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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일기

1. 잊혀지는 기억

by 타마마 Mar 11. 2025

육신의 감옥에 갇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매일 아침 웃으며 인사하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심해 저 아래로 가라앉은 잠수함 안에서 

 

산소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승무원처럼

 

옴싹달싹할 수도 없는 사육장에 갇힌 개처럼

 

누군가 다가오길 기다리며

 

혹은 이 상황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늘 안타깝지만

 

또 늘 어쩔 수 없다.

 

나는 새장 밖의 사람이고

 

그들은 새장 안의 새처럼 살아간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으로 

 

사람의 온기가 그립지만

 

다들 뭔가 하면서 바쁘고

 

정신이 없다.

 

시간이 많아 생각은 많지만

 

잠깐 다가와서 몇 마디 던지고 가는

 

그 알량한 마음 씀의 가식적인 표현이라도 

 

붙들어야 하루를 버틸만 하다.

 

나를 만지는 따스한 그 온기가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나의 자랑. 나의 가족.

 

매일 보고 싶고 쓰다듬고 말하고 싶은 나의 흔적들이

 

각자의 삶에 충실하느라 나를 볼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래도 서운한 건

 

체념할 수 밖에 없어서

 

여기 들어오게 된 내 육신 때문에

 

서글프다.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혼자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시간이 되면 나를 먹여주고 닦아주고 또 말 걸어주는

 

그들이 있어 고마우면서도 때로는 밉다.

 

가족이 보고 싶다. 죽더라도 집에서 죽고 싶다.

 

형광등이 꺼지듯 머릿속이 어두워진다.

 

‘학생 집에 가려는데 문이 어딨어요?’

 

‘어르신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에요. 식사 하시고 집에 가셔요.’

 

‘아이 참 시어머니 점심 차려드려야 해서 집에 가야 되는데..’

 

‘제가 있다가 사람 보내서 점심 차려 드시게 할게요. 걱정 마셔요.’

 

90이 훌쩍 넘으신 어르신이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인 시어머니의 식사를 걱정하신다.

 

안타까워 지켜보다 넌지시 여쭤본다.

 

‘어르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나 70.’

 

20년은 뒤로 돌아가는 나이. 

 

시어머니의 점심은 잠시 잊고 웃으며 말하다 문을 찾는다.

 

문이 어딨는지 매일 보면서도 여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그저 답답할 뿐.

 

‘문 좀 열어줘. 나 밥 안 먹어도 되니까 집에 가야 되니까 문 좀 열어줘.’

 

‘어르신 점심부터 드셔요. 식사 하시고 나면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한참을 실랑이 하다 식탁에 앉으신다.

 

식판에 담긴 밥이 먹음직스럽다.

 

한 술 뜨며 다시 잃어버린다. 식사를 마치고 또 생각난다.

 

수명이 다한 형광등이 깜박이듯 기억이 살아났다가 스러진다.

 

내 아기. 밥은 먹었나. 걱정이 된다.

 

‘큰 애 밥 먹을 시간인데 어딜 갔대. 나 저녁 지으러 가야 돼. 집에 보내줘.’

 

‘아드님 일하러 가셨어요. 밖에서 드시고 온대요’

 

‘그래? 밖에서 먹는데? 누구랑 먹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이랑 먹는데요. 걱정 마셔요’

 

그제서야 자리에 눕는다. 뭔가 안심이 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참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하소연한다.

 

‘학생 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화장실에 데려다 줘.’

 

‘잠시만요 어르신. 담당 선생님 부를께요.’

 

누군가 오게 되는 시간이 야속하다. 배는 아프고 사람은 더디온다.

 

‘어르신 기저귀에 누세요. 괜찮아요. 제가 치워 드릴게요’

 

‘아니 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 화장실에서 눌게’

 

‘어르신 걷지도 못하시면서 화장실을 어떻게 가세요. 그냥 기저귀에다 누시면 돼요’

 

결국 누운자리에서 실례했다. 부끄럽다. 어디론가 숨고만 싶다.

 

‘어르신 다 누셨어요? 잘하셨네요. 제가 금방 치워 드릴게요’

 

매일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누군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 동네 아주매가 여상스레 말한다.

 

몸을 돌리며 나는 부끄러워 아무 말이나 주워 섬겼다.

 

‘어디 살어? 몇 살이여?’

 

‘어르신 사시는 00 동네 살아요 아시죠? 둥글레 집 딸내미에요’

 

‘뭐어? 둥글레 집 딸이여? 아이고 벌써 이리 컸남?’

 

내 눈에는 영락없이 20대의 꽃처녀로 보였다. 젊음이 부럽다.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저 손자도 있는데요 손녀도 있고요’

 

‘아니 손자 손녀가 있어? 이렇게 젊은데? 아가씨처럼 보이는데’

 

기저귀를 갈아주던 아주매가 살짝 웃는다.

 

‘저도 벌써 나이가 60이 넘었어요. 자 어르신 다 됐습니다. 시원하시죠?’

눈 깜짝할 사이에 기저귀를 가지고 사라졌다. 개운하다.

 

잠시 누워 있으니 다시 소음이 찾아온다. 

 

파도가 밀려오듯 귓가에 아이 울음소리가 맴돈다.

 

큰 아이가 어디선가 울고 있다.

 

‘00아. 엄마 여깄어. 울지마. 엄마가 찾아갈게’

 

아이는 벌써 훌쩍 커서 60이 다 되었건만 어미는 아직도 아기를 찾는다.

 

‘어르신 또 00이 찾으시네요.’

 

‘보호자인 큰 아드님이 우리와 나이도 비슷한데 매일 찾으시니...’

 

선생님들이 안타까워 한 마디씩 쌓는다. 말들이 어르신에게 찾아가 돌무덤의 돌처럼 쌓인다.

 

‘어르신 00이 일하러 갔어요. 오늘 못 온대요. 밖에서 식사한대요.’

 

‘누구랑 밥을 먹어?’

 

‘같이 일하는 사람이랑 밥을 먹는대요’

 

‘그려? 이상하네. 어디서 00이가 자꾸 부르는데’

 

‘오늘 여기 안 왔어요. 일하는 사람이랑 밥 먹는다고 내일 온대요’

 

‘그려. 알았어’

 

날이 저문다. 기억은 다시 깜박였다. 


아기의 얼굴이 아이였다가 소년이었다가 청년으로 그리고 중년 아저씨의 얼굴로 변했다. 


조금씩 눈이 감겨온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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