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feat. 수레바퀴 아래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다 보면, 읽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로 과한 표현이 자주 쓰인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고, 입이 매우 건 사춘기 남자아이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제대로 입도 한 번 떼지 못한 채 말이다. 결말까지 읽은 후에 생각해 보니, 주인공의 성격과 심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내 나의 10대를 돌이켜보게 되면서, 홀든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강한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밀려온다. 거친 말투와 행동들은 결국 관심을 받고 싶은 서툰 표현은 아니었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든 의문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목에 관한 것이다. 꿈이 뭐냐고 묻는 여동생 피비의 말에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호밀밭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고, 파수꾼은 그 공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파수꾼은 아이들이 호밀밭이라는 공간에서 마음껏 뛰노는 것을 통제하지 않고 바라봐준다. 그리고 위험한 것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는 존재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홀든의 꿈은 외려 "든든한 파수꾼으로부터 인정받고 보호받고 싶은 홀든"의 내적결핍이라고 볼 수 있다.
천방지축 홀든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탄생한 1950년대의 미국 청소년들의 실제 모습은 어떨까? 단적인 예로, 당시에 미국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위험한 놀이문화, 이른바"치킨게임"이 있었다. 지금이야 치킨게임이라는 용어가 빈번히 사용되어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 탄생과정을 알게 되면 아연실색해진다.
이 게임은 당시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용기 시험 방식으로, 두 자동차가 서로를 향해 돌진한 후, 먼저 핸들을 돌리는 사람이 패배하는 방식이다. 잘못된 어린 치기에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전후 미국 사회는 냉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은 이데올로기의 전쟁을 벌이며 세계를 양분했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내세워야 했다. 하지만 자유를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존재했다. 자유는 '자본의 자유'로 해석되었고, 평등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 '획일성'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적’과 ‘우리’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더욱 심화되었다.
공산주의자, 급진적 사상가, 그리고 비주류들은 ‘국가를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낙인찍혔다. 이것이 바로 매카시즘(McCarthyism)의 탄생 배경이었다. 매카시즘은 단순히 정치적 탄압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전통적 가치’를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여성, 흑인, 성소수자까지 통제하려 했다. 즉, 냉전 시대의 미국은 공산주의를 배척하면서도, 오히려 내부적으로는 획일성과 차별을 조장하는 모순적인 사회였다.
이 시기 미국 청소년들은 풍요로운 자본 속에서도 정신적인 강박증에 시달렸다. 양분법적인 사고의 영향으로 그들의 가치관이 묶여버린 것이다. 홀든의 캐릭터를 '망나니' 같이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유도 묶여버린 가치관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비친다. 그는 어른들의 위선을 경멸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들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낀다. 이 모순이 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방황하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도 홀든처럼 같은 10대의 청소년이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한스와 홀든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한스는 내향적이고, 홀든은 외향적이기에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주인공 모두 청소년이고,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사랑과 인정, 지지를 받는데 모두 실패한다면 이 청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두 작품의 결말이 그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스는 부모와 주변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며 자살로 마감하지만, 홀든에게는 자신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여동생이 있었다.
홀든은 가족인 여동생 피비의 순수한 지지를 기반으로 힘들었던 과거를 극복해 보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존재의 유무에서 두 주인공의 중요한 환경적 차이가 느껴진다.
한스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난 건 아닐까.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감정의 굴레 속에 있다 보면 그저 이해받고 싶은 마음뿐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삶에서 누군가의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 지지를 받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어른이 된 사람 중에서 10대를 지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지지받지 못하고 자라 '어른이 되어버린 10대'도 있을 것이다.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지지할 수 있는 존재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인정과 지지,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뒤바꿀 작은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몹시 그리워할 때, 그 사람이 내가 잘 있나 궁금해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호밀밭의 파수꾼>중에서 발췌-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지지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는 여전히 ‘내가 잘 있나 궁금해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