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의연함을 버리다
-시를 버리다-
11월 20일 저녁. 딱! 7:30.
방송작가인 SW샘이, 촬영팀이 눈 구경하라며 보내준 멋진 사진을 단톡방에 공유했다. '강원도 고한'이라 했다.
KJ샘이, -내가 단톡방에 자주 올리던- '박노해 시인의 시 구절이 적혀 있을 것 같은 사진이에요'라고 하자 SY샘을 비롯한 KJ샘, SW샘까지의 선한 부추김에, 말로는
-몬 함! -
이라 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벌써 분주하다.
참내! 여보를 보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듣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다. 여보의 말에 계속 딴 말하며 물어보니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마 그 순간, 여보는 내가 거기 있는데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듯한 눈빛이다. 마구 단어들을 찾는다.
앗! "엄마~ 나 왔어" 딸이 왔다. 9:54.
-나 이거 해야 되는데!
늦은 시간이니 밥은 먹었겠지?!
-휴! 다행이다!-
또 머리 속은 분주하다.
-쓸쓸하다 했지? 쓸쓸함 음! 공허함-
딸이 뭐라 말을 한다.
-그럼 이건? '빈자리' '빈자리' -
단어들이 하나씩 보인다.
딸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하다가
-에이! 안되겠다. 나중에 하자.- 마음을 덮는다.
내친김에 해야 되는데 뭐 덜 닦고 나온 사람처럼 찝찝해 하며 아쉬워하며 문장 만들기를 접는다.
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1시를 후울쩍 넘기고 피곤한 밤을 누인다.
아직 어둑한 새 날이 밝아온다.
6:30이 안 됐네. 더 자고 싶어 버티는데 문장 하나가 스쳐지나가지만 뭉갠다.
-더 자야지-
다시 또렷이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 아! -
벌떡 일어나 잊어버리기 전에 폰에 적어둔다.
-우리의 밝음으로 채워가리 우리의 맑음으로 닦아내리 흠!-
조합해서 사진에 넣어본다.
-흠, 박노해 시인 흉내 내기. 그럴 듯 해!!-
만족해 하며 SY샘께 인증을 받고 단톡방에 올린다. 오호 내친김에 아예 시 한 편을 후루룩 엮어본다. 우후!!
내 안의 공허함
네 안의 쓸쓸함
우리 안의 밝음으로 채워가리
내 안의 비루함
네 안의 생채기
우리 안의 맑음으로 닦아내리
내 안의 빈 자리
네 안의 빈 자리
우리 사랑으로 보듬어 가리
창비 계간지 신간 소개에서의 시들을 읽고, ‘참신하고 기발하다’는 생각을 한다.
또, 어젯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비트를 갖고 놀듯이, 같은 노래를 새롭게, 즐기듯이 노래하는, 기가 막히게 '똘끼'를 발휘하는 젊은 참가자들을 본다.
'와~ 멋지다!! 진짜 잘해! 어떻게 저렇게 잘해?!'
여보와 재밌어 하며 TV를 나눈다.
순간!
헉!,
느닷없이!
갑자기!
후~욱!
- 구태의연해!!
틀에 박혔어!!
고정관념에 찌들었어!!
이건 아니야.
그 시를 버려! 버려! 버려!!! -
뿌레삐 친구들아 잊어줘!
SY샘도 잊어주셈!
그새 친구들 단톡방에 시를 올리고 제목을 선택하게 했다.
'내 사람 돋우기', '내 마음 돋우기'
'난 후자! 너희는?' 다들 나와 동감이라 했다.
그렇게 제목까지 정했지만 난, 이 시를 버릴라고.
혹시 다른 글에 떼어다 쓸 수는 있겠으나 일단은 미련 없이 버릴라고.
11월24일 아침. 06:55
그렇게 어찌어찌 주워섬긴 시를 4일 만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