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과 설렘의 갈림길에서

<1부. 뜨겁게 앓다, 마흔의 사춘기 4>

by 하늘꽃

<뜨겁게 앓다, 마흔의 사춘기 1>

2023년 봄이 한창일 무렵 나는 제법 편안했다. 오랜 병원 출입이 조금씩 잦아들었고, 약의 종류와 수도 많이 줄었다. 직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거나, 집에서 잠 못 자며 새벽까지 일하는 일은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주말이면 휴양림을 찾아다니며 캠핑이며 여행을 다니던 일도 멈추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고개를 들면 파아란 하늘과 자그마한 정원이 나에게 인사했다. 살면서 해보지 않았던, 처음 해보는 일들을 시작했다. 어디서 샀는지 모를 제법 화려한 몸빼 바지가 퇴근 후 나의 복장이다. 꽃무늬 장화도 챙겨 신는다. 장갑 낀 손에는 보기에도 어색한 호미를 야무지게 챙겨 든다. 작은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다 문득 저려오는 다리를 느끼면, 자리에서 낑낑대며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눈부신 햇살의 공격도 마냥 좋고, 우지끈 허리가 펴지는 느낌도 제법 즐겁다. 할머니들이 왜 엉덩이에 쿠션을 달고 다니시는지 그제야 알겠다 싶다. 다음 장날에 난 분명히 그 엉덩이 쿠션을 손에 들고 있겠구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유튜브에서 배운 짧은 지식을 뽐내며 토마토 순도 열심히 똑똑 잘라내준다. 오늘은 어디에서 얼마큼 오이가 자라나고 있는지 아이처럼 마냥 신이 나서 두리번거린다. 어느새 또 기다랗게 자라나 나를 재촉하는 부추를 가위로 잘라내 부침개를 부친다. 부추야 말로 아낌없이 주는 친구이다. 햇살 좋은 평상에 앉아 딸들과 도란도란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따스한 계절이 오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이 가득 차오른다. '이곳이 좋사오니~'라는 말이 마음 가득 절로 피어오르는 순간이다. 태어나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낯선 타지, 그것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쪽이 아닌, 한 손의 손가락이 다 접히지 않을 정도의 적은 가구가 머무는 곳에 나는 두 딸과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산자락이 포근한 어깨가 되어주고, 우리 집이 편하게 기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세 모녀가 살고 있다.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꽉 들어찬 곳에서 지내던 나의 일상은 그렇게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부모님께 이사 이야기를 꺼냈던 2021년 4월, 나는 직장도 그만두겠다 이야기했었다. 예상했던 대로 엄마는 화를 내셨고, 그러다 울기 시작하며 안 된다 하셨다. 두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된다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시고는 그대로 자리를 깔고 누우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굳은 상태였다. 부모님께서는 번갈아가며 며칠 동안 전화로 나를 설득하셨다. 엄마의 통곡을 들었다. 딸들을 위해서도 안 된다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여느 때와 다른 나를 느끼셨던 걸까? 결국 2주 만에 부모님께서는 나를 다시 부르셨다. 같은 생각을 전하는 내게 그토록 뭔가를 하고 싶다면, 그 또한 안 했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뭔가를 해야겠다면, 꼭 그래야만 한다면... "이사만 가라."라고 하셨다. 절대로 직장은 그만두면 안 된다 당부하셨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 40 가까이 살았던 곳을 떠났다. 이사 후 하루 4시간씩 운전하며 출퇴근했지만, 집으로 오는 시간은 너무도 행복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내가 이사 온 작은 마을 근처의 딱 하나 있는 직장에, 나는 새롭게 발령받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도 안 될 거라 했던 일이 일어났다. 언제나 그랬듯, 나란 사람,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새삼 느꼈다. 전에 있던 직장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의 새롭게 옮긴 직장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평화!' 그래. 딱 이 단어가 어울리는 곳이다. 병원 치료를 병행하던 시기인 2022년 초에 옮긴 터라 나의 건강 상태를 직장의 관리자들은 시작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만큼 나를 여러 측면에서 먼저 배려해 주셨다. 문득문득 생각했다. ‘같은 직장이 맞는 건가?’ 그만큼 이전에 비하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적었다. 기본적으로 나에 대해 아는 이가 아예 없는 상태였기에, 이전의 압박이나 기대 등에서 나는 확실히 자유로워졌다. 게다가 사람들은 '오죽했으면... 저 나이에... 타지로... 이사까지 왔을까...'라는 미묘한 안타까운 오해를 전제로 나를 대했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 주변의 환경까지 더해져 나는 자유로워졌다. 충분히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그토록 부모님이 이야기하고 바라셨던, 편안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직장에서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에 내 마음과 열정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었다.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고, 이전에 맡았던 일들도 하나씩 정리했다. 가끔 몸의 통증이 몰려와 힘든 밤을 보낸 날들은 있었지만, 괜찮았다. 일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 또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집에 와서 하늘을 보고, 텃밭의 신비로운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었다. 아무 일이 아니었다.


