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끌림의 양자성: 우연과 결핍의 만남

<선택적 친화력>, 요한 볼프강 폰 괴테

by 기록하는 인간


하나의 ‘물질적 형상’은, 양자 상태에 놓인 입자들이 중첩과 우연성을 겪은 결과로 나타난다. 괴테는 <선택적 친화력>에서 인간의 이끌림을 두 입자의 화학적 결합에 비유하고, 감정을 하나의 실험처럼 펼쳐 보인다. 작품은 마치 하나의 실험으로서 작동하고 도덕적 관념은 ‘이끌림’의 감정 앞에 배제된다.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도덕’보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우선시했고, 이로 인해 <선택적 친화력>은 불륜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사랑과 감정에 민감했던 괴테는 결혼 이후에도 여러 여성들과 교류를 나누었다. 노년에는 19세의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은 작품 속 불륜의 묘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괴테의 문장에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강한 힘이 있다. 이는 그의 평생에 걸친 정신적인 방황과 고뇌, 그리고 이에 대한 집요한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선택적 친화력>은 귀족 부부인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평온한 결혼 생활을 보내던 중, 대위와 오틸리에를 저택으로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며 감정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의 관계는 점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고, 감정의 이끌림은 도덕적 질서와 책임을 무너뜨린다.


욕망과 절제의 이중구도
: 욕망을 추구하는 자 vs. 이성으로 절제하는 자

괴테는 욕망을 채우는 행위와 윤리적인 문제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에서도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이상에 대한 갈등을 끈질기게 사유했기 때문이다.


<선택적 친화력> 역시 불륜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결혼한 남자가 딸 뻘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이미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친구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이들은 서로가 금기 관계임을 알면서도 애정의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 금기를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는 순수한 욕망을 따르는 반면, 샤를로테와 대위는 서로 애정의 감정을 느끼지만 절제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되는 것인가?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에두아르트는 귀족적 안일함 속에서 충동에 쉽게 휘둘리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줄 자기희생적인 여성 ‘오틸리에’에게 강하게 끌린다.


오틸리에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정서적 결핍을 안고 성장했다. 오틸리에의 성격은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이며, 다분히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다. 아마도 보호자의 부재가 그녀의 성장과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오틸리에의 이러한 성격은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에두아르트의 플룻연주에 맞춰 피아노를 치는 오틸리에

오틸리에는 본능적으로 ‘보호자’의 존재를 갈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애타게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에두아르트야말로 그녀의 완벽한 ‘보호자’였다. 오틸리에는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쳐 에두아르트를 사랑했다. 오틸리에에게 그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세상의 전부이자 유일한 감정의 피난처였다.


에두아르트는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아내를 뒤로한 채, 오틸리에에게 감정을 집중한다. 오틸리에 역시 샤를로테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없다.

물에 빠진 샤를로테를 구해준 대위

이와 대조적으로, 샤를로테와 대위는 서로 이끌림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려고 노력한다. 샤를로테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대위에게 다른 여성을 소개하며 거리를 두려 하고, 대위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 성을 떠나 샤를로테와의 관계를 끊어낸다.

양자상태의 우연성과 결핍의 만남 :

강한 결핍은 금기의 임계점을 넘어선다.

하나의 ‘물질적 형상’은, 양자 상태에 놓인 입자들이 중첩과 우연성을 겪은 결과로 나타난다. 인간 역시 수많은 사건들의 우연성 속에서 놓인 입자와도 같다. 여러 가능성의 중첩과 우연성을 통해 인간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적 형상’이라는 존재를 넘어 상황을 ‘선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은 인간이 ‘물질’로부터 구별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이성은 선택을 낳는다. 이 선택으로 책임을 지는 것 역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유진 들라크루아를 보고 그린 제리코의 습작


인간은 선택을 할 때 자신이 가진 가치관을 따른다. 이 가치관에 부합 여부가 선택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성보다 강력한 결핍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 지나친 결핍은 금기를 넘게 만드는 심리적 임계점으로 작동한다. 즉, 결핍이 심할수록 이성을 잃기 쉬우며, 이성은 본능적 욕구 앞에서 무력해진다. 소설 속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는 내면에 결핍이 많은 인물이다. 괴테는 이들이 사랑을 이루지 못해 죽음을 맞게 되는 결말을 통해 그 내면의 갈등을 극대화한다.

결핍은 때때로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는 결핍은 우리를 망친다.
우리의 결핍은 무엇이고 또 얼마나 깊을까.

이 결핍을 극복할 것인가

혹은 이에 잠식될 것인가.
괴테는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다.

keyword
이전 03화세 가지 순응, 하나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