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약속 그리고 수강 등록 했어요 -
“그런데 그건… 아가씨가 만든 거네.
저놈이 저런 웃음 짓는 거…
내가 정말 오랜만에 본다니까.”
이날 밤, 준혁은 처음으로
감정만으로 움직였던 하루를,
그리고 그 옆에 있었던 지수를
조용히,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닷가의 저녁 바람 속,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를 슬쩍슬쩍 훔쳐보며 나눈 시간.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찼다.
식당을 나서며 준혁이 외쳤다.
“할머니, 잘 먹었습니다! 역시 최고예요!”
할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래 이놈아~ 얼른 가. 늦었어, 늦었어.”
준혁은 웃으며 지갑에서 두툼한 수표를 꺼내 건넸다.
할머니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야… 뭐야, 왜 이렇게 많이 주는 거야?!”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할머니는 조용히 다가와 준혁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 주식으로 처음 돈 많이 벌었다고 내게 자랑했던 날 이후로
처음 본다, 네가 그렇게 웃는 거.
저 아가씨… 절대 놓치지 마라.”
준혁은 부끄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차에 올라 지수의 집 앞에 도착했다.
준혁은 시동을 끄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나요?”
지수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비밀이에요.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깊은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수 씨… 저, 정말 많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을 만큼요.
하지만… 지수 씨 말씀처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더 알고,
그 후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결혼이요…? 벌써요…?”
준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일단… 저희, 데이트 많이 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준혁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계산적이고 분석적인 인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구나.
지수 씨를 만나고 나서야 진짜 나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뭘 위해 살아왔던 거지…
아, 결혼하고 싶다…’
집에 도착한 준혁은
피곤할 지수를 배려해 문자 하나를 보냈다.
지수 씨,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제가 나비가 되어 드릴게요.
그 후, 오랜만에 3일 만에 코인 계좌를 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 내가 매매한 적이 없는데?’
계좌엔 이미 거래가 체결돼 있었고,
수익률은 300%를 넘고 있었다.
급히 분석을 마치고, 조용히 매도 버튼을 눌렀다.
수익은 무려 50억.
‘이게 무슨… 미쳤네.
이건 그냥… 지수 씨 효과야.’
지수는 집에 들어와 씻으면서
문득 멈췄다.
자신의 삶. 불운했던 기억.
행운이라 믿었던 ‘나비’.
그리고… 준혁.
그는 나비가 다시 보인 날,
자신에게 다가와 줬다.
지수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행복하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자신이 놀라웠다.
손이 퉁퉁 불어 있던 걸 알아차린 지수는 급히 씻고,
준혁의 문자를 확인했다.
답장을 하려다,
‘늦었으니 내일, 답장해 야지’
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준혁은 눈을 뜨자마자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러닝을 하는데… 행복했다.
숨이 차도, 다 좋았다.
9시. 주식장이 열렸다.
그는 차트분석 후 매수를 했다
매도 타이밍을 보다가 문득
‘지수 씨는 언제 출근하나…’
그 생각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가려는 순간
아! 매도 누르고 나가야지 하며 주식창을 확인했다.
+100%
“헐… 미쳤다.”
더 분석하지 않고 바로 매도했다.
추가 수익 10억.
‘정말 지수 씨는…’
지수는 10시에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지수 씨.”
“어? 준혁 씨!?”
준혁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출근하시는 거예요?
저도 마침 그쪽 방향 볼일 있어서, 태워드릴게요.”
“… 그쪽에요?”
차 안.
지수가 물었다.
“무슨 약속 있으세요?”
“네. 점심 약속이랑… 수업 하나 듣기로 해서요.”
“아, 그렇군요”
지수는 생각했다. 평소 루틴으로 삶을 살아왔다는 준혁을 말
그리고 운동 등 다양한 것을 배운다는 말을...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가게 앞에 도착했다.
“점심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커피 한 잔 내려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드릴게요.”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던 지수가 말했다.
“준혁 씨, 이제 점심 약속 가셔야죠!”
“네! 지금 가야죠!”
그렇게 준혁은 떠났다.
그리고 12시 20분.
지수가 점심을 먹으려던 순간, 가게 문이 열렸다.
“오늘은 초밥입니다!”
“준혁 씨! 점심 약속 있으시다면서요!”
“네! 지수 씨랑요!
여기서 초밥 먹는 게 오늘 약속이에요!”
지수는 웃었다.
점심을 먹고 오늘은 새로운 수강생을 맞이하는 날이었다.
1시 30분. 수강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지수는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새로운 수강생들과의 수업.
그런데 4명이 등록을 했는데.
입장은 3명.
5분이 지나고 마지막 수강생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늦지 않았죠?”
그 순간 지수는 입을 벌렸다.
“… 준혁 씨?”
“네. 저 오늘 수강생입니다.”
“… 수강생… 이요?”
예약을 확인해 보니 진짜로 그의 이름이 있었다.
준혁은 능글맞은 미소로 말했다.
“여기 선생님이 엄청 이쁘고,
실력도 좋고, 상냥하다고 해서요.
그래서 바로 등록했습니다.”
지수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황급히 몸을 돌렸다.
다른 수강생들—중년 여성들—은
‘아, 두 사람… 그런 사이구나’
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지수는 당황한 듯 말했다.
“… 자,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웠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준혁은—
그녀의 표정,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