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근 수학학원의 한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오후 시간, 대부분의 학원들이 수업으로 가장 바쁠 때라
무슨 급한 일이실까 싶어 전화를 받았다.
“혹시 초등 4학년 여자아이 영어를 봐주실 수 있을까요?”
원장님은 조심스레 물으셨다.
이곳저곳 영어 학원을 알아봤지만, 반 레벨이 맞지 않거나
시간 조율이 안 된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하셨고,
학습은 조금 뒤처져 있지만 의지도 있고 배우려는 마음이 큰 아이라고
원장님은 확신에 차 말씀하셨다.
순간, 난감했다.
이미 기초반은 정원이 가득 차 있었고,
아이 수준에 맞는 저학년 기초반에도 넣을 수 없었다.
개별로 따로 봐줘야 할지도 모르는데,
나 또한 시간이 빠듯했다.
그런데 아이의 가정환경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만나보지도 않은 아이에게 묘한 연민과 안쓰러움이 먼저 다가왔다.
이미 밤 9시까지 수업을 이어가며 스케줄이 빠듯한 요즘인데도,
내 마음은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아… 그래요? 자리는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한번 만나만 볼게요.”
결국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원장님은 크게 반가워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아… 역시 난 거절을 못하는구나. 그게 나지 뭐.’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이가 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 손에 이끌려 쭈뼛쭈뼛 들어오기 마련인데,
제니(가명)는 혼자서 씩씩하게 잘 찾아왔다.
예의도 바르고 조심성도 있으며,
물어보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참 야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어 수업뿐 아니라
무엇이든 함께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작년부터 청소년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늘 생각해 왔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품 안에서 자라는 존재다.
어른들 모두가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아이를 함께 키워야 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그 중심에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앞으로 공부하다 보면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숙제가 많을 때도 있을 텐데 괜찮겠니?”
잠시 긴장했던 아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네, 선생님! 저 잘할 수 있어요. 그럼 저… 합격인 거예요?”
그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만약 내가 자리가 없다며 그냥 돌려보냈다면,
이 아이는 또다시 큰 상심과 불안을 안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응, 합격! 우리 제니가 하고 싶다면 선생님도 함께할 거야.
그러면 제니한테도 선생님이 합격일까?”
내 말에 아이는 활짝 웃으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연을 시작했다.
할머님도, 수학학원 원장님도 무척 기뻐하셨다.
아이를 한 명씩 만날 때마다, 내 마음가짐은 늘 새로워진다.
책임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아이의 성장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자 소명이다.
제니에게는 배움의 시작이었고,
나에게는 교사로서 책임을 다시 다잡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