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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교대 이야기

잊지 못할 첫날의 저녁과 밤

by 정지원

국수 집과 신교대 사이에 길다란 횡단보도가 하나 있었는데, 조교처럼 보이는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 입영 대상자 여러분들 모두 모여서 열 맞춰 들어갑시다. "




아직도 기억하는 신교대 첫날의 저녁메뉴는 자장면이었다. 오후2시의 입영식이 있기 8시간 전, 아버지는 경기도 연천의 신병교육대로 나를 데려다 주셨다. 전날 미리 짧게 깍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을 때, 배라도 채워보려 근처 국수집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는 전부 볼캡을 쓴 남자들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국수 그릇 앞으로 처 박고 있었다. 나 또한, 도무지 입맛이 돌지 않아 만두 몇 개만 깨작인 게 전부였다.


점차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어머니가 전해주신 휴대전화로 막내삼촌과 이모에게 전화를 했고, 이모는 괜찮을거라며 할 수 있다고 휴가 나오면 그 때 보자고 나를 복돋아 주셨다. 반면 삼촌은 어디로 갔냐며 우리때는 기차타고 논산에 들어갔었는데, 지금 군대는 몇 년 복무하냐며 이것 저것 물으셨고 나는 18개월 복무한다고 내년 11월 말쯤이면 전역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내년에 오는 거냐며 그냥 잠시 갔다 오는 것 뿐이라고 농담조로 웃으며 말씀하였다.


내가 입영할 당시는 20년도 5월 말군번으로 코로나19로 한창 뉴스 후속보도를 할 때였기에 입영행사는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료식에서도 강당 같은 곳에서 간단하게 이병 마크를 소대장님과 조교님께서 가슴팍에다 부착해드리고 대대장님의 짧은 말씀을 끝으로 간단하게 마무리됐다.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의 신분은 입영장정이었다. 훈련병이나 훈병 같은 호칭은 이제 쓰지 않는다고 소대장님이 말하였다. 기억상으로는 6소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조교님은 상병을 달고 계셨다. 아무것도 없던 우리는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체온을 재고 배정같은 소대로 들어가 모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첫째주는 인성교육 주간으로 보급품을 지급받고 신체검사를 다시 받고 복무신조, 병영생활 행동강령, 군가등을 익히는 것에 주력한다.



아침점호와 임무분담제, 저녁점호 등도 알려주셨는데 쉽게 말해 저녁 구역청소 후 맡는 저녁점호가 확실히 부담이 더 되었다. 신교대는 구형막사였기에 일자형 침상을 쓰고 있었다. 그것을 처음 봤을 때는 자대에 가서도 이러한 침상을 쓰면서 550일 가량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저녁으로 자장면을 먹고 개인정비 시간에 불침번을 서야하는데 순번 상 2인 1조로 옆에 있는 동기랑 서게 될 것이라고 조교님이 말씀하셨다. 별 건 없었다. 신고를 하고 생활관 온도를 확인하고 취침등을 키고 세탁실의 세탁물이 잘 돌아가는 지 확인을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였다.


첫날의 밤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애들 모두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취침등 불빛이 전부인 컴컴한 생활관 안에서 내일 아침이 되면, 내게 익숙한 천장이 눈앞에 보이길 바라며 하루를 마무리지었다.



아침 해가 미처 다 뜨지 못한 새벽 6시 한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 이 체조는 침구류를 정리하지 않은 채 진행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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