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하늘꽃

긴 여행이든 짧은 여행이든 외국 나갔다 한국에 들어오면 꼭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음식이 있다. 어디를 다녀왔든 괜히 생각나고, 먹고 싶어지는 음식 말이다. 매콤한 김치찌개일 수도 있지만, 내겐 콩나물국밥이 더 앞선다. 김해공항을 통해 출입국을 하는 나의 여행은 왜인지 늘 새벽 도착인데, 귀국과 동시에 아침 먹으러 콩나물국밥 집으로 향한다.


본디 고향이 전주지만, 정작 전주 콩나물 국밥이 유명하다는 걸 서른 넘어서야 서울 출장 중 알았던 나였다. 외식보다는 엄마의 집밥에 길들여 성장했던 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싶다. 그런 내가 경상도로 이사 와서 지낸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40분을 운전해서 나가는 근처 도심에 딱 하나 있는, 전주가 본점인 콩나물국밥집을 가끔 찾곤 한다.


한데 사실 이 콩나물국밥이라는 음식이 내겐 조금 웃기다. 내가 귀국 후 그토록 먹고 싶은 음식은 사실 콩나물국밥에 딸려오는 수란이라는 녀석이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이 주연이 아니라, 내겐 수란이 주연이고 콩나물 국밥은 주연 뒤를 보조해 주는 조연 역할인 것 같다. 맛있는 수란을 먹기 위해 주문해야만 하는 콩나물 국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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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스테인리스 종지에 담겨 나온 수란을 보면 벌써 한국에 돌아온 게 기뻐진다. 익은 듯 익지 않은, 영롱하게 샛노란 모습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 같다.

"잘 다녀왔어?"

가만히 바라보니 마지못해 인사를 건네주는 새침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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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에 화답하며 두 손의 엄지와 검지, 총 네 개의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서 소금김 두 장을 집어 들고 조각조각 쪼개어 새침한 수란 위에 덮어준다.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콩나물국에서 국물 두 스푼을 떠서 수란을 적신다. 그리고는 쇳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수란을 그릇에서 분리시키며 고루 섞는다. 섞은 뒤 비주얼이 이상하든 말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안에 가득 머금는다. 고소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건강하게 고국에 돌아온 걸 축하해!"

일종의 세리머니이자, 귀국 환영식이다. 한 입, 한 입이 얼마나 맛깔난지, 온전히 수란에 집중해서 남김없이 비워낸다.


내겐 너무 소중한 귀국 의식이 종료되고 나면, 그제야 콩나물 국밥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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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효~ 그 녀석 맛깔나게도 생겼네!"

한껏 기분 좋아져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을 한 술 떠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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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참, 잊을 뻔했다. 남은 소금김을 쪼개어 얼큰한 콩나물국에 섞어준다. 아래 들어있는 적은 밥은 조연인 콩나물국에게 알맞은 딱 좋은 양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호로록 불어가며 뜨끈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그렇게 비워낸다.


"이제, 돌아왔구나! 이제, 또 하루를 멋지게 즐겨볼까?"

타지에서의 좋았던 기억들을 정리해서 하나 둘 여행 기록에 담아본다.

이번에도 참, 좋았구나 싶다. 그리고 돌아오니 또, 좋구나 싶다. 금방이라도 다시, 또 나갈 수 있겠다 싶다.

이 모든 게 참 고마운 수란과 콩나물국밥 덕분이다. 무엇이 먼저든, 무엇이 주연이든 뭐가 중요하랴? 그저 함께라서 의미 있고, 더 소중한, 그런 단짝이다. 내게 여행과 음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 수란이 함께 제공되는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집: 전주현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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