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

반갑다 친구야, 오해해서 미안

by 하늘꽃

고기를 좋아한다. 단, 조건이 있다. 동물 냄새 안나는 고기 요리 여야만 한다. 일주일을 지내려면 삼겹살과 치킨은 기본으로 한 번 이상 먹어줘야 한다. 요즘은 돈이 궁하니, 건강도 챙길 겸 치킨은 최대한 참는다. 삼겹살은 외식보다는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집에서 직접 구워 먹는다. 그러면 밖에서 1번 먹을 돈으로 최소 2번은 맛있고 배부르게 즐길 수 있다. 제법 고기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나에게도 왠지 모를 두려운 요리가 있었으니, 이름 하여 "우육면". 편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 나이도 되었건만, 여전히 음식에 대한 편견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우육면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 인생에 시도하지 않을 음식이라 여겼다. 이름만으로 우육면이라는 것은 나에게 굵직한 기름 둥둥 떠있는 빠~~ 알간 국물에, 동물 냄새 가득한 고기가 들어있는 음식을 상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우육면 이름이 내게는 그렇다. 그렇게 신경도 안 쓰던 나의 일상에 여행이란 마법이 뿌려지니, 왠지 우육면을 먹어봐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방문인 대만 타이베이 여행에서 크나큰 용기 내어 마지막 날 우육면 맛집이라는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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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처음 만난 우육면은 붉디붉은색이 아니었다. 갈색. 아니, 간장 색상이었다. 먹기도 전부터 색상 하나 다르다는 이유로 꽤나 큰 충격이었다. 뭐야. 이런 색이었으면, 진작 와볼걸 그랬네? 괜히 겁먹었잖아?! 근데... 혹시 간장색이면 동물냄새 더 나는 건 아닐까? 반가움과 동시에 걱정이란 녀석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소심하게 국물부터 조금 떠먹어 본다. 평소 라면도 면보다는 국물을 공략하는 국물 마니아인 나에게는 다소 낯선 모습이다. 이럴 수가! 두 번째 반응이 터진다. 뭐야? 맛있잖아?? 동물 냄새는커녕, 잡내 하나 없다. 대체 나의 편견과 오해는 무얼 근거로 나온 건지,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어서 더 어이가 없다.


식당을 처음 찾은 우리에게 친절한 직원분이 물으셨다. 두꺼운 면? 얇은 면? 두꺼운 면 하나, 얇은 면 하나의 국물 우육면을 주문한다. 감사하게도 우린 3명이니까, 비빔면도 시키는 행운을 누린다. 문제는 비빔면이구나. 두꺼운 면이냐, 얇은 면이냐?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평소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두꺼운 면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얼마 전 홍콩에서 얇디얇은 계란면의 쫄깃함에 반했던 후였다. 그렇게 비빔면은 계란면을 상상하며 얇은 면으로 주문한다.


20250228_141103.jpg 우육면(넓적 면)

착착착 올려진 음식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넓은 면이 예쁜 고기와 담긴 우육면이 먼저였다. 딱 칼국수면처럼 보였다. 국물에서 이미 합격했으니 면을 집어 자신 있게 입 속에 넣었다. 이럴 수가! 세 번의 이럴 수가! 가 나왔다면 말 다했다. 왜 이 맛있는 걸 이제야 먹었단 말인가? 누가 나를 편견 속에 넣었단 말이냐? 그 어떤 칼국수보다도 맛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면이 정말 쫄~깃! 하다는 중요한 이유였다. 칼국수보다 수제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수제비의 쫀득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칼국수가 흉내 내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우육면의 넓적면은 칼국수처럼 생겼는데 식감은 완전히 쫄깃한 수제비가 아닌가! 연신 감탄만 나왔다. 큼직큼직 인심 좋게 들어있는 고기는 또 어쩜 이리 맛있는지. 미루고 미뤄 여행 마지막 날 찾은 게 아쉬웠지만, 기뻤다. 타이베이에 다시 올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거니까. 어느 곳이든 나의 맛있음 지도를 찍어두는 건 큰 행운이자 행복이다. 돈이 없어 그렇지 언제든 여유. 아니(여유를 따지면 평생 어디도 못 간다), 약간의 틈이 생긴다면 달려갈 맛있는 곳이 쌓여가고 있다. 실로 좋아 죽겠다.


20250228_141105.jpg 우육면(얇은 면)

얇은 면은 우동면과 같았다. 안타깝게도 이미 넓은 면과 사랑에 빠져버린 내게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동면의 모습과 식감을 같이 하는 얇은 면을 품은 우육면은 점점 외면당했다. 하지만 다행인 건 우동 마니아가 있다는 것! 우동 마니아는 얇은 면의 우육면에 빠져 행복 여행 중이었고, 나 또한 기분 좋게 쫄깃한 넓은 면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않았다(의도적임).


20250228_141107.jpg 참깨 땅콩소스 비빔면

내가 좋아하는 땅콩 소스 맛이 가득한 '참깨 땅콩소스 비빔면'은 자신만의 매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고소함과 느끼함은 한 끗 차이다. 이 메뉴만 단독으로 먹기에는 마지막까지 먹을 자신이 없지만, 우육면을 메인으로 두고 이 친구를 별미로 중간중간 한 번씩 먹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음식일 테지만, 내게는 나의 메인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빛나는 조연이었다.


20250228_141127.jpg 김치인 줄 알았던 반찬

처음 만나는 우육면에 긴장했던 탓인지, 반찬 냉장고에서 붉은 빛깔만 보고는 김치 종류(양배추 등을 매콤하게 양념한 반찬인 줄 알았음)라 생각하고 가져왔던 녀석 덕분에 25년판 살아있는 원효대사가 되는 경험을 했다. 초반에만 해도 맛나게 먹던 이 반찬에서 어느 순간 생선 종류의 식감을 느꼈고, 그러다 닭 껍질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만다. 그렇게 우리 일행의 젓가락으로부터 점점 외면당한 녀석... 이게 바로 원효대사 해골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도 우습지만, 그럼에도 젓가락이 안 가는 건 본능이라 여겨본다. 미안해.


초등학교 6학년 때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누구냐 물으면, 우리 반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차별 안 하는 선생님이요." 백화점에 여성 의류 매장을 가진 집 딸을 유독 대놓고 차별하는 담임 선생님 덕분에 일찍 철이 든 6학년들이었다.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살아야지 싶은 생각은 늘 하지만, 막상 생활 속에서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작디작은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나를 조금은 변화시켜주고 있다. 그냥 떠나는 게 좋고, 맛있는 거 먹는 게 좋아서 시작하였지만 나에게 자꾸만 깨달음을 준다. 음식 이름 하나에도 편견을 가지고 두려워했던 쫄보인 나에게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경험하면 재미나다고. 막상 도전해 보면 그렇게 새롭고, 맛있을 수 없다며 유혹한다. 닭 껍질인지 닭발인지 모를 음식을 통해 내가 모든 것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시도와 도전이 제법 좋다. 눈으로 보기에 조금 징그러워 그렇지, 씹히는 느낌은 좋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귀한 경험이다. 무엇보다 아이처럼 이 세상 많은 게 여전히. 아니, 갈수록 더 많이 신기하고, 재미나 보인다. 그거면 되었지. 그걸로 충분하다. 나의 부족한 편견을 없애준 대만식 우육면. 반갑다 친구야.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


■● 나의 부족한 편견을 없애준 대만식 우육면 식당: Fuhong Beef Nood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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