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지금 이 순간,
당신이라서 감사합니다

by Woo seo
“...자,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지수는 당황한 듯 말했지만, 눈에 보일 만큼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준혁은—

그녀의 표정,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를 보며

그저 ‘지금 이 순간’이 고마웠다.


“저희 오늘은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는 방법을 먼저 배워볼게요.
도자기의 형태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게 먼저니
가볍게 머그컵 하나 만들어보겠습니다.”

지수의 설명과 함께 흙이 나눠졌다.


시범이 끝나고,

수강생들이 각자 자리에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준혁도 흙덩이를 조심스레 만졌다.

그런데—

“뭐지...? 왜 안 되지...? 어라, 구멍 났네...? 아오, 다시...”

입술을 앙다문 채 땀까지 살짝 맺힌 준혁.

지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토록 진지한 표정이라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잘 안 돼요?”
“네... 나름 만들었는데 구멍이 나서요.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어요.”
“너무 힘으로 하면 안 돼요.
자연스럽고, 천천히… 부드럽게요.”
“그러면... 선생님이 좀 도와주세요.
어느 정도 힘으로 해야 하는지…”

준혁이 능청스레 말을 잇자,

지수는 흙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도와주었다.


그 순간—

준혁은 지수의 손을 살짝 덥석 잡으며 말했다.

“아, 이 정도 힘으로요?”


지수는 순간 얼어붙었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빼고 말했다.

“...준혁 씨가 해보세요!”

그리고 황급히 다른 수강생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모든 수강생이,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었다.


“선생님!! 그냥 가르쳐주는 건데 뭘 그렇게 얼굴이 홍시가 돼요~?”
“선생님, 선생님~ 학생이랑… 그냥 수업만 하시는 거 아니죠~?”
“총각! 선생님이랑 무슨 사이예요~?”

중년 수강생 세 명, 이른바 수강생 123 트리오의 공격이 시작됐다.


준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너무 좋아해서…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수강생입니다.”

그 말에 지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도망치듯 나갔다.


수강생 트리오는 놓치지 않았다.

“총각! 선생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직업이 뭐예요?”
“지금… 사귀는 사이예요? 썸이예요?”

준혁은 한결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가 좋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냥... 모든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투자자입니다.
지금은 썸을 넘어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화장실 거울 앞,

지수는 얼굴을 식히며 웃었다.

‘진짜... ’

당황스럽지만

좋았다.


그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확신.

내가 오해하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그 다정한 방식.

‘행복하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지수가 돌아오자

또다시 수강생 123의 질문 폭격.

“선생님! 저 총각 어디가 좋아요?
저 사람은 그냥 싹 다 좋다던데~”
“투자자가 직업이라네요?
쌤, 꼭 잡으세요~!!”
“총각은 바로 결혼 생각이라던데요?
선생님 생각은요?”

지수는 당황스러웠지만,

조용히 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좋습니다.”

트리오는 벌떼처럼 소리쳤다.


“까아아아아!!”

준혁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신없이 수업이 끝나고,

수강생 123은 둘에게 엄청난 응원을 남긴 채 떠났다.

둘만 남은 공간.


조용해졌다.

“지수 씨… 제가 너무 정신 없게 만든 건 아닌가요?”
“아뇨! 그냥… 좀 부끄러워서요.”
“오늘 일정 있으세요?”
“네...없어요.”
“그럼... 저녁 먹으로 가요!.”
“음.. 한잔 하러 갈래요?!”
“좋습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좋아하는 집이 있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제가 진짜 좋아하고 소중한 곳이에요.”
“어디든 좋아요.”


도착한 곳은 을왕리 바닷가,

작은 조개구이집.

간판에는 작게

‘언니 포차’.

지수는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언니~!”

사장님이 반갑게 맞았다.

“야~ 지수 왔구나!”

조용히 앉은 자리에서

지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제가 혼자 처음 바다 보러 왔을 때
우연히 들어온 곳이에요.
부모님이 떠나시고 그냥 그렇게 지내면서
진짜... 아무도 없다고 느껴졌던 시절.
그때, 그냥 무작정 이곳으로 왔어요.
그리고 여기 언니를 만났어요.”

잠시 후, 언니가 다가왔다.

“지수~ 니가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그것도 남자 데리고 왔네?”

지수는 수줍게 대답했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준혁은 바로 받아쳤다.

“안녕하세요. 준혁입니다.
지수 씨를 정말 좋아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직 사귀자는 말도 못 했지만
곧 고백할 거고,
머지않아 결혼할 겁니다.”


언니는 어머!! 그리고

한참 지수를 바라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표정에서,

지수의 과거가

고스란히 읽혔다.


조개구이가 나왔고,

언니의 질문이 시작됐다.

“부모님은?
지수 어디가 그렇게 좋은지?
직업은 뭐라고요?”

지수가 황급히 말했다.

“언니! 천천히요! 준혁 씨 당황하시겠어요!”
“야, 뭐야? 너지금 편들어 준거야?”

준혁은 차분히 답했다.

“부모님은... 어릴 때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살아오며
투자를 시작했고,
지금은 투자자입니다.
지수 씨 책임질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수 씨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언니 이야기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정적.

그리고 언니의 한 마디.

“그쪽도… 쉽지 않은 삶이었네요.
그런데, 투자자요?
혹시...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여쭤봐도 돼요?”

지수가 당황했다.

“언니! 그건 좀…”
“아니, 책임진다고 하니까!
한 번에 수십억도 날리는 게 투자자잖아!”

준혁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정확하게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강남 빌딩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언니는 말문이 막혔다.

“...헉.
…그럼… 백억...아니...천억대…”


조금 후, 언니는 가게 문을 닫아버렸다.

“오늘 장사 끝! 그 남자 좀 봐야겠어!”

지수는 외쳤다.

“언니 뭐 하는 거야~!”
“야! 네가 더 중요해!
이런 남자, 눈 크게 뜨고 봐야지!”

준혁은 조용히 잔을 들며 말했다.

“각오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니와 셋이서,

한 잔, 두 잔…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날 밤,

을왕리의 파도 소리 너머로

두 사람의 마음이

조금 더,

확실하게

닿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