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여도, 괜찮아
뉴욕 가기 전 연어 베이글 사진을 보고 다짐했다. 매일 1 베이글 꼭 해야지! 5일이라는 일정을 뉴욕에 배정했지만, 비행기 도착이 밤늦은 시간이었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 시간이 이른 새벽이다 보니 정작 뉴욕에서의 시간은 3일뿐이었다. 현지에 가서야 그 사실을 인식했다. 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미국은 나를 긴장하게 했고, 처음 방문한 뉴욕의 시끄러운 소리와 번잡함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져 이 도시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았다. 짧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 도시에는 왠지 다시 안 올 것만 같았다.
공식적인 첫날 아침, 유명하다는 베이글집을 찾았다. 역시나 사람이 한가득이었는데, 뉴욕을 시작한 첫날, 처음 방문한 곳이라 그랬는지, 한국에서 서브웨이 처음 갔던 날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주문 방법부터 긴장 가득했다. 도통 메뉴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빵 종류는 너무 많아 보였으며, 좋아하는 크림치즈 종류도 많은데 기본 단어들도 혼동되기 시작했다. 부모 놓친 어린아이 마냥 초조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블로그 글에 의존해서 어찌어찌 구색 맞추기로 “따라 하기” 주문을 마쳤다. 내 주문을 받아준 친절한 직원분의 웃음에 마음 편히 호응할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숙했는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진땀을 쏙 뺐다는 말을 얼마 만에 느꼈는지... 주문하고 내 베이글을 받는 사이, 가득 차버린 테이블에 한참을 방황하다, 먼저 먹고 있는 커플에게 양해를 구하고 합석했다. 누군가의 식사 테이블에 합석을 하다니. 여행하면서 대범해진 건지, 먹는데 정말 진심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처음 입안 가득 베이글을 물고 나니 당황했던 시간이 보상되는 듯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역시나 조금 먹다 보니 베이글이 너무 질겼다. 가뜩이나 악관절로 고생 중인 턱이 아파왔다. 또한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역시나 너무 짰다. 쌉싸름한 커피로 누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배가 부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남길 수밖에 없었다. 좋았지만 아쉬웠다. 맛있었지만, 뭔가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두 번째 날에는 다른 베이글 집을 찾았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바로 나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주문하러 갈 수가 없었다. 아직 명확한 블로그를 찾지 못해, 주문 방법을 숙지하지 못했기에 마음이 바빴다. 매장 직원의 친절한 눈길과 누가 봐도 당황한 나를 안내해 주려는 시도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마나 서서 작은 폰을 보며, 좁디좁은 세상에서 헤매고 있었을까?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한국에 앉아서 미국 여행 간 사람들의 글을 통한 "대리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뉴욕 한복판에 있다. 내가 지금 이 베이글 집에 서 있단 말이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대체 쪼끄만 핸드폰에 갇혀 무슨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서 있는 거지? 고개 들면 바로 맛깔나게 생긴 빵과 신선한 재료들, 메뉴판은 물론 친절한 직원들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라는 생각이 한여름 햇살처럼 나에게 쏟아지자,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부족한 모습을 깨달을 순간, 폰을 덮어버렸다. 그제야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던 직원의 따스한 미소와 친절한 눈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다양한 종류의 빵도 구분할 스 있었다. 순서 따위 뭐가 중요할까, 다른 이들의 입맛에 맛있다 말하는 걸 내가 왜 따라야 하나? 싶은 마음에 “어니언 베이글”로 원하는 빵을 먼저 선택했다. 내 생각대로 넣고 싶은 재료를 말하니, 친절한 직원이 나에게 세트 메뉴도 있다며 안내한다. 한쪽 구석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세트 메뉴들은 친절하게 샘플로 제작되어 있었다. 여유를 되찾고 하나씩 살펴보니,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이 한가득 들어 있는 세트가 보였다. 그렇게 나는 직원과 소통하며 연어 베이글 세트와 베이컨계란 베이글 세트, 야채수프를 주문했다. 원하는 토핑도 마음껏 정했다. 결과는 어땠냐고?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밤에 배고픔이 느껴지자 아침이 되면 얼른 다시 가야지 생각할 정도였다. 이번에 가면 두 가지를 먹어번 경험을 토대로 조금 변경해서 내게 더 맛있을법한 메뉴로 업그레이드시켜 볼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3일 차 일정을 소화하느라, 베이글 집에 다시 방문하지 못하고 뉴욕을 떠나야 했다. 내가 다시 뉴욕에 간다면, 그건 바로 베이글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먼저 무언가를 해본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면 분명 이점이 있다. 실패를 줄일 수 있고, 보다 수월하게 문제를 해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 너무 비중을 두거나 의지하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때로는 잘못된 경험을 답습하며 똑같은 부족함을 경험하게 되고, '원래 그런 거야'라는 일반화에 빠질 수 있다. 때로는 나와는 맞지 않은 방법을 활용했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 그 자체가 나와 안 맞는 거라며 아예 개선의 기회를 박탈시켜 버리기도 한다. 물론 아무런 정보나 준비 없이 부딪히면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실패와 도전을 통해 나에게 꼭 맞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무슨 일이든 그렇듯, 가장 어려운 방법이지만, 적절한 절충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번 '뉴욕 베이글'을 통해 내가 깨달은 점은, 적어도 준비 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되, 내가 실전에 투입되면 그때부터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 그리고 현지에서 만나는 귀한 인연들과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간단한 지혜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할 때, 한 곳에서 길게 머무는 걸 선호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알고 깨닫지 못한 아쉬움에 꼭 이른 시간 내에 다시 그곳을 찾곤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른 시간 내에 베이글을 여러 번 맛보러 뉴욕에 또 가게 될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 많다. 그런데 그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맛있게, 나에게 딱 맞게 즐기려면 충분한 시간과 조금의 용기, 그리고 몇 번의 도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과정은 참으로 설렌다. 그래서 여행이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이 참 좋다. 돈이 많으면 좋겠다. 이 여행이, 이 도전이, 이 맛있음이 멈추거나, 끝나지 않도록!
■● 첫날 방문했던 베이글 가게: 미국 뉴욕 Ess-a-Bagle
■● 둘째 날 방문했던 야채수프도 맛있는 베이글 가게: 미국 뉴욕 Pick A Ba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