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쎄오

베트남 냐짱, 내가 애칭 만들어 줄게. 반전!

by 하늘꽃

3년 전 첫 번째 베트남 방문 때는 무얼 먹었는지 도통 기억에 없으니, 이건 시간이 지나서라기 보다는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너무 안 먹은 탓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 베트남은 작정하고 무엇 무엇은 꼭 먹어야지 다짐하며 떠났다. 유일하게 보는 예능 프로그램인 신서유기 덕분에 이름을 알게 된 "반쎄오" 맛있어 보였다. 맛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맛난 거 다 모아뒀고, 조리법 단순하니 예상 가능한 맛있음이다 싶었다.


첫 번째 도전. 새벽 일출을 보는 사막 투어를 마치고 지친 몸이었지만 식욕만은 왕성했던 아침이었다. 주저 없이 주문했던 반쎄오. 파도 소리며 햇빛에 반짝반짝 너무도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참 맛없었다. 우습지만, 당연히 맛있을 것 같은 재료와 조리법인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있나 궁금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라이스페이퍼에 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던 반쎄오는 아무리 예쁘게 싸 보려 해도, 손바닥 크기의 거대한 모습을 좀처럼 줄이지 않았다. 여기 삐쭉, 저기 삐쭉,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한 번 용기 내서 먹으면 온통 주변이 어지러워졌다. 그걸 보는 내 마음도, 입맛도 어지러웠다.


두 번째 도전. 맛나게 먹겠다고 마음먹은 방문인데 이렇게 지날 수는 없었다. 같은 날 저녁 유명하다는 냐짱 시내 맛집들 중 고민하고 고민하다 반쎄오를 직접 직원분이 만들어 준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에 나는 안 되는구나! 를 깨달았기에, 다른 사람이 먹기 좋게 싸주면 좀 다를까 싶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아침의 경험은 반쎄오 자체에 대한 의심을 싹 틔웠으나,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춰진 식당이라는 리뷰들은 나를 조금씩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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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째 만난 반쎄오다. 생긴 것만 보고 마음 놓으면 안 된다. 아침에 만난 녀석도 생긴 것은 꽤 번지르르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전문가 등장! 손에 물을 묻히더니 라이스페이퍼 하나 꺼내 들고 문질 문질~ 손놀림부터 믿음이 가득 담긴다. 그대로 내려놓더니 또 한 장의 라이스페이퍼를 하나 꺼내 들고 다시 물을 골고루 묻혀둔다. 뭐지? 왜 라이스페이퍼만? 역시 고수는 달랐다. 다음 쌈을 위해 미리 밑작업을 해둔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적셔두었던 라이스페이퍼에 커다란 상추 하나 올리고, 반쎄오 5분의 1조각을 얹는다. 나도 아침에 그렇게 했지. 너무 재료들이 큰데? 또 삐죽삐죽, 손바닥만 한 쌈이 나오는 거 아니야? 서투른 하수의 고민이 이어지는 찰나 야무진 손가락들이 힘을 발휘한다. 살짝 덮은 한쪽 끝의 라이스페이퍼를 꾹꾹 김밥 말듯이 사정없이 눌러버렸다. 그러더니 돌돌돌~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건가! 어느새 얌전히 말려들어간 상추와 반쎄오. 양쪽 끝까지 예쁘게 정리하니, 영락없이 꼬마김밥 모양으로 다소곳한 제 얼굴을 내민다. 반쎄오 이 녀석. 너 사람 가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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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쌈을 마는 중에 새우 한 마리 놓치긴 했지만, 역시 나와는 달랐다. 아빠 반쎄오부터 엄마와 아이 셋까지. 크기별로 먹기 좋은 반쎄오 가족을 만들어 주었다. 어쩜~! 드디어 먹는 시간! 이름만 들으면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를 듯해, 조심스러운 피시소스. 그래도 찍어 먹는 게 맛있다니, 과감하게 푹 찍어 한 입 베어 문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것이, 이제 사람답게 밥 좀 먹겠구나 싶었는데 순간 웃음이 터져버렸다. 뭐야 이거? 진짜 맛있잖아! 역시 나는 대접받는 게 좋고, 맛있는 음식이 좋은가 보다. 순간 이 세상 최대치의 행복을 맛본 듯하다. 반쎄오 먹고 싶으면 내일 또 와야지라는 생각을 밀어 넣으며 크기별, 가족 반쎄오가 쉼 없이 내 입으로 들어간다.


