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서 만난 '사이버 카페 달인'

by 유창엽

[2023년 9월 17일(일)]

13일 연속 일하다가 오늘에야 쉬었다. 지난 9일 토요일로 휴무일이었으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일한 탓이다.

일전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총리로 재직해온 9년 동안 한번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고 하는 현지 신문 기사를 봤다. 또 신문에는 한 교사가 11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근무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기도 했다. 모디 총리나 이 교사가 피로를 어떻게 해소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운전기사도 자기 아내 생일인 일요일에 휴무를 원했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다. 따라서 차가 없어 성당에 못가고 집에서 미사를 봤다. 운전기사는 원래 월요일 휴무인데 일요일로 변경해준 것이다.

집에서 미사 본 뒤 주변 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나가 걸었다. 그러다가 내가 조깅하면서 보고서 '좋다'는 느낌이 든 아파트 단지를 구경하러 가자고 제안했다.아내와 함께 10여분 걸어 그 단지에 갔다.

단지 입구에는 경비원 두 명이 서 있었다. 이들에게 잠시 단지 안을 볼 수 없느냐고 문의했더니 둘 중 한 명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내게 바꿔줬다. 내가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니 상대편이 "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5분을 한참 넘도록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 살짝 화가 나서 막 떠나려는 차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우리로 치면 아파트 입주민대표회 회장격인 '소사이어티 프레지던트'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명함을 건네며 한국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도 라디오 방송국에 근무한다면서 대하는 태도를 180도 다르게 선하게 바꿨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나는 거기에서 몇가지 질문을 했다. 현재 주변 호텔에 묵고 있는데 이 아파트로 이사 올 경우 베드룸 3개짜리 집의 월세가 얼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베드룸 4개부터 1개까지 4개 범주가 있고 베드룸 3개 집은 월세가 5만루피, 베드룸 2개 집은 3만루피라고 했다. 주변 아파트 단지도 다 그 수준이라고 했다. 다만 현재는 비어있는 집이 없으니 빈 집이 생기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뜻하지 않게 아파트 '임장'을 한 셈이 됐다. 이어서 그 회장은 경비원 한 명을 붙여줘 우리는 단지 전체를 꼼꼼이 살펴볼 수 있었다. 단지는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내부는 나름대로 깨끗하고 공간도 널찍한 편이었다.

소와 비둘기.jpg 쓰레기 더미에서 먹이 찾는 소와 비둘기

[2023년 9월 18일(월)]

오전 9시 30분쯤 FRRO(인도 내무부 산하 외국인등록사무소)로 출발하려던 것이 오전 10시쯤 출발하게 됐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느꼈던 시원시원한 교통흐름은 이제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무는 가운데 그 사이로 겨우 난 틈을 오토바이와 릭샤가 기막히게 끼어드는 전형적인 델리의 교통상황이 재연됐다.

FRRO에 도착하니 낮 12시 가까이 됐다. 건물에 들어가 접수실(Reception)에서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FRRO 가이드 라인에 적시돼 있는 '비상상황'에 해당하기에 FRRO에서 직접 비자연장을 신청하러 왔다는 주장했다. 담당자는 가이드 라인을 자신도 읽어봤지만 비상상황이란 것은 없다고 맞섰다.

그 담당자는 온라인 신청을 하라고 했고, 나는 그러고 싶어도 ID를 몰라 못해서 여기에 왔다고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말싸움에 가까웠다. 담당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밖에 있는 사이버(인터넷) 카페 같은데 가서 신청하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기에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왔다.

자포자기 상태로 사이버 카페를 찾아봤다. 10여년 첫 부임기간에 그랬던 것처럼. 보도에 있는 나무 아래 파라솔이 있고 그 아래 테이블과 PC, 복합기 각각 1개씩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곳이 바로 사이버 카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사이버 카페 주인에게 인도 외무부 레터와 명함을 건넸다. FRRO ID를 몰라 온라인 자체 접근을 못했다고 나의 애로사항을 말했더니 이메일 주소를 불러달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내 이메일로 OTP가 왔다. 그는 그 OTP를 이용해 ID와 패스워드를 생성하고 일사천리로 온라인 신청작업을 진행했다. C Form(호텔 등 숙박업소의 투숙객 거주 신고 양식)을 달라, 여권을 달라, 사진을 달라하면서 잇따라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휴대전화 통화까지 했다. 내가 보기에는 달인이었다.

존경심과 감탄이 절로 우러나왔다. 이래서 '인도가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12년 전인 2011년에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전에 한번 만났을 수도 있었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도 동의했다.

30분만에 나와 아내의 비자연장 온라인 신청 작업이 끝났다. 믿기지 않아 천천히 다시 확인했다. 그러고는 "얼마냐"고 물었다. 그가 얼마를 부르든 다 줄 용의가 있었다. 1천루피란다. 수기 영수증을 받고 보니 1인당 500루피로 적혀 있었다. 1년 후에 다시 보자고 농담 아닌 진담을 하고 감격의 악수를 나눴다.

집에 와서 와츠앱으로 사이버 카페 주인에게 FRRO '등록'은 비자연장 신청과 별개로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고 비자연장 신청으로 등록이 자동적으로 된다"는 답이 금세 돌아왔다.

지난 7월 21일 뉴델리에 와서 며칠 후 인도 외무부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그에게서 알아낸 사이트에 들어가 외신기자 등록을 했다. 여러 단계의 등록을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팬카드, 외신기자증 등을 요구해 해당 단계 업로드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무부 직원에게 내가 올려야 할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줘 외무부 직원이 대신 업로드하는 단계를 거쳤다.

그러고서 비자만료 기한을 닷새 앞둔 9월 15일 비자연장을 해주라는 FRRO앞 외무부 레터를 이메일로 받았다. 하지만 16일과 17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라 FRRO 휴무일이었다.

결국 18일에야 FRRO에 가서 길거리 사이버 카페에서 비자연장 신청을 그야말로 극적으로 완료했다. 무슨 생쇼인가 싶었다. 인도인들은 일하는 방식에서 한국인들과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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