다. 세상이 쏜 첫 번째 화살은 피하기 어렵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또 이 모양이야” 같은 자기 해석의 둘째 화살은 우리가 쏜다. 인욕바라밀은 그 둘째 화살이 날아오르기 전에 잘라내는 훈련이다. 반응성을 유도하는 알림과 자극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이 기술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보리심을 보호하는 정교한 충격 흡수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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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욕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인욕은 억압이 아니다. 분노를 삼키는 것은 지연된 폭발일 뿐이다. 인욕은 감정을 에너지로 보고 명확하게 이름 붙인 뒤 더 지혜로운 통로를 선택하는 능력이다. 때로는 머물러 배움과 돌봄을 이어가는 것이 도움이 되고, 때로는 떠나는 것이 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 된다. 인욕은 회피도 아니다. 계속 피하면 두려움이 습관이 되고, 결국 더 큰 상처가 된다. 그래서 인욕은 머물 때는 머물고 떠날 때는 떠나는 분별력을 포함한다.


“착하게 보이기”와 인욕은 다르다. 단호한 경계, 분명한 거절,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신고조차 인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인욕은 스스로를 무해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을 받아들이되 나를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인욕을 숨 쉬는 갑옷이라 부를 수 있다. 딱딱하게 나를 감싸 숨 못 쉬게 만드는 갑옷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부드럽게 설 수 있게 하는 갑옷이다.


3. 일상 속 인욕의 장면들: 사람, 조건, 그리고 진실


삶에서 인욕은 세 장면에서 자라난다. 먼저 사람과 부딪힐 때, 인욕은 보복 반사를 멈추고 단호한 친절로 전환하는 힘이 된다. 회의에서 누군가가 말을 끊는 순간에도 인욕은 “당신 말도 중요합니다. 이 생각만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조건과 마주할 때 인욕은 상황을 재구성하는 시선을 준다. 새벽 3시 병원 복도에서 힘이 빠질 때 “왜 또 나야” 대신 “힘들다, 다음 1분을 잘하자”로 바꿔 내는 힘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진실과의 인욕이다. 아픈 피드백이 가슴에 박힐 때 도망치지 않고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태도가 인욕이다. 세 장면 뒤에는 공통된 동작 하나가 있다. 경험이 먼저, 해석은 나중이라는 원리다. 감정을 라벨링 하고, 주의를 몸의 감각으로 옮기고, 사건을 ‘조건’의 조합으로 다시 읽고, 가장 작은 지혜로운 행동 하나를 선택하는 것. 이런 마이크로 선택들이 쌓여 상처받지 않는 힘은 근육처럼 길러진다.


4. 경계와 훈련으로 완성되는 인욕의 자리


인욕은 경계가 있어야 온전해진다. 경계 없는 인욕은 순교가 되고, 인욕 없는 경계는 벽이 된다. 머물면 이해가 늘고 해가 줄어들 때 머문다. 반복되는 패턴이 이어지고 안전이 위협될 때는 물러난다. 침묵이 해를 유지시키는 순간에는 알린다. 인욕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무감각이 아니라, 어떤 상황도 내 마음을 점유하지 못하게 하는 주체적 자세다.


이 힘은 일상의 작은 훈련으로 자란다. 자극적인 메시지 앞에서 세 번 호흡하고, 감정이 올라오면 “여기 분노”라고 이름 붙이고, 즉각 반응을 질문 하나로 바꾸고, 몸의 감각으로 주의를 이동시키는 간단한 행동들이 바로 인욕의 바탕이 된다. 피드백은 하루 안에 구체적인 변화 한 가지로 연결하고, 친절한 거절문을 준비해 경계를 말의 형태로 갖춰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보시가 마음을 열고, 지계가 그 마음을 지키며, 인욕은 그 마음이 충격에 금 가는 것을 막는다. 인욕이 있을 때 우리는 부드럽지만 약하지 않고, 맑지만 차갑지 않게 설 수 있다. 세상은 느려지지 않지만 우리는 두 번째 화살을 멈출 수 있다. 그 멈춤의 틈에서 지혜와 자비가 일할 공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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