맛있는 반쎄오를 즐긴 덕분인지 무서운 케이블카도 용기 내서 탔다. 짧은 바다를 건너 도착한 호텔방에서 편하게 잠이 들었다. 조식을 준다니 또 맛있게 먹어봐야지 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아** 그룹? 에서 단체 손님이 나와 같은 일정으로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역시나 본관에서는 조식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별관으로 셔틀을 타고 이동한다. 아침부터 부어오른 얼굴을 화면에 가져다 대니, 신기하게도 나를 인식한다. 대단한 기술인데? 모니터를 눈빛으로 잘했다 토닥이며 자리를 찾아 나선다. 파아란 바다 대신 푸르른 수영장을 마주 보고 앉았다. 음식이 뭐가 있나 돌아보는데, 선하게 생기신 직원분이 나에게 눈짓하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반쎄오~ 반쎄오~! 뭐야! 혹시 나 어제 본 거 아니야? 하루 종일 반쎄오만 찾고 다닌걸 어떻게 알았지? 그러고 나더니 우리 집에도 있는듯한 프라이팬에 반죽을 쭈욱 흘려 올린다. 치~~~ 쎄~~~ 흠~ 역시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는 다 맛있어! 그렇게 고개를 조금 돌리니 이 직원분이 조금 전 만들어 둔 반쎄오가 보인다. 조명 탓인가? 제법 맛있게 보인다. 하지만 내 접시는 이미 차버렸는걸? 접시를 바라보고는 그냥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20분 뒤, 다시 2차 식사를 위해 일어섰다. 아까 그 직원분과 또 눈이 마주친다. 손으로 노란 반쎄오를 가리키더니, "반쎄오~ 반쎄오~"를 웃으며 이야기한다. 흠흠... 뭐지? 이분? 그렇게 운명적으로, 뜬금없이 호텔 조식에서 만난 세 번째 반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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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사진에서 느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날 나는 저 반쎄오라는 친구를 무려 4번? 5번? 정도 먹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반쎄오의 반(Bánh)은 케이크나 빵을 뜻하는 말이고, 쎄오(Xèo)는 반죽이 팬에 부어질 때 나는 소리인 쎄에에오? 취야아오? 그 뜻이라던데. 아무래도 내가 이번 기회에 반쎄오의 애칭을 지어줘야겠다. Bánh giòn 반전! 저~언 이라는 소리가 나는 베트남어 "giòn"은 우리말의 바삭 바삭과 같은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세 번째 반쎄오에 감동한 내가 굳이 구글 번역기를 돌려 찾은 단어다. 호텔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반쎄오는 이전에 맛본 반쎄오와 비길 수 없을 만큼 바삭바삭했다. 이전 것에 비하면 속 재료는 더 적고, 크기도 작다. 그렇다 보니 딱 1인 전용 요리로, 한 손 또는 두 손으로 잡고 피시소스 찍어서 바삭바삭 먹으면 제대로다. 이전 식당에서 전문가의 손길로 만났던 반쎄오도 맛있다만, 완전 다른 식감과 다른 형태로 이 반쎄오가 나에게 최고의 반쎄오가 되었다. 첫날 조식에서 만난 이 반쎄오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틀 째도, 삼일 째도 별관 조식당을 찾았으나 그 이후로는 만날 수 없었다. 마지막 날 알고 보니, 저 반쎄오는 호텔의 메인 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에 특별 메뉴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주 가끔, 손님이 많이 없을 때, 혹은 대접하고 싶을 때, 특별히 조식에서 한정판으로(?) 조리해서 맛보게 해 주시는 거라 설명하셨다. 세상에나! 역시나 나란 사람은 먹을 복이 있구나! 첫날 별관에 안 갔으면 어쩔 뻔했니? 첫날 반쎄오 요리해 주신 직원분과 눈이 안 마주쳤으면 정말 어쩔 뻔했냔 말이다! 그 호텔에서 더 묵었다면 내 돈 주고 저녁에 메인 식당을 방문했을 것 같다. 순전히 저 반쎄오 때문에 말이다.


때로는 작정하고 철저히 준비한 많은 것들보다, 우연히 운명처럼 찾아오는 기회라는 게 있다. 어떤 이들은 그런 것을 행운이라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착하게 살아 복을 받은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음식 하나로 행운이나 복까지 논하는 거냐며 누군가는 웃겠지만, 나는 우연히 만난 세 번째 반쎄오 덕분에 호텔이 더 만족스러웠고, 냐짱이 더 좋아졌다. 음식 하나였지만, 오래도록 행복했고 참으로 감사했다. 새삼 오늘도 살아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마냥 신이 났다. 그래서 나는 먹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은 것 같다.


■● 두 번째 전문가의 손길로 만들어 주는 반쎄오 식당: 씀모이 가든

■● 세 번째 운명적으로 만난 바삭바삭 반쎄오 호텔: 냐짱 리조트&스파 혼트레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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