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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료 적게 내는 솔루션

자아도취적 시점 #01

by 김현석


예전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분야의 사업을 정리할 때쯤, 그동안 인간군상들과 교류하고 부딪히며 느낀 희노애락을 정리하여 서사를 기반으로 한 인문학책 한 권을 출간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던 시기가 있었다.

제목과 서술내용의 얼개는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20년이 다되도록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했는데 불현듯 다시 말년의 역작(?)으로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동력이 조금씩 생기는 것이 아직도 이런 열정이 남아있는 나를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 당시 책의 제목은 <대한민국에서 인생수업료 적게 내는 방법>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서양사회에서도 인생수업료 같은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엄연히 사용하는 엄혹한 함의를 갖고 있는 말이다.
오랜 전부터 살아냈던 어르신들이 푸념하듯이 애정 어린 마음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 더 순탄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을 당부하면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제목에 인생수업료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적게 내는 이란 표현을 한 것은 안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수업료는 학교나 전공에 따라서 책정해도 총액기준 편차가 별로 크지 않지만 인생수업료는 특성상 개인에 따라서 수십 배의 편차가 있고 운이 나쁘면 인생전체의 노고를 다 받칠정도의 금액을 내고도 인생을 리셋하기가 힘겨운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인간사회에서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인생수업료를 타의에 의해 강제납부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나 정서의 중심에 이기심과 자기중심적 사고가 있다 보니, 올바른 자아형성으로 본능을 절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수의 인간들은 상황이나 상대방의 순진함에 따라서 자신의 잠재되어 있는 본능이 살아 움직이며 원초적 인간으로 변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현자가 말하길 "상대방을 믿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이 진실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실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인생수업료를 많이 내고 역경에 놓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비현실적인 상대방의 제안에 소탐대실하는 경우도 있지만, 진실되고 성실한 부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건 인간의 본능이나 악의 평범성을 올바른 자아가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인간의 민낯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인간의 이런 모습은 영화 속이야기의 악당으로 나오는 캐릭터로만 생각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정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란 존재가 개체에 따라서 꽃보다 아름답고 인류애가 충만한 귀인 같은 존재도 있지만 영악한 포식자같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약탈자의 발톱은 숨긴 채 살아가는 생태계교란종 같은 인간들 역시 공존하고 있다는 이 사회의 불편한 진실만큼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절대 넘어져서 안 되는 곳에선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라는 간절한 당부 같은 인생의 교훈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도 신체활동 중에 넘어지는 상황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며, 신체조절능력과 운동발달을 위해서는 경험하며 체득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잘못 넘어져 평생 심한 신체적 장애를 가지면 안 되듯이, 어른이 되어서도 한두 번의 실패가 성공의 자양분이 되어주고 세상을 관조하는 통찰력을 키워주어 한층 완성형 인간으로 성숙되며 재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상대방의 수작에 현혹되어 정말 위험한 상황에서 무방비로 넘어지면 모든 자산을 잃고서 그런 상황을 견뎌내고 회복하기 위해 지난한 세월을 겪어야 하거나 회복불능으로 하류인생을 살다가 끝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질은 태어날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말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성향이나 기질은 타고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고, 그런 면에서 나의 성격이나 기질을 생각해 보면 온순하면서 아름다운 세상과 상호 간에 정서적 교감이 삶에 도움이 되는 인간관계의 추구가 삶의 모토인 것 같다.

요즘도 한 인간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재미 삼아하는 MBTI를 몇 년 전에 해봤을 때 나의 유형은 ENFJ로 나왔는데 한 문장으로 특성을 정의하면 `정의로운 사회활동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유형이고, 셀럽 중에는 오바마, 오프라윈프리 같은 사람이 똑같은 유형이라는 것에 엠부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은 멘탈면이나 타인을 조망하는 통찰력이 많이 향상되고, 질풍노도의 시기엔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자세로 중요한 결정들을 해나갔다면 이젠 좀 더 신중하고 부정적인 측면까지 다각도로 살펴보는 자세를 견지하는 마음가짐을 의식적으로 갖으려고 하는 편이다.

