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지수는 당황한 듯 말했지만, 눈에 보일 만큼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준혁은—
그녀의 표정,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고마웠다.
“저희 오늘은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는 방법을 먼저 배워볼게요.
도자기의 형태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게 먼저니
가볍게 머그컵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지수의 설명과 함께 흙이 나눠졌다.
시범이 끝나고,
수강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준혁도 흙덩이를 조심스레 만졌다.
그런데—
“뭐지...? 왜 안 되지...? 어라, 구멍 났네...? 아오, 다시...”
입술을 앙다문 채 땀까지 살짝 맺힌 준혁.
지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토록 진지한 표정이라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잘 안 돼요?”
“네... 나름 만들었는데 구멍이 나서요.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요.”
“너무 힘으로 하면 안 돼요.
자연스럽고, 천천히… 부드럽게요.”
“그러면... 선생님이 좀 도와주세요.
어느 정도 힘으로 해야 하는지…”
준혁이 능청스레 말을 잇자,
지수는 흙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도와주었다.
그 순간—
준혁은 지수의 손을 살짝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 이 정도 힘으로요?”
지수는 순간 얼어붙었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빼고 말했다.
“...준혁 씨가 해보세요!”
그리고 황급히 다른 수강생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모든 수강생이,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었다.
“선생님!! 그냥 가르쳐주는 건데 뭘 그렇게 얼굴이 홍시가 돼요~?”
“선생님, 선생님~ 학생이랑… 그냥 수업만 하시는 거 아니죠~?”
“총각! 선생님이랑 무슨 사이예요~?”
중년 수강생 세 명, 이른바 수강생 123 트리오의 공격이 시작됐다.
준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너무 좋아해서…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수강생입니다.”
그 말에 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도망치듯 나갔다.
수강생 트리오는 놓치지 않았다.
“총각! 선생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직업이 뭐예요?”
“지금… 사귀는 사이예요? 썸이예요?”
준혁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가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냥... 모든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투자자입니다.
지금은 썸을 넘어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화장실 거울 앞,
지수는 얼굴을 식히며 웃었다.
‘진짜... ’
당황스럽지만
좋았다.
그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확신.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그 다정한 방식.
‘행복하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지수가 돌아오자
또다시 수강생 123의 질문 폭격.
“선생님! 저 총각 어디가 좋아요?
저 사람은 그냥 싹 다 좋다던데~”
“투자자가 직업이라네요?
쌤, 꼭 잡으세요~!!”
“총각은 바로 결혼 생각이라던데요?
선생님 생각은요?”
지수는 당황스러웠지만,
조용히 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좋습니다.”
트리오는 벌떼처럼 소리쳤다.
준혁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신없이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 123은 둘에게 엄청난 응원을 남긴 채 떠났다.
둘만 남은 공간.
조용해졌다.
“지수 씨… 제가 너무 정신 없게 만든 건 아닌가요?”
“아뇨! 그냥… 좀 부끄러워서요.”
“오늘 일정 있으세요?”
“네...없어요.”
“그럼... 저녁 먹으로 가요!.”
“음.. 한잔 하러 갈래요?!”
“좋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좋아하는 집이 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제가 진짜 좋아하고 소중한 곳이에요.”
“어디든 좋아요.”
도착한 곳은 을왕리 바닷가,
작은 조개구이집.
간판에는 작게
‘언니 포차’.
지수는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언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았다.
“야~ 지수 왔구나!”
조용히 앉은 자리에서
지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제가 혼자 처음 바다 보러 왔을 때
우연히 들어온 곳이에요.
부모님이 떠나시고 그냥 그렇게 지내면서
진짜... 아무도 없다고 느껴졌던 시절.
그때, 그냥 무작정 이곳으로 왔어요.
그리고 여기 언니를 만났어요.”
잠시 후, 언니가 다가왔다.
“지수~ 니가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그것도 남자 데리고 왔네?”
지수는 수줍게 대답했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준혁은 바로 받아쳤다.
“안녕하세요. 준혁입니다.
지수 씨를 정말 좋아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직 사귀자는 말도 못 했지만
곧 고백할 거고,
머지않아 결혼할 겁니다.”
언니는 어머!! 그리고
한참 지수를 바라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표정에서,
지수의 과거가
고스란히 읽혔다.
조개구이가 나왔고,
언니의 질문이 시작됐다.
“부모님은?
지수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직업은 뭐라고요?”
지수가 황급히 말했다.
“언니! 천천히요! 준혁 씨 당황하시겠어요!”
“야, 뭐야? 너지금 편들어 준거야?”
준혁은 차분히 답했다.
“부모님은... 어릴 때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살아오며
투자를 시작했고,
지금은 투자자입니다.
지수 씨 책임질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수 씨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언니 이야기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정적.
그리고 언니의 한 마디.
“그쪽도… 쉽지 않은 삶이었네요.
그런데, 투자자요?
혹시...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돼요?”
지수가 당황했다.
“언니! 그건 좀…”
“아니, 책임진다고 하니까!
한 번에 수십억도 날리는 게 투자자잖아!”
준혁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정확하게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강남 빌딩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언니는 말문이 막혔다.
“...헉.
…그럼… 백억...아니...천억대…”
조금 후, 언니는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오늘 장사 끝! 그 남자 좀 봐야겠어!”
지수는 외쳤다.
“언니 뭐 하는 거야~!”
“야! 네가 더 중요해!
이런 남자, 눈 크게 뜨고 봐야지!”
준혁은 조용히 잔을 들며 말했다.
“각오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셋이서,
한 잔, 두 잔…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날 밤,
을왕리의 파도 소리 너머로
두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확실하게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