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힝글리시 하는 인도인

by 유창엽

[2023년 9월 11일(월)]

오전에 호텔 세일즈 매니저에게서 와츠앱으로 연락이 왔다. 11일인데 아직 9월 월세를 안 냈다고 했다. 독촉하는 것이었다. 미안해하던 차에 온 메시지였다. 오늘 중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낮 12시 가까이 돼 휴대전화를 통해 현지 거래은행 계좌를 확인해 보니 지난 수요일 회사에서 송금된 달러가 루피화로 전환돼 있었다.

은행 측이 지난 7일 계좌에 들어온 달러가 무슨 명목이냐고 실무자가 메일을 보내왔기에 회사에서 송금한 체재비라고 설명하는 답신을 보냈다. 특파원 임명과 관련한 영문 문서도 첨부했다.

그러고서 8일은 델리 지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공휴일이고, 9일과 10일은 토·일요일이어서 11일에야 겨우 루피화로 전환됐던 것이다.

호텔 로비로 가서 거래은행 발행 직불카드로 2랙(1 lakh=10만루피) 결제하려 했으나 하루 거래한도를 초과했다는 메시지가 카드 리더에 떴다. 하는 수 없이 1랙만 결제했다.

이어 거래은행 측에 전화했지만 통화에 실패했다. 얼마 후 은행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하루 거래한도가 1랙으로 제한돼 있고 지점장 승인 하에 2.5랙까지 한도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도를 2.5랙으로 바로 올려주겠다고 해서 얼마 후 다시 로비로 가서 나머지 금액 결제를 시도했으나 역시나 거래한도 제한이란 문자가 떴다.

하는 수 없이 내 휴대전화에 있는 은행 사이트에서 이체를 했다. 꽤 오랜 시간 걸려 이체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체 절차는 다음 영업일에 완료된다고 호텔 직원들이 설명했다.이체가 즉시 완료되지 않는 것이다.

인도에선 이렇듯 송금액을 제한한다. 왜일까? 부정부패 방지? 인도에서는 제한받는 일이 너무 많은 것같다. 거래은행의 한 한국인 관계자는 '2.5랙이 넘는 고가품을 결제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동료 인도인 직원에게 물었더니 '카드로 한도까지 결제한 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송금(이체)하는 방식을 쓴다'고 말하더라고 내게 이전에 전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오늘 한 것이 그 방식이었다.

오후에는 인도 외무부 외신기자 담당직원에게 다시 메일을 보냈다. 9월 20일이 비자만료일이니 빨리 연장해달라고 '을'로서 호소문을 보낸 것이다.

저녁 식사 후 휴대전화를 통해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이번 주말까지 레터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주말이면 16일이나 17일이다. 애간장이 다 탄 채 구걸하다시피 해서 비자연장 레터를 받는 셈이다. 레터에는 '인도 외무부가 이 사람에 대한 신원을 확인해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이 사람의 비자를 내무부가 연장해주라'는 내용이 담긴다.

G 20 기자회견장.jpg G20 정상회의 취재진

[2023년 9월 12일(화)]

점심 식사 후 거래은행 지점을 찾아갔다. 전날 직불카드의 하루 거래한도를 1.5랙에서 2.5랙으로 올린 데 따른 서류작업을 하러 간 것이다. 담당 한국인 직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지난달 e팬카드를 은행 측에 보내준 게 아직 은행 측 서류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담당 직원 설명을 들어보니 내부적으로 일이 매끄럽게 처리되지 않은 듯했다. 그 직원은 내가 e팬카드도 주지 않아 계좌개설 후 후속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나에 대해 오해를 했을 것이다.

직원은 e팬카드도 내 서류에 넣고 필요한 서류작업을 마쳤다. 그는 특히 서류작업을 할 때 내 계좌번호 등 자신이 컴퓨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다 기재한 뒤 나는 종이 서류에 서명만 하게 배려해줬다.

그 직원은 이제 FRRO(외국인 등록사무소) 서류만 보내주면 계좌개설에 따른 서류작업이 모두 끝난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입국한 지 약 두달 만이다.

지점장실에 인사차 들렀다. 잠시 후 그 직원이 지점장실에 와서는 내 휴대전화에 있는 인도 외무부 이메일 내용을 보내달라고 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외무부가 비자연장 관련 레터를 늦게 주는 것 같고, 외무부에 비자연장을 신청한 게 아니라 외무부에 외신기자 등록을 한 것이라고 그 직원에게 내가 설명한 데 대한 증빙으로, 외무부 직원과 내가 이메일로 주고받은 내용을 확보하려는 것같았다.

도대체 인도 법이 얼마나 강력하기에 그 직원이 이토록 서류작업에 매달리는 것인지 궁금하고 화마저 났다. 아무튼 지점장이 보는 앞에서 내 휴대전화에서 그 직원의 이메일로 외무부와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보냈다.

이어 지점과 가까운 한국문화원에 들렀다. 한국 대사가 현지언론에 우리 정부가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한 활동을 소개하는 행사가 오후 3시에 시작됐다. 참석한 인도 기자들이 힝글리시를 하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인도 기자들은 힝글리시를 당당하게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영어가 의사소통 수단임에도 미국 사람처럼 발음하지 않으면 조롱조로 '콩글리시'를 한다고 비웃는다. 이런 행태에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은연중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인도인들이 자기들 억양으로 마음껏 당당하게 영어를 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이런 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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