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나는 백수였다. 아침에 일어난 시간은 낮 12시.
일어난 게 아니라 그냥 눈만 떴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의미 없이 흘러가는 뉴스 자막을 멍하니 바라봤다.
유튜브. 넷플릭스. 라면. 편의점. 다시 침대.
그게 내 일상이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심장은 이유도 없이 두 번 세 번 더 빠르게 뛰었고,
눈앞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가슴을 눌렀다.
그때였다.
TV에서 자막이 떴다.
“RS-27 바이러스,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 확산 중…”
“대구에서도 감염자 다수 발생…”
“정부, ‘국민 여러분의 냉정한 대처’ 당부…”
자막이 너무 많았다.
단순히 독감이면, 이렇게 긴급하게 띄우지 않는다.
뉴스 화면이 전환됐다.
방송국이 아니라,
누군가 핸드폰으로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어두운 병원 복도. 흔들리는 화면.
그리고
비명,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붙잡고, 목덜미에 이빨을 박는 남자.
사람이…
사람을 물고 있었다.
“뭐지…?”
목덜미를 물린 여자는 쓰러졌고,
그 옆의 의사 한 명은 당황하며 남자를 밀쳐냈지만, 곧 따라붙는 또 다른 ‘사람’에게 붙잡혔다.
그 순간이었다.
카메라가 문을 ‘쾅’ 닫는 소리를 담아냈고,
복도 저편에서 있던 탁한 눈의 형체들이 소리와 함께 일제히 반응했다.
정확히는, 달려들었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심장이 내려앉았다.
“진짜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지금은 그냥 백수일지 몰라도,
나는 이상하게 이런 생존을 감지하는 감각 하나는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뭔가 불길한 일이 오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건 그때와 똑같다. 아니, 더 세다.
침착하게 TV를 껐다.
창문을 닫고, 방 문을 잠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멀티툴 칼, 손전등, 보조배터리, 손목시계, 라이터, 작은 구급가방, 장갑 한 켤레.
예전에 캠핑 좋아하던 시절에 모아 둔 것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싱크대로 가 물통 두 개를 채우고, 남은 생수 3병과 컵라면 4개를 가방에 넣었다.
두꺼운 후드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꽉 묶었다.
현관에 서서, 몇 초간 가만히 서 있었다.
이상하게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진짜 ‘생존’처럼 느껴졌다.
휘영
생각나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나의 여자친구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단 하나의 번호를 눌렀다.
“휘영아.”
“응? 왜? 무슨 일이야?”
“지금, 절대 밖에 나가지 마. 뉴스 봤어?”
“…봤는데… 오빠, 왜 그래? 목소리 왜 이렇게—”
“문 잠가. 창문 닫고, 짐 챙겨. 물, 약, 먹을 거.
”우리는 이마트로 갈꺼야!”
“만촌 이마트? 왜 거기야?”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일단 지금은 살아남는 게 먼저야. 알겠지? 내가 곧 갈게.”
전화를 끊고, 나는 작은 배낭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쓰지 않았다. 계단으로 내려갔다.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서.
건물 밖은 아직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주차장으로 가며, 나는 문득
오래전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사주 선생님이 그러더라.
이 아이는 사막에 혼자 떨어뜨려도 살아남는 아이라네요.
흐름을 읽고, 혼자서 길을 찾아가는 아이래.”
나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세상이 아주 천천히,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딱 나만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