산골로 이사 온 지 2년, 직장을 옮긴 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느새 흘렀다. 처음 하는 전원이라는 생활 속에서 나는 세상과 한 발작 떨어져 조용함을 즐겼다. 몸으로 하는 일은 나의 잡다한 생각들을 말끔히 없애주었고, 달콤한 잠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정성을 쏟으면, 몇 배로 돌려주는 자연에 감탄하며 더욱 존재 자체에 감사하게 되었다. 소소하고도 편안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직장에서의 편안함에 처음엔 너무 낯설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편안한 그 시기에, 불현듯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충분히 행복한 가운데서 느낀 감정이었기에 처음엔 의아하기만 했다. 알 수 없었다. 나는 편안함 가운데 문득문득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편안해서 불안했다. 내가 이 편안함에 그대로 눌러앉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투덜거리며, 이 정도면 괜찮다며 스스로 토닥이며 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 실로 내겐 큰 두려움이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나를 몰아쳤던 내 습관이 다시 고개를 내밀어 또 괴롭히는 것이구나 싶어 무시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또 다른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분명 편안한데 불안함이 지속되었다. 이유가 뭘까? 틈날 때마다 기록을 이어 나갔다. 나의 감정을 적었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었다. 자꾸만 고개를 내미는 내 안에 꿈틀거리는 그 무엇에 대한 것도 적어 내려갔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그토록 기다리던 따스해진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4월 첫 주에 신이 나서 오이 모종 3개를 심었다. 그리고 2주 만에 심었던 오이 모종 3개 중 두 개가 얼어 죽었다. 4월에도 갑자기 내리는 '서리' 때문이라고 했다. 산골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 ‘서리’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죽어버린 오이 모종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만 컸다. 2주를 더 기다렸다. 4월 말이 되어 나는 다시 오이 모종 2개를 더 샀다. 이번에는 제발 건강하게 살아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2개의 새로운 모종이 텃밭에서 힘을 내기 시작할 때쯤, 처음 사서 심었던-두 개의 모종이 죽어 나갈 때도 버티고 있던-마지막 모종은 결국 흔적을 감추었다. 아침마다 나는 오이 모종을 확인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지극 정성 보살폈다. 그리고 이번 모종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아~ 욕심부리면 안 되는 거구나. 다 때가 있는 거구나. 나는 어떤 때일까? 나는 지금 어떤 욕심을 부리고 있을까? 무엇이 욕심이고, 무엇이 알맞은 때인 걸까?’ 텃밭 가꾸기도, 내 인생도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나씩 배우며 나 스스로 가꾸어 만들어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실로 즐거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록과 침묵, 텃밭 재배의 시간이 지속되던 어느 날 나는 나의 두려움이 생겨난 이유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편안함 가운데 느껴지는 두려움은 바로 나의 직장 때문이었다. 나의 ‘편해진 직장 생활’이 문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편안했지만 내 안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자꾸만 던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이곳에서 건강을 돌보며, 적당히 최선을 다하는 직장 생활을 알게 되어버렸다. 나의 직장 생활은 적당히 힘이 들었고, 적당히 바빴으며, 적당히 여유가 있었다. 19년이라는 시간을 몸담았으니 이미 어느 정도 나만의 노하우라 불리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며 일할 수 있었다. 내가 그전처럼 많은 것을 떠맡거나, 거절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받아서 일하지 않는 이상 나는 충분히 편안하게, 즐기면서, 적당히 힘들게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토록 떠나고 싶던 이 직장을, 내가 떠나지 않고 이대로 남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내게 있었다. 나는 가고 싶지 않다던 나의 선배들의 길로, 관리자들이 말하는 좋다는 그 길로 자연스레 걸어갈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이나 하고픈 일들은 그냥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묻어둔 채, 모르는 척 고개 돌리고 편안함을 느끼며 묵묵히 따라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설렘은 없겠지만,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은 편안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내가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다시 내가 나를 주저앉히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무엇일까? 편안함인가? 설렘인가? 나의 편안함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나의 설렘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내가 진짜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시간을 흘러 보내면 안 될 일이었다. 몇 년이 흐른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 또 이 순간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는 비겁하게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의 진지한 대화를 통해, 나와의 진정한 교감을 통해 명확하게 보기로 했다. 나의 편안함과 설렘을 분명히 하고, 내가 진짜 가고 싶은 길이 어느 쪽인지,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나를 단지 지금의 현재에 가두지 않고, 미래의 순간에 옮겨 놓기로 했다. 내가 미래의 그 어느 순간에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나의 마음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살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편안함에 속아 내 마음속 갈망을 무시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함 속에서 자주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이유나 근거 없이, 잘못된 생각이 전하는, 헛된 걱정이 만들어 내는 불안함은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서 보내는, 마음이 간절하게, 이게 아니라고 전하는 메시지로 인한 불안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소리는 절대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또다시 오늘을, 후회의 과거로 만드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단지 헛된 걱정이 만들어 내는 불안감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정말 궁금했다. 내가 서 있는 이 갈림길에서, 명확하게 확인해야 했다. 두 길의 끝은 지금 내 위치에서 당연히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두 길이 어떤 길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이정표는 바로 내 안에 있을 것이다.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내가 걷고 싶은 미래의 길은 어느 길일까? 난 어떤 모습을 꿈꾸는가? 무엇에 설레고, 무엇에 열정을 쏟고 싶은가?

"뭘 원하는 거니? 뭘 그리도 하고 싶은 거니?"

마흔하나. 고요하지만 뜨거웠던 2023년의 여름을 나는 그렇게 끝없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내 앞의 두 갈래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편안함과 설렘. 어느 쪽을 원하고 있는 걸까?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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