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의 기록
설비는 인테리어 공정 중에서 가장 조용히 기능하는 부분입니다. 화려한 마감재 뒤에 숨어있어 쉽게 잊히지만, 한번 문제가 생기면 고르게 발라놓은 벽지와 단단히 붙인 타일을 모두 뜯어내야 합니다. 작년에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이웃집에서는 수도관 하나의 누수로 열흘간 욕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4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집 전체의 쾌적함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이지요.
철거, 목공, 타일 공정 등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몬스테라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설비만큼은 달랐습니다. 저녁 식탁 위에 도면을 펼쳐놓고 연필로 설비를 이리저리 체크하던 날이 일주일은 더 되었을 겁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난방 배관, 단열, 수도관 이설 등의 영상을 찾아보다 새벽을 맞은 날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당시 지방의 설비 기사님들은 오랜 관행대로 작업하려 했고, 저는 제가 공부한 FM 시공 방식을 원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느낀 불안과 혼란, 그리고 타협의 과정에서 배운 조용한 교훈들—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때로는 관행에 맞서고, 때로는 받아들이며 배운 인테리어의 깊은 풍경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몬스테라홈에는 거실, 주방, 부부 침실, 자녀 침실, 네 곳의 확장 공사를 했습니다. 발코니를 실내 공간으로 확장하는 이 공사는 구조상 바닥 단열이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열성이 뛰어난 스티로폼 계열의 아이소핑크 단열재를 바닥에 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3년 전만 해도, 지방에서는 아이소핑크 단열 시공이 흔한 공법은 아니었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점차 표준이 되어가는 방식이었지만, 지역의 설비 업체들은 이를 선택 사항으로 여겼습니다. 문의한 여러 업체들도 바닥 단열을 굳이 해야 할 필수 공정으로 보지 않았고,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 요구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처럼 받아들여졌고, 결국 자재는 직접 준비하고 시공만 맡기는 방식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 직접 확장부 치수를 재고, 필요한 자재량을 꼼꼼히 계산해 발주했습니다. 모눈종이에 한 칸 한 칸 면적을 계산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공사가 우리 가족 모두의 노력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양중은 1층 주차장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사는 후배에게 부탁해 자재를 하나하나 집 안까지 옮겨야 했습니다. 단열재가 무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어설픈 초보자들이 방문 보다 큰 자재를 나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거실 한쪽 벽면에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인 아이소핑크 단열재를 바라보는 순간, 그간의 수고는 잠시 잊고 마음 한켠이 든든해졌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갈 재료이지만, 우리 집의 따뜻함을 책임질 중요한 기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사 당일, 설비 기사님 두 분이 도착해 배관 기초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하셨습니다. 처음엔 모든 흐름이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단열재 시공 방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사님들은 바닥까지만 아이소핑크를 깔면 충분하고, 창호 옆면까지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사전에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단열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창호 측면까지 시공하는 것이 이상적이었습니다. 이미 바닥 단열도 제 고집으로 요청드렸던 터라, 이번에도 제 의견을 다시 주장하기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전문가의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과, 제가 공부한 내용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결국 저는 부딪힘을 피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비전문가로서 까다롭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시공자들과 계속 의견이 갈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를 주저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제 생각을 더 분명하게 설명하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타협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선택이었습니다.
다행히 몬스테라홈은 영구 조망이 확보된 남향 구조 덕분에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20도 안팎으로 유지됐고,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경험은 저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때로는 기존 관행에 의문을 품고 새로운 방식을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선택이 결국 오랜 시간 우리의 일상을 좌우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확장부 공정 중, 난방 배관 연결만큼은 계획한 방식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성공이 주는 만족감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그 무렵, 많은 설비 기사님들이 확장부 난방 배관을 L자 연결 방식으로 시공하고 있었습니다. 굽은 엘보우 배관을 사용하는 L자 방식은 시공이 간편하고 공간 활용이 유리하다는 이유로 관행처럼 사용되었지만, 수압 손실이 발생하고 연결부가 많아 누수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테리어 시공에 대한 깊은 연구나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이 별다른 고민 없이 반복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번거롭더라도 I자 직관 연결을 원했습니다. 한 번 묻히면 다시 손보기 어려운 난방 배관이기에, 처음부터 제대로 시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열재 시공과는 달리 이 부분은 타협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FM 시공 방식으로 I자 직관 연결이 가능한가요?"
