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근데 이제 북어위크에서

by 해무



하고 싶은 게 생겼다,라는 생소한 문장을 내뱉어본다. 눈을 뜨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로또가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내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말은 생겨서도 안 될 것 같고,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처음엔 누군가의 작업물이 시작이었다. 북어위크에 생긴 디자인 작업물. 애플브리 소금빵 포스터, 스태프 최애 메뉴 포스터 등등 포스터를 하나둘씩 눈에 담기 시작했다. 머리에 뭐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걸 직접 실물로 구현해 내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멋있게! 충격이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남 모르게 디자인 툴을 다운 받았다. 유명하다던데 사용법은 영 모르던. 일단 익숙한 아이패드로 애플브리 소금빵 포스터를 똑같이 만들어봤다. 같은 폰트도 없고, 같은 사진도 없어서 누끼도 포스터 사진을 찍어 애플 펜슬로 그려서 따고, 폰트는 가장 그럴듯한 걸 찾아 대체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그야말로 가내수공업 뺨치는 수작업. ‘이게 맞아?‘를 반복하며 일단 따라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에. 스포이드로 색을 뽑아내고, 세로로 쓰인 글씨는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찾아내서 가장 비슷하게 만드니, 주위 사람들에게 똑같다는 평을 받을 정도는 되었다. 내 작업물도 아닌데 괜히 뿌듯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비슷하다는 말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 하나를 얻은 것 같다. 여기서 또 시작. 그다음도 똑같다. 스태프 최애 메뉴 포스터 똑같이 만들어보기. 도형을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툴을 사용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고는 욕심이 났다. 나도 뭔가 하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써보고 싶은 마음처럼. 이미 북어위크 달력을 만들고는 있지만 또 다른 뭔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작업’을 시작했다. 북어위크 일이 끝나면 글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던 내게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북어위크 일 끝나고 북어위크 일하기.



북어위크의 시그니처 음료는 특유의 푸른색을 낸 베이스에 에스프레소와 크림을 올린 북어라떼다. 메뉴판에서 보고 주문하는 손님들은 많지만 아직 생소해하는 손님들도 많아서 어떻게 하면 인지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



처음 만들어보는 포스터다 보니 레퍼런스를 찾는 것부터 글씨 하나 적는 것도 오래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낸 시안이 5개 정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장님들에게 냅다 전송했다. 이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시면 하나 써달라고. 컨펌을 받기까지 며칠은 걸린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만든 포스터가 북어위크 벽 한쪽에 걸렸다. 지금 보니 수정할 부분이 많고,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도 않은 간단한 포스터지만 얼마나 뿌듯하던지. 자기 효능감이 벽을 뚫고 나왔다.



그때부터 사장님들의 승인 하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모조리 바꿨다. 휘낭시에, 세트 메뉴, 리뷰, 핸드드립 컵노트까지.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처럼 아직도 새로 만들어낼 것들을 찾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디자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게 디자인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행동으로, 그 결과로 채울 수 있다니 정말 즐거웠다. 북어위크에 내 색을 조금 덧칠한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계속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대로 해보기로 했다. 즐거우니까, 재밌으니까.


지금은 주위 사람들의 응원 아래 기쁘게 작업을 계속하는 중이다. 언젠가 내 스타일이 확립된 디자인물을 내보고 싶다는 목표 아닌 목표까지 생겼다. 북어위크에서 나만의 결을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 불확실한 하루에 현재 진행형인 열정을 이곳에서 계속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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