위에서 언급한 셀럽들이야 월클 수준의 전체적인 유능성을 갖고서 치열한 노력으로 자기 분야의 정상의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들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ENFJ성향으로 나름 치열하게, 나름 공동체감각으로 무장한 채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도 어떤 인간과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인생행로는 격랑과 풍파를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세상인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인생수업료의 9할은 지인이나 친밀감 있던 인간으로부터 발생하였다.

그들의 페르소나(사회적 가면)에 숨겨진 본질을 알아채기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타인을 의심하려 들지도 않고 오히려 그런 걸로 상대방이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까지 신경을 쓰며 고양이한테 나의 생선을 선뜻 맡기는 것에 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자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이런 인간세상의 메커니즘을 조망해서 고양이나 여우과의 인간들을 선별하며 인생수업료의 납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도 있었던 다채로운 경험과 그로 인한 다양한 손실들을 복구하기 위한 길다면 길었던 인고의 세월을 보냈고, 많은 지인과 친구들과도 멀어지거나 손절되는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사은품처럼 따라왔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불행 중 다행으로 긍정적으로 버텨내며 전화위복의 상황으로 역전시켜 오래전에 평정심을 되찾고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은 상태이지만 정서적인 손상의 여운은 남아있는 듯하다.

마치 참전용사가 자신의 격렬했던 예전의 전황을 회상하는 느낌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아직도 곳곳에 상흔은 남아있고 인간적인 관계의 손실은 회복도 어렵거니와 힘든 상황을 겪어보니 다수의 인간관계는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소수의 소울메이트같은 사람들에게 더욱 베풀며 돈독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공정하고 이상적인 세상은 누구나 자신의 타고난 재능에 투여된 노력만큼 삶을 누려야 하지만 현실세상은 약육강식에 부조리도 만연해 저절로 내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살면서 인생항로에 크게 영향을 주는 중요한 것들은 자신이 주도성을 갖고서 주도면밀하게 진행해 나가야 하고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도 예상해 보는 선택을 해야 한다.
시작단계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나 진의를 완전히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고를 줄이려 인생행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중요한 결정들을 상대방에게 의존하는 편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악마가 숨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만큼은 명심해야 한다.

인생의 반환점을 훨씬 넘어선 현시점에서 지난 세월을 성찰해 보면 젊어서 패기와 열정이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자신이 목표했던 것들을 이루어나가다 보면 이런 기세가 지속될 것 같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돌파할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하여 방심하는 순간 생전 겪어보지도 상상하지 못한 역경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펼쳐지는 경우가 있다.

비유하자면 그동안 성실한 사회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수영에 자신감이 붙어 강가에서만 유영하다가 용기 내어 바다로 나가서 내 루틴이나 패턴대로 바닷물을 헤쳐나가며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수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쓰나미가 덮쳐버리는 형국을 맞이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경우 몸부림치며 그동안 연마하고 훈습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써도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어서 누구라도 벗어나기까지는 많은 물리적인 시간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내가 살아서 최소한 물에 떠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숨 쉴 수 있도록 나에게 통나무를 건네주었던 사람은 생각보다 소수였다.
지금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소수인원이 보편적이지 않은 행동을 감행한 것이었으며 내 상황은 그래도 펀더멘탈이 견고하여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한마음을 전하며 보상해 주고 해피엔딩으로 상황이 종결되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상대방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무척 힘든 일이다.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베스트일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자신의 선의를 악용하여 계획에도 없던 인생수업료를 강제로 징수하는 무리들과 방심하는 순간 엮이게 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이젠 내가 신뢰하고 친밀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쓰나미상황에 빠지면 감정이입이 되어 강 건너 불 보듯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우선 그런 쓰나미상황 속으로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중요한 거래의 당사자에겐 경계심을 갖고 여유 있게,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중요한 선택의 시발점에선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현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종결시점에 천국이었으면 감사를 표하고 보답하면 될 일이다.

인생수업료를 한 푼도 안 내는 전액장학생이 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일부감면받는 우수장학생, 근로장학생이 되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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