이 질문을 가장 먼저 꺼냈고, 시공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뒤에야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계약 전에도 업체 선정 과정에서 시공사례 사진에서 이 부분을 꼭 확인했습니다. 미리 확인하고 조율해둔 덕분에, 현장에서는 어떠한 충돌 없이 제가 계획한 그대로 시공이 이루어졌습니다.
난방 배관이 연결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기술자의 익숙한 방식을 존중하되,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 기준을 초반부터 정확히 세워야 한다는 것을. 타협 없이 지켜낸 이 'I자 직선 연결의 원칙'은 지금도 우리 집 바닥 아래에서 묵묵히, 안정적으로 열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몬스테라홈 설비 공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부부 침실에 세면대를 이설하기로 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애초에는 욕조, 세면대, 변기가 모두 함께 있는 기존 욕실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려 했습니다. 낯선 설비 작업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이설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공 공정이 모두 끝나고, 마감재를 고르는 시점에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작은 욕실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쓰고 싶은 생각이 다시 떠올랐고, 세면대를 밖으로 빼면 욕실 내부를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계획을 수정해, 세면대를 욕실과 분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타일 마감 일정이 코앞이었고, 기존에 함께하던 설비 업체는 다른 현장 일정으로 작업이 불가능했습니다. 급히 소개받은 외주 설비 업체에 작업을 맡길 수밖에 없었는데, 이 결정도 저의 판단 실수로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공정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의 설계 변경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킵니다. 처음부터 계획했다면 욕실 바닥을 철거하고 바닥에 배관을 매립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방수층 손상이 걱정되어 벽을 따라 배관을 연결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 결정은 결국 가구 시공 단계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 배관 높이였습니다. 벽배관이 구배(경사)를 위해 차츰 높아지다 보니, 결국 세면대 설치 높이도 900mm까지 올라갔습니다. 일반적인 세면대 높이(820~850mm)보다 확실히 높았지만, 이미 배관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다시 고치기에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컸습니다. '양치와 손 씻는 용도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타협했습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높은 세면대 앞에 서면 그날의 성급했던 결정이 떠오릅니다. 설비 공정에서의 작은 타협은 결국 매일 마주하는 불편함으로 남습니다. 처음부터 충분히 고민하고, 변경이 필요하다면 시간을 들여 정석대로 시공했더라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보일러 확장부 미장 이후,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장한 바닥의 레벨이 기존 바닥보다 높아져 단차가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업자의 실수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확장부는 미장할 때 기존 콘크리트보다 살짝 낮게 마감해야 합니다. 양생 과정에서 바닥이 미세하게 올라오면서 기존 바닥과 자연스럽게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부적인 공정 지식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단차를 처음 발견했을 땐,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번에도 다시 해체하고 재시공해야 하나?’, ‘샌딩하시는 분을 또 불러야 하나?’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그때 타일 시공을 맡은 타일러 님이 상황을 살펴보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는 본드 두께로 충분히 레벨 조정 가능합니다. 걱정 마세요.”
그 말 그대로, 숙련된 손길로 본드 두께를 조절해 주방 바닥의 단차를 자연스럽게 맞춰주셨습니다. 완성된 바닥을 보니,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셀프 인테리어를 처음 시작했던 시절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크게 낭패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작은 변수 하나쯤은 전체 공정 속에서 충분히 유연하게 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한 공정이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침착하게 대응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입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가장 깊은 배움이 되기도 합니다.
설비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번 인테리어에서 가장 까다롭고 복잡했던 공정이었습니다.
단열은 시공자와의 소통 한계로, 세면대는 저의 늦은 판단으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과정을 지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정석대로 하는 것이 결국엔 가장 쉬운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공정 간의 유연성도 이번에 처음 체감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생기더라도, 공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해하면 다음 단계에서 충분히 조정할 수 있습니다. 확장부 바닥에 단차가 생겼을 때, 타일 본드 두께로 자연스럽게 레벨을 맞출 수 있었던 것처럼요.
지금 우리 집의 보이지 않는 곳들을 떠올리면 아쉬움과 만족감이 함께 떠오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얻은 깨달음들은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게 남았습니다. 어쩌면 인테리어의 진짜 매력은 완성된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만들어가며 배우는 작은 지혜들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 간의 준비, 셀프 인테리어_몬스테라홈]
다음편,
#3. 창호, 한 겨울의 얼음집
[몬스테라즈, 셀프 인테리어 가이드 북 '디테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